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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 알몸으로 길에 누운 男…法 "음란행위 아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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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음란죄 관련 이미지. [픽사베이]

공연음란죄 관련 이미지. [픽사베이]

지난해 여름,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30대 남성 김모씨는 혼자서 술을 마시다 갑자기 옷을 모두 벗고 점포 앞 인도에 누웠다. "갑자기 비가 오길래 비를 맞고 싶기도 하고 날씨가 더워서 옷을 벗고 누워있었다"는 것이 나중에 김씨가 밝힌 이유였다. 당시는 7월 마지막 주로 여름 중 가장 더운 때였고 시간은 새벽 1시쯤으로 인적이 드물었다.

하지만 누군가 본 사람이 있어 경찰에 신고하게 됐고, 김씨는 '공연음란죄'로 기소됐다. 본래 약식으로 기소했기 때문에 벌금만 내면 끝낼 수 있는 일이었지만 김씨는 정식 재판을 받겠다고 했다.

김씨 사건을 맡은 인천지법 형사12단독 이영림 판사는 지난 6월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김씨가 편의점 앞 길거리에 나체로 성기를 드러낸 채 누워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음란한 행위'는 아니라고 봤다.

판례에 따르면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행위"와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는 음란한 행위"는 다르다. 대법원은 지난 2004년 3월, 말다툼하던 상대로부터 "술을 X구멍으로 먹었느냐"는 말을 듣고서 바지를 내리고 "X구멍으로 어떻게 술을 먹느냐, 술을 부어 봐라"며 신체 노출을 한 사건에 대해 "보는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주는 정도에 불과하다"며 공연음란죄가 아니라고 봤다.

이 판사는 이런 판례의 취지를 생각하면 김씨는 무죄라고 봤다. "옷을 전부 벗음으로써 성기가 노출되는 결과를 무관심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당시 새벽 1시였던 점, 노출 경위와 지속 시간에 비추어 성적 동기나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그는 판단했다. 또 "특이한 성적 취향이나 성적 일탈 행동을 저지르는 성향이 있다고 인정할 자료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 판사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노출을 꺼리는 성기나 엉덩이 등의 신체 부위를 공연히 노출하였다는 것만으로 바로 음란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알몸 상태로 성기를 노출한 것 외에 김씨가 성적 행위를 표현하거나 간접적으로라도 성적 행위를 연상할 수 있는 행위를 한 바는 없다"고 봤다.

김씨에 대한 무죄 판결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김씨를 기소했던 검찰은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고, 지난달 3일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인천지법 형사항소3부(부장 김현순)에서 2심이 진행된다.

형법상 '공연음란죄'는…

사진 내용은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사진 내용은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공연음란죄는 1953년 형법이 처음 생길 때부터 있던 역사가 오래된 죄다. 형법 245조는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이 선고되지만, 때로 실형이 선고되기도 한다. 여성 혼자 일하는 편의점에 들어가 성기를 보이는 등 노출행위를 반복한 남성 A씨는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2017년 5월, 울산지법). PC방에서 음란영상을 틀고 자위행위를 하다가 여성 종업원까지 불러 이를 보게 한 남성 B씨는 징역 4개월을 선고받았다(2017년 6월, 울산지법).

'음란한 행위'란 반드시 본인이 성욕의 흥분이나 만족을 느끼려는 '성적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화를 내려고 옷을 벗는 경우도 음란행위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원 앞길·도로 등에서 "화가 난다"는 이유로 욕을 하며 상·하의를 모두 벗은 여성 C씨의 행동도 공연음란죄가 된다(2014년 8월, 울산지법).

자신이 하는 행위가 다른사람에겐 음란하다고 보일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경우라면 무죄다. 만취 상태에서 대로변을 향해 노상방뇨를 한 60대 남성 D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2018년 6월, 서울동부지법). 노래방에서 다른 일행이 있는 방을 화장실로 착각해 문을 열고 들어가 바지를 내린 E씨도 무죄를 받았다(2015년 4월, 울산지법).

다만 형법상 공연음란죄는 아니더라도 경범죄처벌법상 과다노출로 처벌받을 수 있다. E씨의 경우 공연음란죄는 아니지만 과다노출이 인정됐다. 경범죄처벌법 3조 1항 33호는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엉덩이 등 신체의 주요한 부위를 노출하여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과료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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