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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우리 선조는 협소한 땅에서 당파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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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 이야기(6)

파타고니아(위)와 알래스카(아래) 의 모습. [사진 pixabay]

파타고니아(위)와 알래스카(아래) 의 모습. [사진 pixabay]

알래스카나 파타고니아를 가본 적이 있는가. 알래스카는 이누이트 언어로 ‘위대한 땅’을 의미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최북단 북위 60°~70°에 걸쳐있고 면적이 한반도의 7배에 달한다. 울창한 원시림과 눈 덮인 대자연이 있고, 신비한 빛의 향연 오로라에 넋을 빼앗길 수도 있다. 광활한 대지 위로 카리부 수십만 마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장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불곰들이 강을 따라 연어를 잡는 풍경도 볼 수 있다.

파타고니아는 이와 반대로 아메리카 대륙의 최남단에 있다. 한반도 면적의 약 5배에 달하는 거대한 땅으로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단에 걸쳐 있다. 끝이 안 보이는 아득한 대지 위에 가우쵸들이 양 떼를 몰고 가고, 세계 최남단의 도시 우슈아이아에 가서 ‘세상의 끝을 달리는 기차’를 타고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순백의 자연 앞에 서 보라.

천상의 세계에 온 듯 가슴이 일순간 쿵 하고 무너져 내린다. 영국의 여행 작가 부르스 채트윈은 여행기 『파타고니아』에서 외로운 자들이 살고 있는 황량하고 몽환적인 땅으로, 칠레의 작가 루이스 쎄풀베다는 방랑자의 종착지이자 이상주의자의 해방구로 각각 묘사하기도 했던 세상에서 멀리멀리 떨어진 외진 땅이다.

알래스카와 파타고니아의 공통점  

신대륙 개척 당시에 배를 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바닷길은 물론, 신대륙에서도 원주민과의 생사를 건 싸움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땅을 개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광활한 땅을 개척한 이들의 덕목 중 하나를 꼽자면 '용감함'이 아닐까. [중앙포토]

신대륙 개척 당시에 배를 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바닷길은 물론, 신대륙에서도 원주민과의 생사를 건 싸움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땅을 개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광활한 땅을 개척한 이들의 덕목 중 하나를 꼽자면 '용감함'이 아닐까. [중앙포토]

순백의 자연에 풍요롭기까지 한 이들 거대한 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목숨을 걸고 신세계를 개척한 ‘대담한 자’의 땅이란 것이다. 알래스카는 원래 영토 확장 욕심이 끝이 없는 러시아의 땅이었다. 러시아 황제 표트르 대제가 1730~40년대 탐험대와 해군을 시켜 개척한 땅이었으나 이후 러시아 재정이 궁핍해지자 1867년 미국에 720만 달러에 매각했다. 당시 이를 주도했던 미국 국무장관 수어드는 아이스박스나 다름없는 얼음덩이 땅을 비싸게 샀다며 바보로 조롱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군사 요충지로서 더없이 중요하고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돼 있어 값을 매길 수 없는 땅이 되었다.

파타고니아는 1865년 200여 명의 영국 웨일즈 출신 남녀가 기아와 가난을 피해 희망을 찾아 개척한 땅이다. 범선을 타고 8주가 걸린 여행 끝에 도착하니 비옥한 땅이기는커녕 메마른 땅으로 식수조차 부족하였다고 한다. 살만한 땅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정착도 하기 전에 죽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그들에게 개간할 땅을 넉넉히 주고 정착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부유하면서도 민주적인 시스템이 잘 작동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꼽히는 곳이 있다. 바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이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앵글로 색슨이 개척한 나라이며 종교가 개신교라는 점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들 나라 모두 삼사백 년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신천지를 개척한 조상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잘 알다시피 1620년 영국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와 개척한 나라이다. 절반 정도의 사람이 항해 중 또는 미국에 도착해 추위와 질병으로 죽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삼사백 년 전 영국인들이 거칠고 험한 항해 끝에 개척한 나라들이다. 그중 일부는 영국 중북부에서 온 상습범죄자들이었다고 한다. 캐나다는 초기에는 프랑스인들이 모피교역을 위해 개척했다가 18세기 중엽 파리협약으로 신대륙의 땅에 욕심이 많았던 영국인들이 지배하게 됐다.

당시에 배를 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신천지에 도착해도 원주민인 인디언과 생사를 건 싸움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땅을 개척할 수 없었다. 남미를 개척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후예들은 어떤가. 콜럼버스와 마젤란이 초기에 탐험한 중남미에 자국민을 이주시켜서 개척한 것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다. 그들도 신대륙으로 항해하고 정착하는데 수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했다.

대항해 시대에 내우외환에 전전긍긍했던 아시아국가들

서양에서 신항로 개척이 한창일 때, 아시아 대륙은 좁은 땅을 서로 뺏기 위해 서로 침략을 일삼는 어두운 시대였다. [사진 pixabay]

서양에서 신항로 개척이 한창일 때, 아시아 대륙은 좁은 땅을 서로 뺏기 위해 서로 침략을 일삼는 어두운 시대였다. [사진 pixabay]

북미대륙은 앵글로 색슨이, 남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인이 개척해 정착했다. 이들 서양인이 신천지 개척을 위해 배를 타고 목숨을 건 모험을 마다치 않았던 16, 17세기에 아시아 대륙의 중국, 일본,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중국은 흉노, 돌궐 등 북방 민족의 침략에 대비해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방어에 급급했고, 일본은 사무라이들이 좁은 섬나라에서 서로 땅 뺏기를 하고 있었다. 조선은 끊임없는 당쟁으로 국력이 쇠잔해진 상태에서 무능한 조정은 오랑캐와 왜구의 노략질 방어에 정신이 없었고, 민초들은 그 와중에 수탈에 신음하는 어두운 시대였다.

삼사백 년 전에 구대륙이 유럽과 아시아였다면, 신대륙은 아메리카 대륙과 호주 뉴질랜드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고 살아보고 싶어 하는 풍요로운 땅으로 탈바꿈한 그 나라들의 주인은 누구인가. 잘 알다시피 북미, 호주, 뉴질랜드는 앵글로 색슨의 후예들이 주인이고, 남미의 지배계층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후예들이다.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개인도 국가도 새로운 것을 위해 과감히 도전하고 모험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 지금 우리는 독도를 두고 일본과 끊임없는 다툼을 벌이고 있다. 당연히 한국 땅이다. 그러나 내 땅이라고 떼를 쓰는 일본 때문에 각종 역사적인 증거를 서로 제시하면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내려 애쓰고 있다.

그런데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이나 캐나다는 각각 남한 면적의 100배 정도이고, 호주는 약 80배, 뉴질랜드는 2.7배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 뉴질랜드에는 제법 큰 섬만 따져도 6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 아름다운 섬들을 바라보면서 작은 섬 독도 하나를 두고 싸워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 서글퍼진다. 독도의 중요한 가치를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은 왜 좀 더 일찍 눈을 떠 아메리카 대륙이나 오세아니아를 개척하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에서다.

목숨을 걸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항해를 하고 개척한 선조의 후예들은 지금 더 넓은 땅에서 풍요롭게 살고 있다. 이와 반대로 좁은 안목으로 제 살 갉아먹기를 하며 당쟁으로 지샌 선조를 둔 우리는 협소한 땅에서 어깨를 서로 부딪치면서 살아가고 있다. 삼사백 년이 흐른 지금 그 간격은 메우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크다. 그 차이는 무엇이었겠는가. 공소한 논쟁으로 날을 지새우고 삼강오륜을 잘 터득하고 인의예지신을 잘 지킨 나라가 부강하게 되었는가. 용맹스럽게 새 땅을 찾아 도전하고 수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모험을 감행한 선조를 둔 나라가 부강하게 되었는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저렇게 풍요롭고 더 넓고 아름다운 땅들을 여행해 보기를 권한다. 삼사 백 년 전에는 주인 없는 땅이었다. 지금은 남의 땅이 되었지만, 무척 탐이 난다. 그리고 그 광활한 땅을 개척한 사람들의 한 가지 덕목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용감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aventamu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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