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장기획]“떳떳이 장사” vs “부자 되면 노점 접나” … ‘노점상 허가제’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시, 내년 1월부터 ‘노점상 허가제’ 서울 전체 도입

서울에는 허가받지 않은 노점상(거리가게)이 6000여 개 있다. 모두 단속 대상이다. 현재 노점상이 합법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길은 일부 자치구에서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도로점용 허가를 받는 것이다. 서울의 전체 노점 7000여 개 중에서 자치구로부터 허가받은 노점은 1000여 개에 불과하다.

단속 중심이던 노점상이 서울시 차원에서 합법으로 인정받는 길이 열렸다. 시는 지난달 초 ‘도로점용 허가제’가 골자인 ‘거리가게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는 노점은 허가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의 노점상들은 내년 1월부터 각 자치구의 정식 허가를 받고 점용료를 내면 합법적인 영업을 할 수 있다. 별도의 세금은 없다. 노점 허가제를 시 전체에 도입한 것은 광역단체 가운데 서울이 처음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영세 상인의 생존권과 시민의 보행권을 지키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내년 1월부터 '노점상 허가제'를 시 전체에 도입한다. 중랑구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점용료를 내고 마음 편히 장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서울시는 내년 1월부터 '노점상 허가제'를 시 전체에 도입한다. 중랑구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점용료를 내고 마음 편히 장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노점상이 ‘허가 대상’이 됐지만, 상인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일부 상인들은 “오래전부터 기다려 온 정책”이라고 반긴다. “당당히 장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노점상을 감소시키려는 꼼수”라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규제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서울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허가를 받을 수 있는 노점상은 기존 노점에 한정한다. 1년마다 재허가를 받아야 하고, 허가받은 사람이 직접 운영해야 한다. 또 자치구별로 일정한 재산 기준을 정해 기준을 초과한 신청자에게는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면적도 제한된다. 서울시가 허용할 노점의 최대 점용 면적은 가로 3m, 세로 2.5m 이하다. 또 노점이 차지한 면적을 뺀 보도의 폭은 2.5m 이상이 되어야 한다.

노점에서 이불을 판매하는 이모씨는 "그동안 단속에 여러 차례 걸려 수백 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왔다"면서 "허가증을 받고 떳떳하게 장사할 것이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노점에서 이불을 판매하는 이모씨는 "그동안 단속에 여러 차례 걸려 수백 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왔다"면서 "허가증을 받고 떳떳하게 장사할 것이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1년 재허가, 재산 한도, 세습 불가 불만”

지난달 17일 서울 중랑구의 한 인도. 스마트폰 액세서리 노점상을 운영하는 정모(64)씨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노점상 허가제’ 소식을 듣고 ‘이제 두 발 뻗고 자겠구나’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2003년부터 이 노점을 무허가로 운영해왔다. 그는 “동료 상인들이 단속에 걸리는 모습을 보면서 매일 마음을 졸여왔다. 이제 떳떳하게, 인간답게 장사하고 싶다”고 했다. 도로법에 따라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않고 물건 등을 도로에 일시 적치한 자’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시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정씨의 노점(면적 4.25㎡)은 1년에 약 24만원의 점용료를 내야한다. 1㎡ 단위별로 토지 가격에 0.007~0.05를 곱한 금액이 연간 도로 점용료다. 정씨는 “합법적으로 장사하고, 시민 보행을 방해하지 않으면 노점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더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소속 상인들이 지난달 3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거리가게 가이드라인'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소속 상인들이 지난달 3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거리가게 가이드라인'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연합뉴스]

정씨의 노점에서 40m정도 떨어진 다른 노점의 주인 이모(58)씨 역시 “6년간 장사하면서 과태료만 수백 만 원을 물어왔다. 당당히 허가증을 받고 장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상 신규 노점 불허 … “까다로운 규제 당연” 

하지만 일부 상인들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양모(49)씨는 동작구에서 역시 ‘무허가 노점’을 운영한다. 그는 “상가입대차보호법이 보장하는 임차인의 영업 기간은 5년이다. 점용료를 내면 우리도 버젓이 자영업자인데, 왜 1년마다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 재계약을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신청자의 재산 기준을 정하는 것에 대해선 “열심히 장사해서 부자가 되면 노점을 접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다.

일부 노점상인들은 "규제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서울시 거리가게 가이드라인을 반대한다. 임선영 기자

일부 노점상인들은 "규제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서울시 거리가게 가이드라인을 반대한다. 임선영 기자

“많은 상인 동참해야 정책 실효성 거둘 것”   

시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신규 노점의 영업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시장이 특화 거리조성 등 필요한 경우 생활이 어려운 서민을 대상으로 도로점용허가를 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은 있다. 또 ‘노점의 세습’도 불허해 자녀에게 물려줄 수 없다. 이에 대해 노점상인 전모(41)씨는 “노점 개수를 점차 줄여 결국엔 없애겠다는 의도가 보인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영세 상인들의 생계 보장을 위해 특별히 공공의 도로를 점용하도록 허용하는 것인데, 신청자의 재산 한도를 정하고, 세습을 금지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노점 합법화’를 대체로 환영한다. 대학생 전우진(24)씨는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피해 걸을 때 많다”면서 “걷기 편한 길이 되도록 노점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인옥 도시사회연구소장은 “일본 후쿠오카시는 2013년 조례를 제정해 노점의 위생, 시민 보행권 등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노점을 도시의 명물로 만들었다”면서 “상인들에게 정책 취지를 충분히 설명해 많은 이들의 동참을 끌어내야 정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