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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피하고 타이슨 걸린 '예스 민스 예스 룰'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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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변선구 기자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변선구 기자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 근거로 쓰인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과 ‘예스 민스 예스 룰(Yes Means Yes rule)’에 대한 논란이 15일에도 이어지고 있다. ‘노 민스 노 룰’은 상대방이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는데도 성관계를 하면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예스 민스 예스 룰’은 ‘성관계에 동의한다’는 뜻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성관계를 강간으로 보는 규정이다.

이 논란은 전날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조병구)가 안 전 지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이 두 가지 룰이 입법화되지 않은 현행 성폭력 범죄 처벌 법제하에서는 피고인의 행위를 처벌하기 어렵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검찰이 피해자로 판단한 김지은씨의 이 사건 당시 의사가 어땠는지를 판결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재판부가 언급한 이 두가지 룰은 미국 법조계에선 1970년대부터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피해자가 모든 육체적 힘을 다해 가해자와 싸우는 극도의 저항(utmost resistance)을 했을 때만 강간으로 인정하는 판결 관행에 대해 여론의 역풍이 불면서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법원 판결에 항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법원 판결에 항의하고 있다. [중앙포토]

당시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강간반대운동(anti-rape movement)이 일어나면서 ‘노 민스 노 룰’이라는 슬로건이 등장했고, 이를 법에 반영한 주(州)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뉴햄프셔주 등에선 ‘예스 민스 예스 룰’에 따라 상대방의 명시적 동의(affirmative consent)가 없는 성관계는 강간으로 보고 있다. 스웨덴 의회도 최근 이 같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핵주먹’으로 불렸던 권투선수 마이크 타이슨(52)이 1991년 대학생을 강간했다가 징역 6년을 선고받은 것이 ‘예스 민스 예스 룰’이 적용된 대표 사례다. 당시 타이슨은 “여성이 호텔방에 들어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알았고 사실상 성행위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피해 여성이 다음 날 병원으로 간 점과 찢어진 속옷, 몸에 난 상처를 증거로 한 성관계 부동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호텔방에 함께 들어간 것만으로 동의했다는 식으로 강간을 정당화 할 수는 없고 자신의 의사에 반해 이뤄졌느냐 여부가 중요하다”는 검사 주장을 받아들였다. 김형진 미국변호사(법무법인 정세)는 “아직 한국에선 남성 중심적인 시각이 형사법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이크 타이슨 [AP=연합뉴스]

마이크 타이슨 [AP=연합뉴스]

하지만 미국 모든 법정이 이 같은 룰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2015년 예일대 기숙사에서 일어난 강간 사건 가해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그 사례다. 이 학교의 한 남학생은 핼로윈 파티 뒤 술에 취한 여학생을 기숙사로 데려다 준 뒤 성관계를 가졌고, 여성은 “성폭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상대방과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와 파티 때 여성이 입은 의상을 근거로 “성폭행 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판결 뒤 ‘예스 민스 예스 룰이 어떻게 법정에서 흐려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판결’이라는 제목의 비판 기사를 냈다.

성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됐던 안희정 전 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앞에서 한 여성이 안희정 전 지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플래카드를 뺏으려하고있다. 변선구 기자

성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됐던 안희정 전 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14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앞에서 한 여성이 안희정 전 지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플래카드를 뺏으려하고있다. 변선구 기자

일본의 분위기는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4월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 재무성 사무차관이 여기자들에게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 “안아도 되느냐”고 말한 음성 파일까지 공개됐지만 재판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구두 경고를 했다”며 사건을 무마했을 정도다. 김민조 법무법인 태평양 일본팀 변호사는 “일본에선 연예인 정도는 돼야 성범죄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삼는 분위기”라며 “한국이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데 일본보다 조금 더 앞서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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