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때 중앙아시아로 집단 이주|소련 이민 백25년…한인 동포 생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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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소련내 한인동포는 40여만명. 중국·미국·일본에 이어 4번째로 많은 우리동포가 살고있다.
소련의 노보스치통신사는 중앙아시아지역 카자흐공화국수도 알마아타에 있는 한글신문 레닌기치의 동포3세 기자 「부르트·김」에게 1백25년의 한인 이민사를 취재·보도하도록 의뢰했다.
김씨는 1년여에 걸쳐 소연방전역을 답사하면서 한인이민의 발자취를 수집했다.
그에 따르면 최초의 러시아이민은 1863년 한인 13가구가 율도라는 낙원의 섬을 찾아 연해주 띠진하강유역에 정착한 것.
그후 동포의 숫자는 급증해 1893년에는 러시아제국정부가 일단의 동포들에게 15㏊의 농지를 분배하여 클락(부농)의 계급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1917년 혁명이 일어나면서 동포들은 적군과 백군으로 갈려 서로 총을 겨누는 비극도 있었고「스랄린」시대에는 모두가 집단화의 대상으로 분류되어 중앙아시아로 죽음의 이주를 해야했다.
광활한 황무지에 내팽개쳐진 동포들은 피와 눈물을 뿌리며 그곳에서 새로운 농지를 일궈 현재의 동포사회를 건설했다.
「부르트·김」은「가야금소리가 마베란나흐르 하늘에 울려 퍼지고있다」라는 그의 글에서 끊임없이 묻고있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됐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그의 물음처럼 그곳 동포들은 그들의 뿌리, 자신들의 조국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래서 끝내 조국땅을 밟지 못한 채 한많은 삶을 마감한 동포의 장례식에서는 『형제여, 비록 몸은 이곳에 묻혔지만 영혼만은 멀리 조국의 하늘까지 날아가서 조국의 흙 속에 잠들라』는 기원이 그치지 않는다.
「부르트·김」의 원고와 사진은 노보스치통신사의 제공으로 슬라브연구사 (대표 최숭) 에 의해 국내에서 출판될 예정이다.
이 글의 발췌게재에 앞서 우선 중앙아시아 한인동포들의 생활상을 화보로 엮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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