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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노 민스 노’ 룰 담은 안희정법 나올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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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7호 11면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서울서부지법 청사를 나서고 있다. 재판부는 ’마음속으로 (성관계에)반대하더라도 현행 법체계에선 성범죄라 볼 수 없다“며 안 전 지사의 무죄를 선고했다. [변선구 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서울서부지법 청사를 나서고 있다. 재판부는 ’마음속으로 (성관계에)반대하더라도 현행 법체계에선 성범죄라 볼 수 없다“며 안 전 지사의 무죄를 선고했다. [변선구 기자]

‘안희정법’ 나올까.

안희정 전 지사 1심 무죄 선고 후 #정치권·여성계 도입 주장 거세져 #4월 당정 이미 법제화 적극 검토 #어디까지 동의로 볼 지 등 쟁점 #일각선 폭행·협박 기준 완화 주장 #조국 수석은 2004년 도입 반대

안희정 전 충남도시자의 1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정치권과 여성계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질문이다. 1심 재판부가 거론한 ‘노 민스 노(No means no)’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 룰의 법제화 여부다.

노 민스 노는 피해자가 거부 의사(부동의)를 드러냈는데도 성관계가 이뤄졌다면 이를 성폭행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스 민스 예스는 더 나아가 명시적·적극적으로 동의하지 않으면 합법적인 성관계가 아니란 의미다.

1심 재판부는 “두 룰이 입법화되지 않은 현행 법제 하에서 처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거꾸로 말하면 법제화돼야 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른바 비동의 간음죄다. 3월 초 안 전 지사 건이 터지면서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졌다. 관련 법안들도 발의된 상태다. 4월엔 더불어민주당과 법무부, 여성가족부가 당정을 통해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적극 검토하자는 입장을 정한 일도 있다. 정의당도 최근 비동의 간음죄 법안을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신중론도 적지 않다. 현행 법, 더 나아서 현행 판례에서도 유죄 선고가 가능했다는 주장도 있다. 논란을 집어본다.

현행 법안은 어떤가

형법 제297조 강간죄 규정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1992년 대법원은 판례로 폭행·협박의 정도를 ‘상대방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최협의(最狹義)설)으로 제시했다. 여성이 극도로 저항하면 강간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인데, 오히려 너무 협소하게 해석한 것이란 비판이 제기되곤 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2014년 ‘입법과 정책’ 보고서에서 “최협의설이 아직도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여러 사례에서 드러나고 있다”며 “가해자들이 문자로 피해자에게 술을 먹여 성관계를 갖자는 내용을 주고받았음에도 공모를 인정할 수 없다며 강간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당시 피해자는 가해자의 혀를 깨물며 반항하고 여관 복도에서 울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자 목조름을 당하고 결국 창문에서 뛰어내려 상해를 입은 상태였다”고 기술했다.

최협의설과 맞물린 ‘피해자상’도 오랜 쟁점이었다. 이미경 소장은 “(사법부는 피해자가) 진짜 피해자라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으리라 짐작한다”며 “피해자가 울지 않고 침착하게 자신의 피해를 진술하거나, 증거를 잘 수집해 와도 의심을 받는다”고 봤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비동의 간음죄는 뭔가

결국 폭행·협박이 항거불능(또는 심신상실)의 상태까지 이르지 않은 가운데 거부 또는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성관계가 이뤄진 경우가 대상이다.

현재 국회엔 관련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은 ‘비동의 간음·추행죄’를 신설하는 형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강간죄가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인데 비해 비동의 간음죄의 경우 이보다 낮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제297조의 폭행·협박 규정을 손보는 안도 있다. 홍철호 자유한국당, 백혜련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안건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대신 ‘의사에 반하여’로 규정됐다. 강창일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안엔 ‘상대방의 명백한 동의가 없는 상태’로 돼 있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 안은 업무, 고용 등 관계로 사실상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람과 동의나 합의에 의하지 않고 성관계를 가질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의사에 반해’ ‘동의 없이’ 규정 어떻게

비동의했다는 걸 어떻게 법률적으로 규정할 지가 어려움이다. 김한균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6월 ‘비동의 간음죄 입법론의 비판적 검토’란 보고서에서 “범죄 성립 요건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비동의 의사 표시와 비동의 의사 표시에 대한 부인 행위가 인과 관계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했다.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상대방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확인돼야 한다는 의미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실제에선 애매한 대목들이 적지 않다. 우선 비동의 의사를 표시한 대상과 내용이, 성관계 경과를 이루는 개별 행위에 대해 각각 판별되어야하는지, 포괄적으로 전체 행위에 대해 판별되어야하는지 불분명하다고 봤다. 예를 들어 동의하에 시작된 성관계가 도중 비동의로 변경되었다면 어떻게 되는가 여부다.

실제 2013년 영국 고등법원이 질외 사정을 전제한 성관계에 동의했으나 이를 무시한 남성에 대해 강간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한 일이 있다. 영국 언론들은 “동의한 성관계인데도 강간죄가 될 수 있다”는 놀라움을 피력했다. 영국이 성범죄 요건으로 비동의를 채택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인데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면이 있다는 의미다.

복잡미묘한 건 또 있다. 소극적 비동의 의사와 적극적 거부 의사의 구별도 불분명할 수 있다. 강간죄의 경우 피해자의 동의가 있다고 오인한 때는 강간죄의 고의가 조각(阻却)되지만 피해자의 비동의 의사를 오인한 때는 어떻게 판단할 지 여부도 있다. 부부강간에도 비동의 간음을 포함할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전반적으로 형법의 과도한 개입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다.

비동의 간음죄 외에 거론되는 안은 없나

이 같은 난제 때문에 대신 제297조의 폭행·협박 기준을 완화하는 논의도 있다.

황주홍 민주당 의원은 2016년 11월 강간죄의 폭행·협박이 형법상 다른 폭행·협박에 준하도록 했다.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만이 아닌, 폭행·협박이 직·간접적으로 있어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다.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이 4월 대표발의한 법안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반항을 곤란하게 한 상태’로 돼있다. ‘현저히 곤란’을 ‘곤란’으로 완화한 것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서울대 법대 소장파 교수 시절인 2004년 『형사법의 성편향』을 발간했는데, 이 책에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에 반대한 일도 있다. 대신 기존 강간죄 규정을 조금 더 확대해서 해석하거나 규정을 개정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관련 처벌이 늘어나나

성폭력상담소가 올 발표한 ‘2017 상담 통계 및 상담동향 분석’에 따르면 성폭력상담소가 접수한 성폭행 피해자(124건) 중 현행 강간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경우는 12.2%(14건)이다. 이에 비해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강간죄로 처벌하지 못한 사례가 절반가량인 43.5%(54건)였다. 비동의 간음죄가 도입되면 처벌이 늘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가 입증해야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크게 늘진 않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올 7월 ‘예스 민스 예스’ 룰이 발효된 스웨덴의 변호사협회측은 “관련 범죄에 대한 유죄 선고가 많아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검사는 범죄가 성립한 것을 입증해야 하고, 당사자들은 본인들의 의사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증거에 대한 부담이 줄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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