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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또라이’ 소리 듣던 청춘, 청담동 카페 꿈 이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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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5호 12면

한강에서 카약을 타며 석양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이 2030젊은이들에게 인기다. [SUP코리아 제공]

한강에서 카약을 타며 석양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이 2030젊은이들에게 인기다. [SUP코리아 제공]

지난달 중순 직장인 이준영(27)씨는 친구들과 처음으로 서울 한강에서 카약을 탔다. 오후 6시에 광진구 자양동 한강변 윈드서핑장에 모여 20분간 강습을 받은 뒤 2인1조로 카약에 올라탔다. 처음엔 방향을 잡지 못해 제자리를 맴돌더니 조금씩 익숙해져 제법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오후 7시를 넘어서자 석양이 지면서 하늘과 강이 점차 붉게 물들어갔다. 이씨는 “강 위에서 노을 지는 건 처음 봤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잘 놀기로 돈버는 2030 청년 사업가 #IT 전문가 등 기존 벤처와 다른 DNA #노동시간 단축 등 변화 적응 빨라 #VC도 여가 스타트업에 투자 나서 #

이씨가 한강에서 손쉽게 카약을 탈 수 있었던 비결은 액티비티 플랫폼 서비스 프립(Frip) 덕이다. 프립은 에어비앤비처럼 약 4000여명의 호스트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하면 원하는 소비자가 비용을 지불하고 참여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스마트폰 앱에서 수제 맥주 만들기 활동을 찾은 뒤 원하는 날짜를 지정하고 예약하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프립 가입자 수는 지난달 기준 약 47만 명으로 1년 전보다 70% 이상 늘었다. 한 달 이용객만 9000명에 이른다.

요즘 사람을 잘 먹고 잘 놀게 해주는 산업이 뜨고 있다. 최근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이른바 워라밸ㆍ소확행을 추구하는 2030 젊은이들이 다양한 취미 생활로 시간을 가치있게 보내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모바일 숙박예약 업체들은 숙박업을 벗어나 레저ㆍ액티비티 분야로  발빠르게 사업을 넓히고 있다. 야놀자는 지난 3월 관람형 티켓 상품을 판매하는 레저큐를 인수한 데 이어 최근엔 프립에 20억원을 투자했다. 경쟁사인 여기어때 역시 숙박 예약 외에 테마파크ㆍ수상레저ㆍ공연 등 액티비티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정보기술(IT)이나 제약ㆍ바이오업계에 몰렸던 벤처캐피탈(VC) 투자자도 여가 관련 스타트업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여행 중 즐길 수 있는 여러가지 액티비티를 온라인으로 예약ㆍ결제하는 플랫폼 와그에 LB인베스트먼트를 비롯해 아주IB투자, 컴퍼니케이파트너스 등이 80억원을 투자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강지영 패스트인베스트먼트 투자심사역은 “여가관련 수요가 크게 늘면서 VC들도 관련 스타트업 중에서 매력적인 투자처를 찾는데 분주한 모습”이라고 들려줬다.

 이달 1일 서울 자양동 윈드서핑장에서 만난 임수열 프렌트립 대표. '오늘 뭐 하고 놀까'를 연구하는 그답게 카약 실력도 수준급이다. 신인섭 기자

이달 1일 서울 자양동 윈드서핑장에서 만난 임수열 프렌트립 대표. '오늘 뭐 하고 놀까'를 연구하는 그답게 카약 실력도 수준급이다. 신인섭 기자

임수열 프렌트립 대표 “1000가지 놀이판 깔았더니 47만명 모여"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개발자는 '놀아본' 또는 '놀줄 아는' 사람들이다. 프립 개발자 임수열(32) 프렌트립 대표도 여가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을 고민하다 스타트업에 뛰어든 청년사업가다. 다부진 체격에 카약은 물론 산악 스키, 스노쿨링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긴다. 체대 출신 아니냐는 얘기도 자주 듣기도 한다. 하지만 20대 초반까지는 놀 줄(?) 모르는 ‘범생이’였다. 서울 과학고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 전자공학과를 입학한 그는 야외 활동보다 수학 문제를 푸는 데 더 흥미를 느꼈다.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진 건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인도와 태국의 오지마을로 봉사활동을 다녀오면서부터다. 그곳에서 유럽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임 대표는 “그들은 졸업 후 진로나 학점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물 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지를 공부하고 있었다”며 “경험의 폭이 넓어지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의 관심사도 사회 문제로 바뀌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풀고 싶은 건 젊은이들이 학업이나 취업에 치여 제대로 놀 줄 모르는 문화였다. 주변을 봐도 주말에 영화보는 것 외엔 친구들과 술 마시거나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창업 전 페이스북으로 강원도 삼척으로 스노쿨링 갈 사람을 모집했다. 걱정과 달리 3일 만에 버스 한 대를 채울 수 있었다. 확신을 갖고 27세던 2013년 11월 창업했다

임 대표는 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른바 '귀차니즘(번거로움을 싫어하는 태도)'을 간파했다. 일반적으로 지리산 등반을 해보고 싶은데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을 때는 등산 동호회에 가입한다. 하지만 동호회에 가입하는 절차나 뒷풀이에 참여하는 게 귀찮아서 등산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하지만 프립은 기본적으로 일회성 이벤트다 보니 부담없이 등산을 경험해 볼 수 있다. 또 모임을 이끄는 호스트가 모임에 필요한 도구들을 모두 준비해놓기 때문에 몸만 가면 된다. 이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입맞에 딱 맞는 취미나 적성을 발견할 수 있다. 덕분에 4년 반만에 47만 명이 프립에 모여들게 했다.

대학시절 '또라이'로 불릴만큼 하고 싶은 일을 해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김왕일 CICFNB 대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직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대학시절 '또라이'로 불릴만큼 하고 싶은 일을 해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김왕일 CICFNB 대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직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김왕일 CICFNB 대표 “30세까지 11가지 콘셉트 레스토랑 열 것”

미국 플로리다의 유명호텔 브레이커스 팜비치에서 호텔리어로 놀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레스토랑 사업에 뛰어든 청년도 있다. 서울 청담동에서 브런치카페 오프닛을 운영하는 김왕일(26) CICFNB대표다. 지난달 31일 오프닛에 들어서자 녹색 식물을 심어 놓은 화분들이 눈에 띈다. 천장 곳곳에도 녹색 식물이 걸려 있어 마치 작은 농원에 온 듯했다. 김 대표는 “이곳은 농장 콘셉트로 농부가 바로 딴 싱싱한 채소와 과일로 요리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분위기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메뉴도 브런치카페에서 흔히 판매하는 프렌치토스트나 샐러드 대신 리얼파머, 스피머쉬룸 크레페 등 생소한 요리가 가득하다. 김 대표가 직접 개발한 메뉴다. 독특한 매장 디자인과 요리 덕분일까. 오프닛은 문 연지 3개월 만에 소셜미디어에서 입소문나면서 2030 젊은 여성들로 붐볐다.

“30살까지 다양한 콘셉트로 11개의 레스토랑을 여는 게 목표에요. 오프닛은 그 중에 하나인거죠.” 김 대표가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한국에 온 까닭이다. 테이블과 의자없이 바위에서 식사하는 킹콩 레스토랑, 3~4미터 커다란 그릴 위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스모크 하우스 등 그가 준비 중인 레스토랑은 하나같이 특이하다. 김 대표는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레스토랑이 많지 않다”며 “색다른 메뉴와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고객에게 새로운 레스토랑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들려줬다.

물론 도전은 쉽지 않았다. 세계 3대 호텔학교로 손꼽는 스위스 글리옹 호텔경영학교를 졸업한 그는 2016년 12월에 브레이커스 호텔에 입사했다. 하지만 6개월 만에 그만뒀기 때문에 창업 자금이 부족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에 돌아온 뒤 5개월 가량 15장 짜리 사업계획서를 들고 투자자를 찾아 다녔다. 얼굴 한번 본적없는 학교 선배를 찾아가 투자를 해달라고 부탁하자 “대체 뭘 믿고 해줘야 하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음날 그는 온갖 요리 도구와 음식 재료를 싸가서 즉석에서 6종류의 요리를 선보였다. 그의 열정에 학교 선배는 물론 그 자리에 있었던 사업가 2명이 투자자로 참여했다.

김 대표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해내야만 직성이 풀린다. 학교 다닐때도 ‘특이하다’부터 ‘또라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수업 시간에 교재를 펴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김 대표는 “책에서 경영을 배우긴 어려울 뿐더러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직업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칠전팔기 창업가로 유명한 조맹섭(오른쪽) 마도르스 대표가 직원들과 낚시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도로스 제공]

칠전팔기 창업가로 유명한 조맹섭(오른쪽) 마도르스 대표가 직원들과 낚시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도로스 제공]

마도로스가 보유한 핑크색 배는 커플이나 젊은여성들이 사진 촬영을 하면서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마도로스 제공]

마도로스가 보유한 핑크색 배는 커플이나 젊은여성들이 사진 촬영을 하면서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다. [마도로스 제공]

조맹섭 마도로스 대표, 위메프 창업멤버…IT로 2030 낚시시장 선점  

'놀자판'이 커지니 전통적인 벤처 기업인도 뛰어들고 있다. 정보기술(IT)로 이미 창업에 성공한 투자자가 직접 먹고ㆍ노는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맹섭(40) 마도로스 대표다. 위메프 창업멤버였던 그는 2015년 엘로모바일 자회사 옐로트래블 경영을 맡았다. 그가 다시 창업에 나섰다. 우연히 접한 ‘낚시 데이터’ 때문이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200만 명 수준이었던 낚시 인구가 2017년 기준 400만 명으로 2배가 는 것이다. 지난해 세종대관광산업연구소가 설문한 자료에 따르면 낚시가 등산을 제치고 국민 취미생활 1위로 오르기도 했다. 조 대표는 등산복 차림의 아저씨들의 취미로 여겼던 낚시가 2030 젊은이들의 놀이문화로 바뀌고 있음을 직감했다.

2016년 말 곧바로 그는 배 낚시 예약과 결제 서비스 마도로스를 선보였다. 고객은 원하는 지역, 항구명, 이용시간, 어종을 선택하기만 하면 낚시배를 탈 수 있다. 과거 낚시 동호회를 가입해 활동하거나 아니면 일일이 낚시배 선장을 수소문해 전화로 예약하는 것에 비하면 편리하다. 마도로스는 전국 1200여개 낚시배들과 제휴를 맺고 선장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10~15% 중간 수수료를 받았다.

조 대표는 3척의 낚시배도 구입했다. 낚시배 시장을 젊게 바꾸기 위해 인테리어에 신경을 썼다. 상당수 여성고객이 불편함을 겪던 화장실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바꿨다. 기존 낚시배는 화장실이 너무 좁거나 양변기가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처음 구입한 마도로스호는 배 전체를 핑크색으로 꾸며 화제가 됐다. 조 대표는 “젊은 커플들이 핑크색 배를 배경으로 사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다보니 홍보효과를 톡톡하게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예상대로 낚시 이용객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올해 7월 마도로스 서비스 이용객만 약 3000명으로 1년 전보다 3.5배 증가했다. 김 대표는 “요즘엔 1~2시간 배를 타고 낚시를 체험하는 가족 단위 고객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쭈꾸미나 한치는 잡기도 쉬울 뿐더러 제철엔 수백마리씩 잡히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고 덧붙였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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