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음치불가] 임재범 … 허스키 음색 + 파워 + 소녀적 감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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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내뿜을 수 있는 소리의 최대치인 성량은 사람마다 다르다. 주변을 울려대는 큰 성량의 소유자가 있는가 하면 개미소리만 한 작은 소리를 내는 이도 있다. 그러나 목소리만 크다고 해서 멋진 소리가 나오진 않는다. 흉성을 통해 고음에 다다르기 위한 중간 음역대를 채우고, 비성으로 보다 높은 음역에 오르는 터를 잡아서 두성으로 초고음을 구사한다. 몸으로 비유한다면 저음일수록 밑으로 돌려서 뽑고, 고음일수록 높은 곳에서 소리를 만드는 이치다. 그중에서도 가슴을 울려 내는 소리인 흉성은 거센 감정주입이 가능하고 소리에 육중함을 더해 주므로 카리스마적 보컬을 연출하는 데 단단히 한몫한다. 그러한 흉성에 허스키까지 잘 접목한다면 그 매력의 강도는 실로 엄청날 수 있다.

흉성의 풍부함과 육중한 파워에 허스키하고 강렬한 음색이 예술적으로 만나는 예가 임재범이다. 물론 흉성을 사용하면 미성의 소유자들에 비해 답답하게 들릴 수 있다. 또, 허스키를 쓰면 음역이 떨어진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임재범의 경우 흉성 이외에 초고음역에선 두성을 구사하며 거의 인식하지 못할 만큼 살짝 가성까지 덧입힌다. 때에 따라 비성을 섞어 그 맛을 절묘한 경지로 이끌기도 한다. 임재범만큼 그때그때 성대를 울리거나 조이는 방식을 써서 다양한 표정의 소리를 구사하는 보컬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한 다양성에 사춘기 소녀를 능가하는 예민한 감수성까지 갖췄다. 그는 앨범에서조차 박자를 무시하는 듯 자기 방식대로 자유로이 노래하기도 한다. 이것은 자기 스타일이 어느 수준 이상 도달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경지다. 록에 기반을 둔 파워에 유연한 솔 창법의 조화, 그리고 거기에서 엿볼 수 있는 감정주입은 가히 소름이 돋을 정도다. 중음역대에서 특히 임재범만의 매력을 발산하는 그 소리는 굵고 묵직하며 잘 숙성되어 있다. 그의 노래는 하나하나가 꿈틀대듯 살아있다.

음악계에 데뷔할 당시인 1980년대의 임재범은 시나위에서 헤비메탈을 노래했다. 로니 제임스 디오와 데이비드 커버데일로부터 영향받은 보컬 형태였다. 그러다가 솔로로 전향한 90년대부터 마이클 볼튼 스타일의 성악적인 솔 창법에 영향을 받았다. 거기에 자신의 장점을 꾸준히 계발시켜갔다. 쇳소리 같은 거친 음, 끝없이 고음역으로 강하게 내지르던 예전과 달리 90년대부턴 소리에 온기를 주어 그 풍성함을 더한 '임재범표 발라드'를 완성했다. 그리고 이는 국내 가요계의 판도를 바꿔놨다. 노래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임재범처럼 '굵은 음색'으로 부르려 했던 것이다. 박효신.박완규.테이.JK김동욱 등 셀 수 없이 많은 음악인이 임재범의 우산 아래 있다.

임재범은 한국 보컬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가 대중과 계속 거리를 유지하고 공연을 멀리해 신비화를 추구하는 것은 국내 음악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다 많은 라이브를 통해 현장에서 노래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후배들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주기 바란다.

조성진 음악평론가·월간 '핫뮤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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