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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인플루언서, 뷰티 재벌이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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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요즘 화장품 업계에서는 벼락부자가 화제다. 미국 내 자수성가한 최연소 억만장자로 22세의 카일리 제너가 선정됐다. 지난 7월 11일 포브스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카일리 제너의 자산 규모는 9억 달러(약 1조원)로 전체 자수성가형 여성 부자 순위 27위에 올랐다. 23세에 억만장자가 된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보다 빠르다.

자신의 이름을 딴 화장품 브랜드 '카일리 코스메틱'으로 단숨에 자수성가형 여성 부자 60인 순위에 이름을 올린 카일리 제너. 포브스지 표지 모델로 나섰다. [포브스 제공]

자신의 이름을 딴 화장품 브랜드 '카일리 코스메틱'으로 단숨에 자수성가형 여성 부자 60인 순위에 이름을 올린 카일리 제너. 포브스지 표지 모델로 나섰다. [포브스 제공]

더 놀라운 건 그의 자산 대부분이 자신의 이름을 딴 화장품 브랜드 ‘카일리 코스메틱’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현재 카일리 코스메틱의 기업 가치는 8억 달러(약 8900억원)에 이른다. 외신은 글로벌 화장품 기업 ‘바비브라운’이 25년 걸린 일을 카일리 제너가 단 3년 만에 해냈다고 보도했다. 카일리 제너뿐만이 아니다. 우리도 신생 화장품 브랜드로 대박을 친 사례가 있다. ‘스타일난다’의 김소희 대표다. 스타일난다의 화장품 라인 ‘쓰리컨셉아이즈(3CE)’를 탐낸 세계적 화장품 기업 로레알이 스타일난다의 지분 100%를 인수했고, 업계에선 이 금액을 6000억 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처럼 설립자 기반 신생 뷰티 브랜드의 벼락 성공은 뷰티 업계에서 최근 도드라지는 현상이다. 이른바 신흥 뷰티 재벌의 탄생이다.

스타일난다의 메이크업브랜드 3CE 제품들. [사진 스타일난다]

스타일난다의 메이크업브랜드 3CE 제품들. [사진 스타일난다]

과거 화장품 업계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대기업 브랜드 위주로 시장 확대가 이루어졌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국내 대기업과 로레알, LVMH, 시세이도, 엘카 등 글로벌 대기업 등이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요즘은 분위기가 다르다. 작고 개성 있는 브랜드, 즉 ‘인디브랜드(indie brand)’의 활약이 눈부시다. 영국 가디언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펫 맥그라스, 모델 카일리 제너, 가수 리한나 등 소셜 미디어의 혁신자들이 운영하는 인디브랜드가 뷰티 산업을 바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수 리한나는 LVMH 산하 뷰티 유통 계열사인 '켄도'와 함께 뷰티 브랜드 '펜티 뷰티'를 만들었다. [사진 펜티 뷰티 홈페이지]

가수 리한나는 LVMH 산하 뷰티 유통 계열사인 '켄도'와 함께 뷰티 브랜드 '펜티 뷰티'를 만들었다. [사진 펜티 뷰티 홈페이지]

우리나라 역시 전체 화장품 시장에서 대기업의 영향력이 줄고 있다. 시장조사기업 칸타월드패널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기준 ‘빅3’ 대기업의 국내 화장품 시장 점유율은 전체 시장의 절반을 밑돌아 49.2%다. 2016년 54%, 2017년 51.7%다. 대신 화장품 제조 및 판매 기업 수는 더 늘었다. 2016년에만 2341곳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몸통이었던 대형 브랜드의 점유율이 줄어든 대신, 늘어난 꼬리들의 점유율이 높아진 셈이다.
실제로 눈에 띄는 중소 브랜드가 다수 등장했다. 페이스북 동영상 광고가 SNS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창업 3년 만에 650억원의 매출을 올린 ‘에이프릴 스킨’, 마스크팩 단일 품목 하나로 대박이 나면서 2014년 출시 이후 약 5억장의 누적 판매량을 기록한 ‘파파레서피’ 등이다. 미국처럼 SNS 영향력이 높은 설립자 기반의 뷰티 브랜드도 있다. 80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플루언서 임지현이 만든 ‘블리블리’는 김소희 대표의 ‘쓰리컨셉아이즈’와 비견되는 인플루언서 뷰티 브랜드다.

인스타그램에서 80만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린 임블리 대표 임지현씨가 만든 화장품 라인 '블리블리.' [사진 임블리 홈페이지]

인스타그램에서 80만 이상의 팔로워를 거느린 임블리 대표 임지현씨가 만든 화장품 라인 '블리블리.' [사진 임블리 홈페이지]

뷰티 디지털 비즈니스 기업 레페리의 최인석 대표는 이런 현상을 두고 ‘롱테일의 반란’이라고 불렀다. 80%에 해당하는 하위 다수가 20%의 상위 소수보다 뛰어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 대표는 “기존 대형 브랜드들이 인지도 측면에선 우위에 있지만 어떤 제품이나 브랜드가 특별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을 기반으로 작고 새로운 브랜드들이 선전하고 있다”며 “이전보다 비교적 손쉽게 이른바 ‘대란템(화제가 되는 아이템)’을 터트리기에 용이해진 미디어 환경이 주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파워 블로거이자 미국에서 K-뷰티를 소개하는 온라인몰 ‘소코글램’을 운영하는 샬롯 조 공동 대표는 “카일리 코스메틱이나 리한나의 펜티 뷰티 모두 카일리 제너와 리한나라는 인물 자체가 보유한 탄탄한 SNS 팬층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며 “소비자가 확보된 상태에서 탄생한 브랜드며, 소비자와 직접 소통함으로써 고객이 원하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나아가 공감대와 신뢰를 형성해 빠르게 상승 곡선을 그릴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가수 홍진영씨가 제이원코스메틱과 손잡고 론칭한 '홍샷 파운데이션' [사진 제이원코스메틱 홈페이지]

가수 홍진영씨가 제이원코스메틱과 손잡고 론칭한 '홍샷 파운데이션' [사진 제이원코스메틱 홈페이지]

이들이 연예인이라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만도 아니다. 이들은 제품 기획·생산·제조에 기여할 때 연예인이 아닌 설립자로서 철저히 직접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시 화장품에 관련해 자신만의 특별한 스토리를 가진 것도 특징이다. 최근 ‘인생 파운데이션’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가수 홍진영의 경우가 한 예다. 워낙 파운데이션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대중들이 그가 사용하는 제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본인이 직접 ‘홍샷’이라는 베이스 메이크업 브랜드를 출시해 홈쇼핑에서 단숨에 주문 금액 10억원을 기록했다. 카일리 제너 역시 자신의 얇은 입술 콤플렉스를 커버하기 위한 립 키트를 출시해 주목받은 케이스다.

시장조사기관 민텔은 이들의 성공이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빠르게 시작할 수 있는 작은 브랜드 특유의 유연성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이는 바꿔 말하면 기존 대형 뷰티 브랜드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소비자들과 빠르게 움직이는 트렌드에 응답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SNS나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인디 뷰티 브랜드들은 월요일에 고객 투표를 한 뒤 금요일에 제품을 출시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 브랜드가 간과했던 유색인종을 위한 다양한 색조를 개발해 호응을 얻고 있는 리한나의 펜티 뷰티 색조 제품. [사진 펜티 뷰티 홈페이지]

기존 브랜드가 간과했던 유색인종을 위한 다양한 색조를 개발해 호응을 얻고 있는 리한나의 펜티 뷰티 색조 제품. [사진 펜티 뷰티 홈페이지]

이들은 기성 브랜드가 내놓지 않은 개성 있고 특이한 제품을 선보여 밀레니얼 세대들을 열광하게 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실제로 카일리 코스메틱이나 펜티 뷰티 제품들은 기존 브랜드에선 볼 수 없는 유색인종을 위한 다양한 색조로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인디 브랜드들 역시 기존 브랜드가 내세우는 럭셔리, 자연주의 콘셉트 대신 재미와 톡톡 튀는 개성, 뻔하지 않은 기획으로 승부를 본다.

'인디화장품'으로 팔로워 고민 해결 #제품 기획·제작·홍보도 SNS로 직접 #설립자 스토리에 열광하는 젊은 층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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