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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인한의 퍼스펙티브

남은 자 위한 ‘노회찬 효과’ … 고통 이기고 삶의 의미 새겨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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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살 만한 세상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1774년 출간되었다. 비극적 사랑의 결말을 그린 이 소설은 유럽 전역에 큰 영향력을 미쳐 나폴레옹이 전장에 가지고 다니며 16번을 통독하고, 영국 총리 디즈레일리도 수십 번 읽었다고 한다. 심지어 근대화 시대 아시아에까지 영향을 미쳐 사회 통념을 넘어서는 개인감정의 자유에 대한 가치관으로 문화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괴테는 단순히 감수성 충만한 사랑 소설이 아니라 당시 귀족사회의 통념에 반대하는 젊은 지식인의 비판을 담아, 개인의 감정과 욕망이 사회적 가치를 넘어설 수 있다는 주장을 담았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베르테르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이에 대해 귀족들은 나약함의 결과로 파악하고, 성직자는 자살사라는 이유로 장례에 동행하지 않았다는 묘사를 통해 당시 시대상이 드러난다.

우리는 모두 ‘자살 생존자’ #소중한 사람 잃은 아픔 속에서 #서로 깊은 관심과 이해 가지고 #‘외상 후 성장’ 경험할 수 있어야 #극단 선택을 죄로 판단해선 안 되나 #결코 문제 해결 방법이 돼선 안 돼 #유명인 극단 선택이 대중에 미치는 #‘베르테르 효과’를 막기 위해 #자극적 보도를 신중하게 자제하는 #언론의 ‘파파게노 효과’ 필요해

그런데 출간 때부터 ‘베르테르 열병’으로 불리며 유럽 청년들에게 감성적 파급력을 미친 이 소설의 영향은 예기치 않은 다른 방향으로 번져나갔다. 주인공 베르테르의 비극적 사랑에 공감한 청년들이 소설 속 베르테르의 의상을 모방해 입는 것을 넘어 우울감에 젖고 자살하는 일이 연이어 일어난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2000명 이상의 젊은이가 사망하였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현상에서 이름을 따 200년 후 1974년 뉴욕주립대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유명인의 자살 후에 모방자살이 급격히 증가하는 사회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The Werther Effect)’라 명명하였다. 이후 연구들에 따르면 유명인 중에서도 특히 동일시할 수 있고 친밀한 느낌이 드는 대상의 자살에 더 영향을 받는 것이 발견되었다.

유명인 비극 따라 하는 베르테르 효과

퍼스펙티브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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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도 유명인의 자살 이후에 자살자 수가 급격히 늘었던 현상이 발견되었다.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던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직후 전년 동일 기간 대비 2배 가까이 자살이 늘었다. 특히 동일한 자살 수단을 쓴 사례 수가 많게는 10배 이상 늘었다는 점에서 베르테르 효과의 영향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유명인의 자살을 그대로 모방한 직접 효과도 있겠으나, 자살의 위험성을 이미 내면에 가지고 있던 상태에서 사건의 자극으로 인해 추상적 계획이 구체적 시도로 옮기게 되는 것이라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유명인의 자살 방법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습득하게 되고, 또한 유명인이 문제에 직면해 택했던 극단적 선택을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잘못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이미 내면에 위기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조차도 실제 본인의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유명인의 사고에 원인을 돌려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언론과 대중매체의 역할이다. 언론의 중대한 역할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보도 방식이 많이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일부 언론은 과도한 묘사와 선정적 표현을 사용하고, 자살 장소나 방법에 대해 지나치게 자세하게 보도하기도 한다. 이는 남아있는 유가족과 동료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까지 큰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흔히 자살생존자(suicide survivor)는 자살시도 후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잘못 이해되곤 하지만 의미 있는 사람을 자살로 잃고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을 뜻한다. 자살생존자는 사별에 의한 상실감과 죄책감, 애도감을 느끼는 심리적 고통을 경험한다. 또한 사고 현장을 직접 봄으로써 시각적 충격의 잔상이 남아 고통이 지속하고, 이후에도 자살자의 심정이나 정황, 과정에 대해 상상을 하면서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시각적, 상상적 트라우마를 가중하는 것이 일부 언론의 과도한 보도다.

자살 예방하는 파파게노 효과

보도를 축소한다는 것이 대중의 알 권리, 언론 자유의 권리와 충돌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모방 자살 파급을 낳을 수 있는 언론의 역할에 대한 언론 자체의 자정 작용으로 2004년 자살보도권고기준이 처음 제정되었다. 이를 근거로 ▶자살 관련 보도를 가능한 한 최소화하고, ▶자살이라는 단어 사용을 자제하며, ▶선정적 표현을 피하고, ▶유가족 등 주위 사람을 배려하는 신중한 자세를 가지며, ▶자살 방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자살이 문제 해결의 수단임을 암시하지 않는 등의 보도기준이 자발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바로 이렇게 자살에 대한 보도를 자제함으로써 자살 예방 효과를 가져오는 ‘파파게노 효과(Papageno effect)’가 베르테르 효과의 대척점에 있다. 『베르테르의 슬픔』 출간과 비슷한 시기인 1791년 빈에서 초연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새잡이꾼 이름에서 온 용어다. 파파게노가 헤어짐의 아픔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순간 세 요정의 도움으로 자살 생각을 극복하고 파파게나와의 사랑을 다시 찾는 장면에서 가져온 이 표현은 자살 예방을 위한 언론의 긍정적이고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다.

2018년 우리의 슬픔

2주 전 우리는 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훌륭한 정치인이라 할 수 있는 노회찬 의원을 잃었다. 정의와 평등을 추구하며 동시에 문화를 사랑했으며, 첼리스트부터 용접공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삶을 체험하며 살아왔기에 그 넓이만큼이나 유연하고 부드럽게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 그 삶의 폭 만큼이나 자유로운 생각 속에서 번뜩이는 재치와 웃음을 전해주었으며 가장 소외된 이의 삶까지도 넓은 시선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던 인물이었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그를 추모하며 애통함을 느끼고 있다. 그를 잃는 경험을 통해 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큰 상실감 속에서 경험하고 있다. 단순히 유명인이라서가 아니라, 재치와 해학과 소박함의 친근한 아이콘이었던 그였기에 치명적인 베르테르 효과가 있지는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것 같은 희망의 상징이 무너졌을 때 받게 되는 충격이 크다.

삶의 이유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한 것이 죽음이건대 어찌 전근대적인 편견처럼 단순하게 자살은 죄라고 판단하겠는가. 그가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던 마음을 전부 다 헤아릴 도리는 없으나 남긴 글을 통해 그의 마음을 짐작해 볼 뿐이다.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얼굴을 들 수 없다.…죄송할 따름이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자살학의 권위자 토머스 조이너는 자살 원인 중 하나로 주변의 사람에게 짐이 된다고 느끼는 부담감을 들고 있다. 개인의 명예보다 그가 살아왔던 인생, 동지와 조직에 짐이 된다는 느낌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지점은 사회학자 뒤르켕이 이야기했던 이타적 자살의 개념과도 맞닿는다. 집단에 깊이 통합됨으로써 집단을 위해 개인이 기꺼이 희생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집단은 다만 소속 정당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가치와 신념까지도 포함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 의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선택에 대해서는 엄중할 수밖에 없다. 자살이 남은 사람들에게 가지는 파급력을 생각할 때 그것이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음을, 아니 해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가 가졌을 번민에 공감하며 그의 삶을 애도하면서도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자살은 결코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지는 방법이 아니다.

남은 자들을 위한 노회찬 효과

슬픔은 남은 자의 몫이다. 견뎌내며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도 남은 자의 몫이다. 우리는 모두 직·간접적인 생존자들이다. 서로의 아픔을 다독이며 함께 걸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나 내면에 고통을 가지고 있는 주위의 어려움에 대해 좀 더 섬세하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창수 중앙자살예방센터장(고려대 의대 교수)은 “자살은 본인에게도 큰 비극이지만 남은 자들에게 더 큰 슬픔과 고통을 남긴다. 죽음이 지금 닥친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며 살아남아 함께 더 좋은, 더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 가자고 결심해야 한다. 힘들어하는 이들 곁에 선한 의지를 가지고고통을 함께하려는 사람들과 용기를 내어 나누라”고 강조한다.

신은정 부센터장도 심상정 의원이 조사(弔辭)에서 30년 지기 사이의 믿음에서 오는 침묵의 대화로 홀로 고독 속에서 번민하게 하였음을 후회하는 점을 언급하며 “주위의 사람들이 보내오는 어려움의 신호를 간과하지 말고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베르테르 효과가 자살에 대한 파급력을, 파파게노 효과가 신중한 언론 보도를 통한 자살 억제력을 가진다면,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경험하는 상실감과 애통함과 고통을 절감하였기에 그 아픔이 그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과 그 속에서 삶의 이유와 의미와 방향을 되새겨야 한다.

행동과학자 레비-벨츠의 연구에 따르면 자살에 노출된 경험과 감정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주위로부터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 때, 외상 후 성장(Growth after Trauma)을 경험한다. 그것은 삶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인생을 넓게 조망하고 성찰할 수 있으며,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 능력을 가지는 모습일 것이다. 자살을 경험하며 부정적 영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시간을 생존해 낸 후 더 깊어진 삶이 남은 사람들에게 있기를 바란다. 더 이상의 극단적 선택이 없기를 바란다. 그러한 현상이 훗날 ‘노회찬 효과’로 불리기를 바랄 뿐이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사회참여센터장·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