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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하던 강원도인데 "어디 불 났냐"···41도 찍은 홍천,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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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불을 때나 왜 이렇게 뜨거워? 혹시 시장에 불난 거 아니여.”

지난 1일 40도가 넘는 폭염에 상인과 손님이 사라진 강원도 횡성군 읍내 5일장터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일 40도가 넘는 폭염에 상인과 손님이 사라진 강원도 횡성군 읍내 5일장터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일 오후 3시30분쯤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내 5일 장터에 들어서자 농산물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한 농담이다.

횡성 자동기상관측장비(AWS) 측정 41.3도 기록 #홍천, 사방이 분지로 둘러싸인 분지형태로 고온 #폭염에 고속도로 팽창해 콘크리트 솟아 오르기도

이날 횡성군청에 1.2㎞ 떨어진 곳에 있는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측정한 횡성의 기온은 오후 2시1분 기준 41.3도. 그동안 무더위와는 거리가 있었던 강원도에서 기온이 40도를 넘은 건 횡성이 처음이다.

마치 가마솥 앞에 앉아있는 것 같은 더위 탓에 상인과 손님으로 가득해야 할 장터 안은 한산했다. 양산을 쓰고 장터를 지나던 한 할머니는 “아이고 숨도 제대로 못 쉬겠네. 이러다 사람 잡겠어”라고 말한 뒤 인근 상가 건물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장터는 일찌감치 장사를 접고 집에 들어가거나 아예 나오지 않은 상인들로 인해 빈자리가 많았다.

수산물을 판매하는 신동환(62)씨는 “날씨가 미친 것 같다. 도저히 더워서 장사를 못 하겠다”며 “30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해왔는데 오늘처럼 덥고 사람이 없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40도가 넘는 폭염에 상인과 손님이 사라진 강원도 횡성군 읍내 5일장터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일 40도가 넘는 폭염에 상인과 손님이 사라진 강원도 횡성군 읍내 5일장터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일 폭염에 한산해진 강원도 횡성군 도심지역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일 폭염에 한산해진 강원도 횡성군 도심지역 모습. 박진호 기자

살수차 물 뿌려도 10분 만에 증발 

대로변으로 나가자 살수차들이 큰 도로를 중심으로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을 뿌렸다. 하지만 10분가량이 지나자 도로를 흥건히 적시던 물은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인근 농촌 지역의 경우도 농산물 수확이 한창이어야 하지만 폭염에 밭일하는 이들은 없었다. 김출열(67·여)씨는 “날이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다니질 않는다”며 “더위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상관측 이래 공식적인 역대 최고기온은 횡성과 인접한 홍천에서 나왔다. 홍천군은 이날 오후 4시 기온이 41도에 달해 76년 만에 역대 전국에서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전국에 최강 폭염이 맹위를 떨친 지난 1일 오후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일대 온도가 40.6도를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에 최강 폭염이 맹위를 떨친 지난 1일 오후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일대 온도가 40.6도를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기상청 관리자 상주 ASOS만 공식 기록 인정

관리자 없이 무인으로 운영되는 AWS가 설치된 횡성과 다르게 홍천은 관리자가 상주하는 종관기상관측장비(ASOS)가 설치돼 있어 이날 관측 기록이 역대 최고기온으로 등록될 수 있었다. 기상청은 현재 ASOS가 관측한 기온만 공식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를 뛰어넘은 폭염에 홍천에서는 고속도로 콘크리트 포장이 팽창하는 일도 발생했다. 1일 오후 5시쯤 홍천군 북방면 중앙고속도로 춘천방면 368㎞ 지점 굴지터널 앞에서 도로가 균열과 함께 20~30㎝가량 솟아올랐다.

일부 차량이 솟아오른 콘크리트 때문에 파손됐고 한때 차량 통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한국도로공사 측은 곧바로 긴급보수공사에 나섰다.

1일 오후 5시쯤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중앙고속도로 춘천 방면 368㎞ 지점 도로가 폭염에 솟아올라 차량이 서행하고 있다.[연합뉴스]

1일 오후 5시쯤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중앙고속도로 춘천 방면 368㎞ 지점 도로가 폭염에 솟아올라 차량이 서행하고 있다.[연합뉴스]

홍천 역대 최고기온 1~5위 모두 갈아치워 

홍천군 도심에선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부 시민은 양산을 쓰거나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도 땀을 뻘뻘 흘리며 목적지로 향했다.

주민 이모(36)씨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더운 날이 이어진 게 벌써 열흘이 넘었다. 언제까지 버텨야 좀 나아질 수 있냐”고 하소연했다.

홍천군은 지난달 중순부터 40도에 가까운 고온 현상이 지속하고 있다. 1971년 관측이 시작된 이후 최고기온 1~5위 모두가 지난 7월 22일 이후 기록이다.

1위는 1일 41도, 2위 지난달 31일 38.5도, 3위 지난달 28일 38.3도, 4위 지난달 22일 38.2도, 5위 지난달 24일 38도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 최고기온이 34.4도를 기록한 것 비교할 때 최대 6.6도나 오른 셈이다.

사빙이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홍천은 지형적 특성 때문에 고온이 지속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다음지도]

사빙이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홍천은 지형적 특성 때문에 고온이 지속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다음지도]

홍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전문가들은 이번 기온 상승의 주요 원인을 뜨거운 동풍과 홍천의 지형적 특성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홍천은 봉화산과 오성산·오용산·남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기상청은 동해안에서 불어온 동풍이 백두대간을 넘어 내륙으로 하강하면서 고온 건조한 공기로 바꿨고, 홍천에 모인 뜨거운 공기가 주변을 둘러싼 산 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하면서 기온이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대열 강원지방기상청 관측과 주무관은 “맑은 날이 이어지면서 햇빛이 강했던 점과 기상관측장비가 도심인 홍천읍 연봉리에 있어 아스팔트 등에서 내뿜는 복사열이 더운 공기를 더 가열한 점도 기온 상승에 원인”이라고 말했다.

횡성·홍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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