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지구당 경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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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공 비리 문제로 세상이 온통 떠들썩하고 민정당이 궁지에 몰리고있는 와중에 충남 금산의 민정당 당원들은 10일 오후 당내 민주주의를 위한 하나의 실험 무대를 꾸몄다.
사실상 우리 정당 사상 처음으로 지역 당원들이 지구당 위원장을 내 손으로 뽑는 자유 경선이 실시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중앙에서 공천하고 지구당 대회는 으레 『만장 일치의 박수로 뽑읍시다』는 판에 박힌 형식에 따라 추대되는 절차가 거의 제도화 돼 있었다.
이번 금산 지구당 경선은 그런 의미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금산군 전체 인구 10만여 명에 당원이 1만3천명쯤(실질 활동 당원은 3천∼4천명)이며 이들 당원들이 기존 대의원 80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 1백 명을 이 단위에서 투표로 선출했다.
기초 단위에서부터 민주주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두 명의 엇비슷한 후보가 출마하고 보니 자연 경쟁은 치열했고 일부 과열 현상도 보였다. 『수 천만 원이 들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중앙 실력자를 쫓아다니고 그 집 문턱에서 굽실대는 추한 모습에 비한다면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는 「과열」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투·개표는 긴장감과 열기 속에 진행됐다. 과열에 비하면 사고도 없었고 질서도 유지됐다.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95대 90이란 근소한 표 차의 개표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승자와 패자가 서로 얼싸안고 축하와 위로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장내는 일제히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승복의 자세에 이르기까지 경선 제는 이미 말단 조직에선 제도적으로나 의식 수준 면에서나 충분히 성숙돼 있음을 확인하는 현장이었다.
이 날 대회는 기계적이었던 지금까지의 개편 대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지했고 참석 대의원들은 뿌듯한 자부심에 넘치는 모습이었다.
지구당 위원장 경선 제가 건강한 정당 발전의 기초가 되며 이는 곧 민주제도 정착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금산대회 하나만으로 모든 게 이뤄진 건 물론 아니다. 오물을 퍼붓고, 각목을 휘둘러대던 지난날 야당의 지구당 개편대회 기억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산대회는 그라스루트(풀뿌리) 민주주의로 가는 길목의 한 중요한 전진으로 봐도 틀림없을 것 같다. 허남진<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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