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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현장 누비다 화가 꿈 이룬 세 아이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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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환승샷(50) 하고 싶은 일을 찾는 행복, 김수경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안전시설물 공사를 하던 시기에 호이스트카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셀카도 찍을 만큼 여유로워 졌지만 처음 호이스트카를 탔을때 &#39;엄마야!&#39; 하며 작업 반장님의 팔을 움켜 잡았던 기억이 있다. [사진 김수경]

안전시설물 공사를 하던 시기에 호이스트카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지금은 셀카도 찍을 만큼 여유로워 졌지만 처음 호이스트카를 탔을때 &#39;엄마야!&#39; 하며 작업 반장님의 팔을 움켜 잡았던 기억이 있다. [사진 김수경]

내가 마흔일곱에 꾸는 꿈은 화가이다.

딱 오십이 되면 붓을 잡으려고 했다. 건축 일이 나름 적성에 맞았으나, 잦은 야근과 또 크고 작은 인명 사고를 접해야 하는 것이, 또 초·중·고 세 아이를 제대로 돌보고 있지 못하다는 자괴감이, 가끔은 일과 가정의 조율이 힘겨워 남모르게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래도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집을 조금 넓혀 이사하고 퇴사했으니, 어쩌면 내 인생에서 건축은 자기의 역할을 나름 충실히 하고 연을 맺게 되었다 하겠다.

할머니 댁 창문에 가위로 모양을 내서 종이를 붙이며 놀았던 것, 초등학교 때 긴장되는 마음에 청심환을 먹고 서예 대회에 나갔던 기억, 대학교 때 화실 수업, 의상학과 드로잉 수업을 들었던 것, 투시도를 배우려 서울 생활을 시작했던 것, 도서관에 미술 분야 수업을 개설한 것, 도예가의 집에 방 한 칸을 임대해 가족이 주말을 보냈던 기억, 다시 만난 백파 선생님과 올해 시작한 신영복 민체 등 이 모든 과정이 내 인생의 퍼즐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었다.

올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성공기원 세계축전’에 작품을 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어느 큐레이터의 “김수경 화백님이세요?”라는 전화를 받고 며칠이나 화백이란 말로 가슴 설렜다. 밤새 작업하는 일이 많아졌고, 공연을 찾아다니고, 나만 아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고, 개인전을 보러 가고, 화가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화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을 그렸다.

묵림심연전 전시. 내가 그린 작품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 김수경]

묵림심연전 전시. 내가 그린 작품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 김수경]

민체는 운명처럼 시작했다. 전시회에 참여 후 무턱대고 글씨를 써 가다 보니, 큰 아이 학교의 플래카드에 내 글씨가 걸리는 행운이 왔다. 책에 실릴 자료를 위해 글씨를 한번 써보라는 제안도 받고, 예술가들의 축제에 동참하는 등 성급하지만 나름의 내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내겐 선생님이 두 사람이다. 나라에 경사가 생기면 왕이 관료를 모아놓고 시를 짓고 또 그림을 그리며 여흥을 즐기는 한편, 객주거리의 광대 패는 한마당 잔치를 벌인다. 한 사람은 누각 위에서 양반의 글과 그림을 그리며 멋을 이야기하는 선생님이고, 한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짓고 거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하는 민체 선생님이다.

한 가지에 몰입해서 기본기를 다져야 할 테지만, 함께하여 얻게 되는 사고의 확장이 기대 이상이다. 두 선생님으로 인해 확대되는 인간관계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글씨를 쓰기 위해 읽어야 하는 좋은 글로 인해 풍요로워지는 마음은 내가 이 길을 가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중년이란 나이에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것, 약간의 재능이 있는 것, 즐겁게 하는 것. 더 이상의 축복이 또 있을까. 내일도 나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거나,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거나, 행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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