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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요즘 이 책]"인터넷이 날 키웠다" 노동자 소설가 김동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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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형 노동자 소설가 김동식. 그는 한국의 문단문학이 잠시 잊고 있었던 소설의 미덕을 정확히 겨냥한다. 재미다. 독자의 허를 찌르는 결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진 김동식]

21세기형 노동자 소설가 김동식. 그는 한국의 문단문학이 잠시 잊고 있었던 소설의 미덕을 정확히 겨냥한다. 재미다. 독자의 허를 찌르는 결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진 김동식]

'작가의 요즘 이 책(작책)' 시즌 2, 두 번째 순서는 노동자 소설가 김동식(33)이다. 정확히 말하면 노동자 출신 소설가 김동식이다. 서울 성수동 공장 지대의 지하 주물공장에서 10년 넘게 지퍼, 단추 등을 만드는 작업을 10년 넘게 한 그는 2016년 말 공장 일을 그만뒀다. 앞만 보고 달렸다고 하기엔, 좇던 꿈의 크기와 질감이 이렇다 할 만한 게 없는, 그래서 오히려 살아남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수고였다고 하는 게 적절한, 노동에서 벗어나 난생처음 긴 휴식을 스스로에게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 신상 변동을 전후해 그는 인터넷 게시판에 열심히 공포소설을 써 올리고 있었고, 지난해 말 출간된 종이책 소설들이 잘 팔리며 문화계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됐다. 작책은 동영상 인터뷰다. 영상에 미처 못 담은 얘기를 온라인 기사로 전한다. '시즌 2'는 요리하는 소설가 천운영씨와 함께 진행한다. 천씨는 서울 연남동에서 스페인 식당 '돈키호테의 식탁'을 운영한다. '2018 작책'은 인터파크도서와 공동기획했다.

1980년대 노동자 시인의 작품은 위태로운 불온문서처럼 은밀하게 유통됐다.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 말이다. 21세기 노동자 소설가 김동식의 작품은 인터넷 사용자들의 노골적이고 편파적인 응원 아래 자란다. 박노해 시가 계시처럼 교지(敎旨)처럼 일방적으로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었다면 김동식의 소설은 독자와 수시로 호흡하는 쌍방향이다. 독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독자 마음에 드는 방향으로 작품을 고친다. 이런 식으로 20세기 박노해와 21세기 김동식은 여러모로 비교·대조가 가능하다. 가령 박노해의 시가 처참하고 처절한 당대의 노동현장에 대한 고발이었다면 김동식의 소설에 자신이 체험한 공장생활에 대한 리얼리즘적인 반영은 없다. 누군가의 코멘트처럼 이솝 우화 비슷하게 우화적으로, 또 우회적으로, 현실을 꼬집고 문제적 현실 뒤에 도사린 인면수심을 문제 삼는다.

 물론 공통점도 꼽아볼 수 있다. 중언부언이지만 둘 다 노동자 출신이다. 그러니 둘 다 변변한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다. 교육 속에는 문학수업도 포함된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글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런, 일반적으로 단점이라고 할 만한 특성이, 둘 모두에게 강점으로 작용했다. 거칠지만 감성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화제의 중심으로 치고 들어간다. 미학적 차 떼고 포 떼고, 모든 패를 드러낸 채 독자의 감수성을 상대하는 솔직한 맞짱 뜨기다.
 박노해의 작업도 당대의 파리한 지식인 문인들이 시도하지 못했던 모험이었지만, 김동식의 지금까지의 성공 수기도 우리가 흔히 메이저, 주류라고 상정하는 문학의 어떤 영역으로부터 한참 동떨어진 곳에서 이뤄졌다. 그런 점에서 김동식의 모험과 성공 스토리가, 갈수록 사람들이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푸념만 하는 천수답 한국 문학시장에 대한 반성의 참고점이 되리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함께 인터뷰에 나선 천운영 작가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기자에게는 경청할 만한 대목이 많았다.

 스마트폰 일정표를 뒤져보니 김동식 인터뷰는 4월 중순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안에 있는 인터파크 북파크 서점에서 이뤄졌다.
 "살면서 목표가 있었던 적도, 꿈이 있었던 적도 없다", "사람들이 내 소설이 이제는 재미없고 식상하다고 하면 그만 쓰고 공장 가서 자리 있나 계속 찔러보겠다"…. 김동식은 어록이라도 작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를 찌르는 말들을 내뱉곤 했다. 준비나 연습에서 나오는 발언은 아닌 듯했다. 그보다는 솔직함이 비결인 것 같았다. 그는 가리고 잴 건덕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 가리고 재지 않았다.
 인기나 평판에 의지하지 않고 꿋꿋하게 예술가의 길을 가고자 하는 예술가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는, 독자 의견을 적극 수용해 작품을 고치는 김씨 자신의 작업방식에 대한 견제가 깔린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도 인상적이었다.
 "힘…내세요? (여기서 말줄임표는 그가 대답을 궁리한 시간, 물음표는 자신의 대답에 대한 김동식 스스로의 의심을 뜻한다) 뭔가 예술가의 길을 가다 보면 이름이 남거나 하시겠죠."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저는 생각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술가의 길을 갈 가능성이 없으니까. 예술이 뭔지 잘 몰라요. 가고 싶은 생각도 없고."

 이런 말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굶어 죽기도 힘들다", "공장을 힘들게 다녔다고 착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공장 다닐 때 불행하지 않았다. 하는 일이 너무 쉬우니까 다른 생각을 안 해도 되고,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도 없었다".
 2006년 그의 주물공장 첫 월급은 130만원. 2016년 그만둘 때 월급은 185만원이었다. 그 월급을 쪼갠 일부를 김동식은 부산의 어머니에게 송금해 드렸다. "우리나라에서 굶어 죽기도 힘들어" 발언은 이 대목에서 나왔다. 미래에 대한 목표가 있었다면 돈을 모으려 했을 텐데 살아지는 대로 살자, 는 생각이었고, 뭐라도 하면 먹고 살 수는 있으니까 굶어 죽을 일 없다는 얘기였다. 밀가루 한 포대가 삼천몇백원인데 그걸로 수제비만 만들어 먹어도 한 달은 먹지 않느냐는 거였다.
 단순히 허를 찌르는 재담이라고 하기엔 듣는 이를 숙연해지게 만드는 발언이다.

김동식은 자신의 사람 만나는 일을 두려워 하는 성격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소설 성공으로 전국 곳곳에 강연을 다니며 자신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사진 김동식]

김동식은 자신의 사람 만나는 일을 두려워 하는 성격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소설 성공으로 전국 곳곳에 강연을 다니며 자신이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사진 김동식]

 자신은 예술가가 아니라고 했지만, 실제로 그의 글쓰기는 숙련을 초월하는 예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고열의 아연 용액을 국자로 퍼 나르던 공장에서의 작업처럼 어떤 면에서 공예에 가까워 보이지만, 그도 이 시대 예술가들이 겪는 보편적 어려움을 피하지 못하는 듯했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말이다. 예술을 하자니 돈이 궁해지고, 시장에 영합하기로 하면 마음이 고통스럽다.
 공장 일을 하며 200자 원고지 30쪽 분량의 짧은 소설들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릴 때가 좋았다고 했다. 그때 작품들이 더 좋았다는 얘기였다. 2016년 말 공장을 그만둔 다음, 일시적인 전업작가가 돼서(다른 직업 없이 글만 쓰니 전업작가다!) 쓴 작품들은 어딘가 부족해 보여 지금까지 출간한 다섯 권의 종이 소설책에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갔다고 했다.
 지난 2월부터 카카오페이지에 짧은 소설을 연재하면서 김동식은 비슷한 부담을 느낀다. 과거 공짜소설을 올릴 때 비난 댓글은 마음의 상처일 뿐이었다. 카카오 연재는 다르다. 한 꼭지 읽을 때마다 독자는 100원씩 지불한다. 김동식은 "100원을 내고 내 소설을 비난할 권리를 사신 것"이라고 표현했다. 김동식 소설이 마음에 안 드는 독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덜 읽힐 것이다. 덜 읽혀 수입이 충분치 못하면 다른 수입원을 찾아야 한다. 그럴 경우 김동식은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김동식이 '원히트 원더'로 그칠지, 계속해서 사랑받아 우리 문학의 한 풍경으로 남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김동식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그의 네 번째 소설집 『양심고백』에 실린 '동물 학대인가, 동물 학대가 아닌가?', '자살하러 가는 길에'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자살하러…'는 김동식이 독자 반응이 가장 좋았다고 밝힌 작품이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다. 작품을 읽기 전에 김동식의 다음 당부를 먼저 한 번 읽는 것이다.
 "큰 기대 없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노동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든지, 그런 식의 기대감이 너무 많거든요. 별것 아닌 이야기니까 저에 대한 기대감 접고 보셨으면 좋겠어요.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니까요."
 참고로 지금까지 김동식의 소설은, 1권 『회색인간』이 4만 부, 2권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가 8000부, 3권 『13일의 김남우』가 8000부, 4권 『양심고백』이 4000부, 5권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가 4000부 팔렸다. '본격 소설교육'을 받은 웬만한 프로 소설가의 성적을 상회하는 수치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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