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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아이 잃은 깊은 슬픔, 문학으로 치유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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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인생환승샷(48) 봉사에서 얻은 문학, 한상림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강동구새마을부녀회원들과 함께 1박2일로 충북 진천에서 농촌일손을 도왔다. 오른쪽에서 다섯번째 사람이 나다. [사진 한상림]

강동구새마을부녀회원들과 함께 1박2일로 충북 진천에서 농촌일손을 도왔다. 오른쪽에서 다섯번째 사람이 나다. [사진 한상림]

내 인생의 환승역은 바로 봉사에서 얻은 문학이다.

‘아니, 벌써 환갑이라니…’ 정말 실감 나지 않는다.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싶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후회스러운 일만 떠오른다. 여고 시절의 꿈이 작가였고, 뒤늦게 아이들을 키우면서 꿈을 이뤘지만 아직도 내가 가야 할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남편과 단둘이 어느 깊은 산골에 가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40대 중반이었다. 늦게서야 문학의 길로 들어서 약 15년간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미친 듯이 앞만 보면서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첫 아이 출산도 늦은 데다가 둘째, 셋째, 넷째 늦둥이까지 아이 넷을 낳는 데 무려 1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2017년 약 2천포기 김장김치를 담아 관내 독거 어르신들께 나눠드렸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다. [사진 한상림]

2017년 약 2천포기 김장김치를 담아 관내 독거 어르신들께 나눠드렸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다. [사진 한상림]

아이 넷을 월급쟁이 남편의 수입으로만 기르고 가르치기엔 너무도 벅찼다. 쪼들리는 살림살이로 남편과 잦은 갈등이 시작됐고, 보이지 않는 벽이 높게 쌓여만 갔다. 네 아이의 엄마로서 주체할 수 없는 양육 문제로 남편과 잦은 갈등 끝에 그만 고2인 큰 아이를 잃게 된 것이다.

작은 아이들에게 신경 쓰다 보니 큰 아이에게는 제대로 관심을 갖지 못하고 절절매다가 그만 큰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그친 결과 내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떠난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은 나와 남편 모두에게 있지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남편이 아직도 너무도 밉기만 하다. 아마도 여느 부부 같았으면 그 이후 이혼하는 게 마땅했을 거다. 부부가 서로 먹먹하여 제대로 대화조차 못 하고 가슴 조이면서 살았다.

매일 가슴에 담긴 이야기를 카페 글방에 써가면서 독자들의 위로에 큰 힘을 얻었다.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가 되어 약 1000편의 일기를 쓰다가 시를 배워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시집을 두 권 만들어 세상에 발표했고, 지금은 지역신문사 여러 곳에 칼럼을 쓰는 중이다.

첫 시집 『따뜻한 쉼표』 출판기념회날 가족들과 함께. 빨간 한복 치마를 입은 사람이 나다. [사진 한상림]

첫 시집 『따뜻한 쉼표』 출판기념회날 가족들과 함께. 빨간 한복 치마를 입은 사람이 나다. [사진 한상림]

2000년도부터 시작한 새마을부녀회 봉사자의 길 또한 우연만은 아니었다. 새마을부녀회원으로 봉사하는 삶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나보다 더 힘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현장에서 직접 보면서 남은 아이들 셋을 잘 길러야 한다는 용기를 잃지 않게 된 것이다. 봉사와 문학, 그것은 바로 내 인생의 주역이 된 삶의 원천이고 샘이었다.

지금은 서울시 강동구 새마을부녀회장으로 4년째 우리 구의 구석구석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면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새마을부녀회에서 하는 일은 너무도 많다.

홀몸 어르신 반찬 만들어 드리기, 떡국 떡 행사, 송편 행사, 김장김치 나누기, 마을 가꾸기, 아나바다운동, 한 자녀 더 갖기 운동, 매달 어르신 약 600명께 점심을 직접 준비해 나눠 드리기, 농촌일손돕기 등등….

2017년 추석날 다문화 이주여성들과 같이 송편을 빚어 반찬과 함께 관내 홀몸 어르신들 약 200여분께 나눠드렸다. 왼편에 서 있는 게 나다. [사진 한상림]

2017년 추석날 다문화 이주여성들과 같이 송편을 빚어 반찬과 함께 관내 홀몸 어르신들 약 200여분께 나눠드렸다. 왼편에 서 있는 게 나다. [사진 한상림]

그런 일을 하다 보면 거의 매일 1년 내내 주말에도 나가서 봉사활동을 하게 될 때가 잦다. 가족, 특히 남편의 이해와 배려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들과 특히 남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남편과는 신혼여행 외에는 단둘이 여행 한번 못 가보고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하고 말았다. 늙어가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 아직도 늦둥이 가르치느라 밤낮 일만 하면서 국내 여행 한 번 해본 적 없는 모습이 너무도 안쓰럽다. 앞으로 건강만 허락한다면 남편과 함께 죽는 날까지 봉사하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글로 써서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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