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꿈쩍 못하던 74세 할머니를 수영장 물개로 만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인생환승샷(49) 60 넘어 남 돕는 기쁨을 깨닫다, 공남순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왼쪽이 나고, 오른쪽 안경 쓰신 분이 정용이 여사다. 수영 시작하고 한달쯤 지나 같이 점심 후에 같이 찰칵 찍었다. [사진 공남순]

왼쪽이 나고, 오른쪽 안경 쓰신 분이 정용이 여사다. 수영 시작하고 한달쯤 지나 같이 점심 후에 같이 찰칵 찍었다. [사진 공남순]

“네? 뭐라고 하셨어요?”
“수영장 좀 알려주세요.”

그녀를 만난 건 하늘이 맑았던 4월의 마지막 수요일. 여느 때와 같이 노인회관에서 점심을 먹던 중이었다. 나는 올해로 67세, 몇 년 전 어깨와 무릎 시술을 하고 의사의 권유로 수영 재활운동을 지금까지 하는 터인지라 자연스럽게 옆 사람과 “몸을 못 움직이면 수영장에 가서 벽이라도 붙잡고 물속에서 운동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를 한참 하던 중이었다.

정용이 여사, 올해로 74세. 뇌졸중 14년째 아무도 찾지 않고 관심도 없는 1급 장애인이다. 수영장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고 혼자서는 갈 생각도 못 하고 있다가 수영을 권하는 대화를 듣고 용기를 내어 물어보게 되었다 한다. 그녀의 눈빛과 표정을 보고 있자니 그냥 도와주고 싶었다.

나를 보호자로 하고 수영장 회원등록을 도왔다. 하지만 매일 나와 같이 입장하지 않으면 정 여사는 혼자서 들어갈 수가 없단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수영장, 지팡이를 짚고 벌벌 떨며 바로 설 수도 걸을 수도 없는 상태다. 나 자신도 힘들기도 했고 걱정이 많이 됐다.

둘째 주에 들어서자 전엔 발에 쥐가 나 잠을 못 잤는데 물에서 운동하니 조금 좋아진다고 하며, 이후엔 통증이 없어져 잠을 잘 잤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 20여일 후에는 혼자 바로 서서 걸을 수가 있었다.

수영 후 양주 국민체육센터 앞에서 정용이 여사.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찍고 싶었지만 촬영 금지라 찍지 못했다. [사진 공남순]

수영 후 양주 국민체육센터 앞에서 정용이 여사.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찍고 싶었지만 촬영 금지라 찍지 못했다. [사진 공남순]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사람들은 듣기에 힘든 불편한 말들을 해댔다. 그들의 불편한 시선은 결국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음이 감사함으로 나와 정 여사를 향한 많은 이들의 온갖 조롱과 비난을 참으며 그렇게 운동에 전념했다. 느리지만 꾸준히 누가 뭐라든 1개월을 꾸준히 돌보며 운동을 시켰다.

2개월째 되던 어느 날부터 드디어 그녀 ‘혼자’ 수영장 입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내가 없어도 혼자 휠체어에서 일어나 카드를 잘 찍고 들어간다. 그녀는 지금도 물속에서 양팔을 휘저으며 활개를 치며 다니고 있다.

정 여사는 전에 우체국에서 근무했고 누구보다 활발히 사회생활을 했었다 했다. 그러나 아픈 후로 친구도 없고 고립된 삶이었다는데, 이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게 전화해 같이 먹으러 가잖다. 나랑 친구가 되어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다른 사람과의 대화할 때면 자연스레 내가 통역사가 되어 있다.

요즘엔 겨울이 오면 따뜻한 나라로 도피 여행계획도 세우며 즐거운 꿈을 갖고 있다. 남은 생을  누리며 즐겁게 살기를 원한다고 하신다. 그녀는 나를 만난 후 새 삶을 찾게 되었다며, 부끄럽지만 나를 볼 때마다 늘 “공남순 님을 만난 것이 기적이에요”라고 인사한다. 처음 만난 날 간곡한 부탁에 수영장만 가르쳐 주려고 안내를 했다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모든 일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 했던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