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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에 대해 미국 현지에서 퍼지는 비관론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월12일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 이후 한국에선 남북관계에 대한 장밋빛 시나리오가 만발하고 있다. 25일만 해도 정부가 다음달에 4자(남ㆍ북ㆍ미ㆍ중)가 모이는 종전선언을 추진중이란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전날 국방부는 4ㆍ27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해 비무장지대(DMZ)내 GP(감시초소)의 병력과 장비를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28일엔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하는 북한 선수들이 방한할 예정이다. 국내 언론만 보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조만간 가시화되는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미국 현지의 기류는 사뭇 달랐다. 지난 8∼16일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미국 동서센터가 주관한 한ㆍ미 언론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해 워싱턴과 하와이에서 만난 북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오히려 비관론에 기울어있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진짜로 비핵화에 나설 것으로 보는 이는 드물었다.

에이브러햄 덴마크 우드로윌슨센터 아시아프로그램 국장

에이브러햄 덴마크 우드로윌슨센터 아시아프로그램 국장

미국 국방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지낸 에이브러햄 덴마크 우드로윌슨센터 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노력은 지지하지만 나쁜 외교는 지지하지 않는다”며 “싱가포르 회담 결과는 좋지 않았다.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제대로 된 전략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덴마크 국장은 “한미 연합군사훈련 포기도 북한으로부터 딱히 받은 것도 없는데 너무 빨리 포기했다는 생각”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노력이 실패하면 군사적 옵션으로 돌아설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덴마크 국장은 “백악관이 보는 비핵화와 김정은이 보는 비핵화는 차이가 있다. 김정은이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할 것 같진 않고 오히려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한국이) 평화협정 체결을 서두르면 한미 동맹이 삐걱댈 수 있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 경제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한국이 개성공단 문제 등은 조심해서 다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리처드 부시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리처드 부시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

리처드 부시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싱가포르 회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보다도 더 회담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듯한 모습을 모인 것은 실수였다”며 “그로 인해 미국이 원래 갖고 있는 협상력을 상실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쇼를 펼치고 자기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미국의 국익이 뭔지는 관심이 없어보였다”며 “미국과 북한의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은 실패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고 주장했다.

쉴라 스미스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

쉴라 스미스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

쉴라 스미스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싱가포르 회담 자체는 괜찮았다고 보지만 김정은이 과연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라며 “김정은에겐 비핵화를 해야 할 인센티브가 없다”고 강조했다. 스미스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이 결국 원하는 건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핵군축 협정이며 핵군축 협정을 대가로 경제적인 이익을 얻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도 불안해서 회의적 생각이 든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남의 얘기를 잘 듣지 않고 인내심도 없고 전문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북핵문제가 단기간에 해결 될 사안이 아닌데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데니 로이 동서센터 선임연구원

데니 로이 동서센터 선임연구원

동서센터의 데니 로이 선임연구원도 “현재 북미 간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혹시 몇 달 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이 잘 안된다며 포기하면 군사적 옵션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로이 연구원은 “미국은 북한에 큰 양보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북한이 시간을 끌면 대화 프로세스가 끝난 것으로 보고 협상을 중단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 상황은 조금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방미 기간중 만난 한국 정부 관계자는 “얼마전 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특보가 미국 전문가들의 80%가 북미 회담에 대해 비관적이라고 말했는데 사실은 80%가 아니라 90%”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김정하 기자 worm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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