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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년 버텼는데 5달만 더 살지” ‘헤어질 만남’ 준비 이산가족들

중앙일보

입력

오는 20일부터 진행되는 1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북한의 큰형(85) 가족을 만날 예정인 이수남(77)씨가 형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부 제공]

오는 20일부터 진행되는 1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북한의 큰형(85) 가족을 만날 예정인 이수남(77)씨가 형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부 제공]

67년이었다. 평안남도 순천군에 살다 1951년 1·4 후퇴 때 북한에 두고 내려온 남동생과 여동생을 그리며 조성연(86) 할머니가 견뎌온 세월이다. 죽기 전에 헤어진 가족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하늘의 별 따기라는 걸 알면서도 1980년대부터 계속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추첨에 당첨됐지만, 세 살 터울의 남동생과 여섯 살 터울의 여동생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동생은 올해 3월 세상을 떠났다. 불과 여섯 달 차이로 조 할머니는 여동생을 영영 볼 수 없게 됐다.

조 할머니는 대신 이번에 남동생의 부인, 여동생의 남편과 딸을 만난다. 그는 “앞으로 또 언제 만날지, 김정은(국무위원장)이 어떻게 할지 알 수가 없다. 이번에 만나서 제2의 이산가족이 될 거라면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앞으로 서신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통일부와 적십자사에도 이야기했다”면서다.

오는 20~22일 진행되는 1차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는 89명. 조 할머니처럼 이번에 만나면 또 언제 볼지 알 수도 없는 ‘헤어질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이산가족 고령화로 부모와 자식 간은 물론이고, 형제·자매 간 상봉도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이춘애(91) 할머니는 남동생을 만나고 싶어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번에 명단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다섯살 터울의 남동생이 지난해 9월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할머니는 “동생이 하필 작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속상해 며칠 동안 밥도 못 먹었다”고 말했다.

함북 성진시(현재 김책시)가 고향인 이 할머니는 시댁 식구들과 피난을 내려오면서 어머니, 동생과 헤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두 달이면 피난 생활이 끝날 줄로만 알았다. 남동생의 부인도 이미 사망해 이 할머니는 이번 상봉에서는 조카딸과 조카며느리를 만나게 됐다.

함경북도 명청군 남면 마전리가 고향인 김광호(80) 할아버지는 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군함을 타고 내려왔다. 부모님과 7남매 중에 김 할아버지와 큰형과 셋째 형, 누나, 아버지만 군함에 올랐다. 가족이 모두 함께 피난길에 오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 김 할아버지는 “그때 한 1주일이면 다시 원상복귀가 된다고 했다. 잠시만 옮겼다가 바로 복귀하면 된다고 이야기가 돼서 굳이 여자, 노약자, 아이들은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오다 보니까 계속 밀리니까…. 1주일을 생각하고 왔는데 가다 보니까 68년이 됐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김 할아버지는 이번에 남동생(78)과 부인을 만난다. 김 할아버지는 “그때 피난오면서 ‘나오면 고생이니까 동생까지는 집에 있자’ 그렇게 됐다. 어린애가 집에 있으니까 어머니도 못 나왔다”고 돌아봤다. 그는 “(함께 남한으로 피난온)형님들은 다 60대에 돌아가셨다. 사실 동생도 여든에 가까워오는 나이인데 그렇게 오래 살아 있었을까 하고 기대를 많이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그 나이까지 살아준 게 참 고맙다”고 말했다.

이수남(77) 할아버지는 50년 서울에 살다 인민군에 끌려간 형(85)을 만난다. 이 할아버지는 “우리는 형제 1명을 잃은 거지만, 형 입장에서는 모든 가족과 친인척을 다 잃은 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부모님이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가 새벽에 장독대에 물을 떠다놓고 (형을 위해)기도하는 모습을 여러번 봤다. 그걸 10년 동안 계속 하셨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은 금강산에서 1차(20~22일, 북측 주관, 남측 방문단 89명이 북측 가족 상봉)와 2차(24~26일, 남측 주관, 북측 방문단 83명이 남측 가족 상봉)에 걸쳐 이뤄진다. 가족들은 2박 3일 동안 단체 상봉과 개별상봉, 환영만찬 등을 통해 여섯 차례 얼굴을 마주한다.

공동취재단,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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