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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가족'이란 이름 외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39) 영화 '어느 가족'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신이나 뜯어봤는데 열어봤더니 내 예상과 달라 좋은 의미로(아니면 나쁜 의미로) 놀랐던 경험.

영화 '어느 가족'의 가족 사진. 단란한 가족처럼 보이지만 막상 영화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사진 티캐스트]

영화 '어느 가족'의 가족 사진. 단란한 가족처럼 보이지만 막상 영화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사진 티캐스트]

벌써 만만한 리뷰에서도 4번째 다루는 일본의 거장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새 가족영화를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위 스틸사진을 보면 단란한 가족이 평상에 앉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영화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앞서 말한 선물처럼요.

이 가족은 할머니 하츠에(키키 키린 분)와 아빠 오사무(릴리 프랭키 분), 엄마 노부요(안도 사쿠라 분), 엄마의 여동생 아키(마츠오카 마유 분), 그리고 쇼타(죠 카이리 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부모의 방치로 아파트 복도에서 혼자 추위에 떨고 있는 유리(사사키 미유 분)를 데려와 식구 하나가 늘었죠.

가족들은 하츠에의 연금으로 생계를 이어 갑니다. '가게에 있는 물건들은 주인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훔쳐도 괜찮다'는 지론에 의해 필요한 생필품은 마트에서 조달(?)하죠. 영화의 시작도 오사무와 쇼타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장면인데요.

아빠 오사무와 아들 쇼타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장면. 쇼타를 보고 있으면 문득 감독의 전작 '아무도 모른다'의 아키라가 떠오른다. [사진 티캐스트]

아빠 오사무와 아들 쇼타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장면. 쇼타를 보고 있으면 문득 감독의 전작 '아무도 모른다'의 아키라가 떠오른다. [사진 티캐스트]

그들 사이에 나름대로 정한 규칙에 따라 물건을 훔치는 오사무와 쇼타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감독의 전작 '아무도 모른다' 입니다. '어느 가족'의 쇼타는 '아무도 모른다'의 아키라와 서로 닮아 있습니다. 두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묻어 나오는 외모뿐만 아니라 생계를 위해 물건을 훔친다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들이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함께 살게 된 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상처'와 그에 따라 생겨난 '외로움' 때문이지 않을까요.

하츠에를 시작으로 하나둘씩 모인 식구들은 저마다 인생의 어두운 면이 있죠. 막내 유리까지도요. 이들에겐 서로에 대한 존재 자체만으로 위안이 될지 모릅니다. 이런 이들을 단지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가족'이라 하지 않는다면 달리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키키 키린과 릴리 프랭키는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들(태풍이 지나가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에서 그의 페르소나로서 연기를 해왔습니다. 그에 반해 엄마 노부요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는 그의 작품에서 처음 등장한 배우인데요. 제 입장에선 도대체 어디 있다 불쑥 나온 건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매년 쉬지 않고 여러 작품에 출연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제가 본 작품은 이 영화가 처음이었으니까요.

안도 사쿠라는 이 영화에서 장면에 따라 다양한 감정선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새 가족이 된 유리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그녀 안에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8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은 "앞으로 우리가 찍는 영화에 우는 장면이 있다면 안도 사쿠라를 흉내 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극찬하기도 했죠.

고레에다 감독 작품에서 처음 등장한 안도 사쿠라. 이번 영화에서 엄마 노부요 역을 맡아 깊은 감정선을 보였다. 앞으로 고레에다 감독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티캐스트]

고레에다 감독 작품에서 처음 등장한 안도 사쿠라. 이번 영화에서 엄마 노부요 역을 맡아 깊은 감정선을 보였다. 앞으로 고레에다 감독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티캐스트]

마지막으로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음악 프로듀서이자 베이시스트, 싱어송라이터로 1970년 록밴드 해피엔드를 결성해 일본 록음악을 개척한 호소노 하루오미가 음악 감독을 맡았습니다. 호소노 하루오미는 감독의 염원을 담아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 전곡을 작곡, 연주, 믹싱, 레코딩까지 작업을 진행해 영화의 몰입도를 한층 높여 주었는데요.

영화를 보실 때 '이 영화, 배경 음악이 좋다고 했지?'라는 생각을 떠올리시고 장면마다 들리는 음악 소리에 귀 기울이신다면 이 영화를 더욱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정확하게 어느 부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유리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느낌의 사운드 트랙과 장면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어느 가족'은 10년 동안 생각해온 가족의 의미를 담았다는 감독의 말처럼 보고 나면 많은 여운이 남는다. [사진 티캐스트]

영화 '어느 가족'은 10년 동안 생각해온 가족의 의미를 담았다는 감독의 말처럼 보고 나면 많은 여운이 남는다. [사진 티캐스트]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영화를 두고 "10년 동안 생각해온 가족의 의미를 담았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면서, 아버지가 되려는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소년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는데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인물에게 초점을 맞춰보면 각각 한 편의 영화지 않나 싶었습니다.

아빠 오사무의 초점에서 영화를 바라보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들 쇼타의 초점에서 바라보면 '아무도 모른다'가 되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감독이 오랜 시간 동안 품어온 이야기를 꺼내 만든 작품이라는 말이 비로소 이해됩니다.

극장을 나서자마자 든 생각은 '아~ 이 감독은 또 엄청난 걸 만들어 버렸구나' 였습니다. '가족'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10년 동안 이야기를 했으면 이제 말할 거리가 떨어지거나 식상할 만 한데도 전혀 그런 느낌은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이후에 그의 이름으로 그려질 가족이 '어느 가족'이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어느 가족

영화 '어느 가족' 포스터. [사진 티캐스트]

영화 '어느 가족' 포스터. [사진 티캐스트]

감독·각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죠 카이리, 사사키 미유, 키키 키린
촬영: 콘도 류토
음악: 호소노 하루오미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21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8년 7월 26일

만만한 리뷰에서 다룬 고레에다 감독 작품들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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