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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진을 울면서 정의당 가입하게 한 故 노회찬 명연설

중앙일보

입력

[사진 유튜브 캡처]

[사진 유튜브 캡처]

배우 김희애씨의 남편이자 한글과컴퓨터 창업자로 알려진 이찬진(53) 포티스 대표가 고(故) 노회찬 의원을 추모하며 정의당 입당 의사를 밝혔다. 이 대표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의당 홈페이지에 가서 온라인으로 당원 가입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제 인생 처음으로 정당 당비를 내려고 한다. 그런다고 미안한 마음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의당 가입 계기가 노 의원의 사망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는 "너무나 안타깝게 돌아가신 노회찬 의원님과는 스쳐 지나며 만난 인연은 있지만 제대로 뵙고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는 것 같다"며 "어떤 분인지 잘 몰랐는데 그제 여러 신문에 난 기사를 보며 엄청나게 울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 지나고는 잊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 페이스북을 보다가 이 동영상을 보고는 다시 한 번 눈물 콧물 흘리며 흐느끼고 울었다"며 정의당 당원 가입 계기를 밝혔다.

그를 울게한 동영상은 2012년 10월 21일 노 의원의 진보정의당 당대표 수락 연설이다. 일명 '6411번 버스' 연설로도 알려져 있다.

노 의원은 이 연설에서 구로에서 출발해 강남으로 가는 새벽 5시 6411번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을 언급했다. 그는 "이들은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그냥 아주머니다"라며 "한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이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분들"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정의당이 이들 '투명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투명정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노 의원은 "이분들은 아홉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 있다"면서 "이런 분들에게 우린 투명정당이나 다름 없었다. 이 정당이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故) 노회찬 2012년 진보정의당 당대표 수락연설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서울시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첫 버스와 4시 5분경에 출발하는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지 15분쯤 지나 신도림과 구로시장을 거칠 무렵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안 복도까지 사람들이 한명한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각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사람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거의 다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탑니다. 어쩌다 누가 결근이라도 하게 되면 누가 어디서 안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 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위에 올라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3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 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다섯 분도 투명인간입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들은 아홉시 뉴스도 보지 못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이 유시민을 모르고 심상정을 모르고 이 노회찬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분들의 삶이 고단하지 않았던 순간이 있었겠습니까.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 눈 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정당이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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