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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미 튀김과 고추장찌개의 환상적 궁합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국홍의 삼식이 레시피(2)

민국홍은 삼식(三食)이다. 하루 세끼를 챙겨 먹어서가 아니라 아내에게 밥해주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요리와 맛집에 관심이 많은 남자이고 미식가다. 현역을 떠난 지금 요리학원에서 정식으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워 아내의 세끼를 챙겨주고 있다. 그의 세끼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음식 하나하나마다 고통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낭만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할머니, 어머니 등 가족사가 녹아있다. 건강과 행복을 선사하는 삼식이 밥상의 인생스토리와 레시피를 소개한다. <편집자>

딸,사위와 함께 와인을 건배하고 있다. [사진 민국홍]

딸,사위와 함께 와인을 건배하고 있다. [사진 민국홍]

지난주 토요일 딸과 사위, 그리고 ‘아차산 날 다람쥐’ 손녀가 집에 와 가자미를 튀기고 고추장찌개를 끓여 맛나게 먹었다. 와인을 곁들여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깔깔거리며 밤 깊어가는 줄 몰랐다.

내가 딸네를 부르기로 한 것은 며칠 전 채널을 돌리다 홈쇼핑에서 가자미를 산 것이 계기가 됐다. 처음에 집사람은 씨알이 작은 고기를 어디에 쓸 거냐고 핀잔을 주었다. 종종 커다란 가자미를 노릇노릇 맛나게 구워 가족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곤 했던 아내는 작은 가자미가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홈쇼핑 방송의 가자미 광고를 보고 20년 전 바캉스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다. IMF 사태가 터지기 전인 1997년 여름 4명의 친구가 가족들을 동반해 강원도 동해시 바닷가 민박집에서 2박 3일간의 여름휴가를 함께 보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휴가 중 일행 중 6명이 인근 바다로 나가 즐긴 가자미 낚시다.

가자미는 튀김으로 해야 제맛

가자미배낚시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이 손쉽게 즐길 수 있다.[중앙포토]

가자미배낚시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이 손쉽게 즐길 수 있다.[중앙포토]

동그란 원반 모양의 납추에 달린 10개 안팎의 낚싯바늘에 갯지렁이를 달아 20~30m의 바닷속에 가만히 내려놓으면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가자미가 곧잘 올라왔다. 20cm 안팎의 참가자미였는데 곱고 노란 줄이 있는 게 특징이다. 이쪽저쪽 에서 와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법 많은 가자미를 아이스박스에 넣어 개선 장군처럼 민박집으로 돌아오니 물놀이를 다녀온 아이들이 일제히 “밥 주세요”라고 병아리 소리를 낸다. 대부분 초등학생으로 엄청 허기진 모양이다.

친구 중 한 명이 “가자미는 튀김으로 해야 제맛”이라며 고기 손질을 시작했고 나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고추장찌개를 만들었다. 그 친구는 가자미를 한 번 튀겨 키친타월에 기름을 뺀 다음 한 번 더 튀겼다.

고추장찌개와 가자미 튀김이 평상에 올려졌고 옹기종기 앉아 점심을 먹는데 두 가지 요리가 환상적인 궁합이다. 찌개는 달콤하고 입에 착 붙었고 가자미 튀김은 극강의 고소함으로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식탁에 차려진 고추장찌개와 가자미 튀김. [사진 민국홍]

식탁에 차려진 고추장찌개와 가자미 튀김. [사진 민국홍]

나는 그 당시 낭만과 음식 맛을 재현해보고 싶었다. 참가자미는 홈쇼핑 '낚시'로 해결했고 고추장찌개는 아내와 자양동 재래시장에서 준비했다. 나의 고추장찌개 레시피는 20년이 지난 지금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남자는 학생 시절 캠핑 가면 감자, 양파, 햄이나 소시지에 고추장을 넣고 끓이는 게 고추장찌개였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요리였다. 그러나 지금의 요리방법은 건강과 맛을 생각해 많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썬 돼지고기 앞다리 300g, 조각난 감자 한 개와 호박 반 개, 5cm 정도로 썰어 반쪽 낸 대파 2개, 간 마늘 한 큰술, 적당량의 표고, 두부 1모 등은 일반적인 준비물이다. 여기에 나만의 요리법이 추가된다. 설탕을 대신해 양파를 갈아 1컵 분량의 양파즙을 준비한다.

여기에 고춧가루 1큰술, 고추장과 간장 각각 2큰술, 맛술 2큰술, 액젓 1술, 새우젓 반 큰술을 넣어 찌개 소스를 만든다. 이 소스를 넣으면 돼지고기 잡내가 전혀 없다. 예전에 고추장과 간장을 넣었던 것에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양파즙을 베이스로 한 찌개 소스로 별미

찌개에 필요한 재료. 호박, 감자, 대파, 두부, 돼지고기, 양파즙 등. [사진 민국홍]

찌개에 필요한 재료. 호박, 감자, 대파, 두부, 돼지고기, 양파즙 등. [사진 민국홍]

양파즙은 인체에 가장 해롭다는 3백(백반, 밀가루, 설탕)의 하나인 설탕을 대체하자는 것이고 대파는 돼지고기의 기름기를 흡수하는 데 쓰인다. 돼지고기, 표고, 소스, 마늘 등을 넣고 끓이다가 감자, 호박, 두부 등의 순으로 익히면 된다. 가자미는 여느 가정집에서 하는 것처럼 프라이팬에 기름을 상당량 넣어 온도를 높인 뒤 생선을 넣어 지지듯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튀기면 그것으로 족하다.

보글보글 끓인 고추장찌개와 참가자미 튀김을 놓고 저녁을 시작했다. 사위는 찌개를 한 입 먹은 다음 한동안 아무 말 없이 폭풍 흡입을 하다가 한참 뒤에야 “너무 맛있어요”라고 한마디 한다. 다들 가자미가 너무 고소하다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고추장찌개는 사랑하는 여인의 키스처럼 달콤함과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양파즙, 대파, 호박과 감자의 전분이 어우러진 데다 표고의 진한 맛이 더해졌고 돼지고기의 깊은 맛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매운 것을 못 먹는 손녀가 찌개의 두부와 돼지고기를 너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놀랐다. 양파즙이 고춧가루와 고추장의 매운맛을 잡은 모양이다. 새로운 발견이다. 고추장찌개가 초등학생에게 매운맛을 가르치는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했다.

와인과 음식은 우리를 옛날 추억으로 되돌려놓았다. 딸이 “그때 너무 즐겁게 논 것 같아요. 우리가 탄 차가 비포장 길을 너무 빨리 달리는 바람에 덜컹거리자 한 아저씨 딸이 ‘차 밑바닥이 긁히잖아요’라니까 운전하던 아저씨가 ‘똥꼬에 상처 난다고 누가 보니?’라고 해서 모두 웃던 게 기억나네요”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 모두가 그 말을 듣고 마치 동해안의 어느 비포장 길을 달리고 있는 듯 깔깔 웃었다.

우리 가족 모두 술기운이 조금 돈다. 저녁이 깊어가고 봄여름가을겨울 밴드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귓가에서 맴돈다.

민국홍 KPGA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중앙일보 객원기자 minklpg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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