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회장단, 정부 리더십 성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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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명의 재계 총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16일의 전경련 회장단 회의는 정부 리더십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회의에선 최대의 경제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경제 난국을 벗어날 만한 효과적인 대책이 없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회의에 참석한 한 그룹 총수는 회의장 분위기를 "그야말로 우울했다"고 전했다.

이날 회장단은 영국 대처 총리와 독일 아데나워 총리, 박정희 전 대통령 등 강력한 리더들에 대한 향수를 피력했다. 현명관 전경련 상근 부회장은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을 열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이유에 대해 현부회장은 "무엇보다 국민의 불안 심리와 재계의 의욕 저하가 심각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었던 1980년(朴대통령 유고)과 98년(외환위기)을 제외하면 가장 극심한 경제침체 속에서 민심이 불안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갈등 조정 능력에 대한 불만도 피력됐다. 회장단은 새만금 사업과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등 사회 갈등을 방치하고 있는 듯한 정부의 모습도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또 재계는 태풍 피해 복구에 솔선수범하자고 다짐하면서도 정부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회장단은 "매년 재난을 겪는 데도 시스템적으로 최소화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의견을 모았다. "재계 차원에서 재난 구호 시스템을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재계 고위 관계자는 "국정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피력했을 뿐"이라면서 "재계가 한목소리로 현 정부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룹 회장들은 그동안 "대통령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해왔다.

만찬 후 회장단은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정부의 리더십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더라도 재계가 열심히 하면 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회장단 회의 뒤 가진 만찬에 참석한 남덕우 전 총리 등 전경련 원로자문단도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든 경제가 굳건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만큼 재계가 단합해 리더십을 확고히 하길 바란다"며 재계의 역할을 강조했다.

재계는 자신들의 의무도 진지하게 논의했다. 회장단은 "20세기가 물리적 힘이 지배한 사회라면 21세기는 경제력이 지배하는 세계"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발전을 위한 재계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회의 말미에는 "정부에 이렇게 해달라, 정치에 이렇게 해달라 말하기 전에 재계 스스로 솔선수범해 태풍으로 더욱 커진 국민의 불안감을 어루만지자"는 합의도 했다.

재계는 또 적극적인 투자도 다짐했다. 차세대 성장 동력을 발굴, 경제성장을 이끌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한국을 핀란드.스웨덴과 같은 강소국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자.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위해 원로자문단의 충고를 거울삼아 열심히 해보자"고 말했다.

손길승 회장도 "어렵다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2만달러를 달성하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전했다.

한편 전경련은 이번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데 회원사가 4백50억원 정도를 모금하기로 하고, 장비와 인력 등의 지원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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