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피해복구 희망을 모읍시다] "자장면 먹고 힘내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태풍 '매미'가 몰고 온 해일이 2백여 상인들의 터전을 삼켜 버린 경남 마산시 남성동 마산 어시장 입구. 문을 닫은 횟집 위에 걸려 있는 '자장면 드시고 힘내세요'라는 현수막 아래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자장면을 그릇에 담아 내놓기 바쁘지만 몰려드는 인파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요리사 복장을 한 13명이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커다란 솥에서 자장을 볶아내고 밀가루 반죽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서울 강동구 중식업연합회 자원봉사단 13명이 16일부터 이틀째 벌이고 있는 자장면 자원봉사 현장이다.

이들이 솥, 화덕, 면뽑는 기계, 그릇 5백여개 등을 트럭에 싣고 이곳에 도착한 것은 16일 새벽. 밤새 천리길을 달려온 피로도 풀지 못한 채 면을 뽑고 자장을 만들어내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6일 3천여 그릇이 나갔고 17일에는 4천여 그릇이 사라졌다. 그릇당 3천원을 잡아도 하루 1천여만원어치에 이른다. 서울에서 준비해 온 재료가 바닥나 현지에서 조달하고 있다.

마산 어시장 일대 1백50여개 횟집들이 문을 닫아 식사를 해결할 곳이 마땅치 않은 자원봉사자, 어시장 상인 등이 이 곳의 신세를 지고 있다. 아예 그릇 10여개를 한꺼번에 갖고 오거나 커다란 냄비를 가져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해일로 흙투성이가 된 가게를 청소하다 냄비를 들고 온 심무창(51.마산시 자산동)씨는 5명 분의 자장면을 받아갔다.

심씨는 "식당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함께 청소하던 가족들이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왔다"며 "생업을 미루고 이곳을 찾은 분들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봉사단원들은 경력 30년 이상의 중국집 주방장이나 주인들로 구성돼 있어 자장면 맛도 일품이다.

해일이 덮친 시장통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이곳을 찾은 대우백화점 마산점 직원 신지나(20.여)씨는 "일류 요리사들이 만든 자장면이라서 그런지 정말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자장면은 처음 먹어 본다"고 말했다.

자장면 자원봉사대원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자장면을 만들고 있다. 20㎏짜리 밀가루 20부대 분량이다. 자신들의 점심식사는 매일 오후 4시30분에야 해결하는 강행군이지만 표정은 밝기만 하다.

서울 강동구 성내3동에서 경영하는 중국집을 부인에게 맡기고 현장을 찾은 김정호(54)씨는 "태풍으로 채소값이 폭등해 현지에서 구입하려니 돈도 많이 들어가지만 자장면을 먹고 힘을 내는 이재민들을 보니 기쁘다"고 했다.

자장면 그릇을 씻는 일은 한나라당 회원지구당 여성봉사단 10여명이 맡고 있다. 이들은 김치 등 밑반찬을 가져와 자장면 자원봉사 활동을 돕고 있다.

마산=김상진 기자<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