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은 60년대부터 선진국을 쫓아가는 '모방형 R&D 시스템'을 계속해 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임대식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의 말이다. 정부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 국가기술혁신체계(NIS)를 고도화하기 위한 안을 내놨다. 과기정통부는 26일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자문회의’ 제1회 전원회의에서 ‘국가기술혁신체계 고도화를 위한 국가 R&D 혁신방안’을 확정ㆍ발표했다. 그간 한국의 R&D 정책과 문화의 문제점과 개선 방법이 담겼다.
10년 이상 구호에만 그친 선도형 R&D 시스템...기술개발은 '나 홀로 식'
정부는 우선 "'선도형 R&D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10년 이상 구호에만 그쳤다"며 지적했다. 60년대 후반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산업과 경제발전을 이끌어 온 공은 인정하면서도, 당시 정착된 '모방형' R&D 시스템이 변화없이 지속되고 있어 혁신적이지 못하다는 설명이다.
혁신역량 부족과 느슨한 성과확산체계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과기정통부는 "세계 상위 100대 대학 중 한국 대학 수는 4개뿐이고 공공기관의 질적수준(WEF)은 138개국 중 32위"라며 산ㆍ학ㆍ연의 융합ㆍ협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또 폐쇄적인 R&D 구조로 연구자와 국민생활ㆍ시장간 연계가 저하돼 '나 홀로' 기술개발에 그치고 있다며 공급자와 수요자간 연계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실패 인정하는 유연평가체계 도입...고(高) 리스크 연구에도 투자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추진전략과 과제가 제시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위험 혁신형 R&D의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성공률이 높은 연구에만 투자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도전적인 과제에도 역량을 쏟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위해 연간 약 3조 4000억을 투자하는 미국의 '고등연구계획(DARPA)'을 벤치마킹해, '한국형 DARPA'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ICT분야 신규에산의 11% 수준인 고위험혁신형 연구 투자를 2022년까지 35%로 늘리는 방안이 포함됐다.
연구 평가방법도 새로 도입해 성실실패를 인정하는 등 도전적 연구에 적합한 유연관리체계 도입을 검토하기로 했다. 또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연구와 행정 분리' 원칙을 적용해 회계ㆍ감사 등 연구자의 의무를 덜어주고, 현재 17개 부처가 운영중인 연구비 관리 시스템도 2019년 상반기까지 통합해 연구비 집행 행정부담을 완화해주기로 했다.
학생연구원, 근로계약 체결하고 장려금 받으며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람 중심 R&D 혁신의 첫발은 대학연구인력의 연구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대학연구인력 권익강화 및 연구여건 개선 방안'을 내놨다. 연구자들의 근로계약을 의무화하고, 생활비ㆍ장려금을 지원함으로써 안정적인 연구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먼저 박사 이상 연구원 등에 대해서는 근로계약을 사실상 의무화하도록 했다. 석ㆍ박사 과정 중인 학생연구원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경제적 처우 지원을 포함해 기관별 특성을 고려해 근로계약을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KAISTㆍDGISTㆍUNIST를 비롯한 과기특성화대학에서 '학생맞춤형 장려금 포트폴리오'가 도입된다. 장려금에는 인건비ㆍ조교수당ㆍ장학금 등이 포함되고 연구실적 등에 따라 추가 장려금도 받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박사과정 학생연구원에게는 기본 포트폴리오에 따라 월 100만원을 주고, 연구실적이 좋을 경우 추가 포트폴리오로 월 45만원을 더 주는 식이다. 석사과정 학생연구원의 경우 기본 포트폴리오로 월 70만원, 추가 포트폴리오로 월평균 30만원을 줄 수 있게 금액을 정해 나갈 예정이다.
출연연에서는 근로 성격이 큰 학생연구원부터 근로계약 체결을 조속히 완료하고 일반대학에서는 학생연구원의 의견 수렴을 거쳐 단계적으로 이 같은 방안을 도입해 나가기로 했다.
임대식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과학기술 혁신의 주체인 연구자들이 연구에 몰입하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특히 학생맞춤형 장려금 포트폴리오 제도가 우리나라 청년 과학기술인이 혁신성장의 주역으로 자라게 하는데 자양분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