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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태씨 고문변호사·경찰증언 상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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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행정위>

<14시간 마라톤 공방전>
20일 오전10시20분부터 21일 오전1시까지 장장 14시간이 넘게 진행된 행정위의 총무처에 대한 국정감사는 80년 여름 단행된 대규모 공직자숙정의 진상규명에 집중됐다.
특히 이날 감사는 증인으로 출두한 김만기 당시 국보위사회정화분과위원장이 증언도중 의원들로부터 「가혹한」 질책을 받자 『이 같은 분위기에서는 증언을 못하겠다』며 증언거부를 하고 퇴장하는 바람에 행정위로부터 위증·증언거부·국회모욕이라는 3가지 혐의로 고발당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등 격앙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김만기씨는 의원들의 신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숙정 당시 일괄사표 요구나 불법 부당한 숙정 지시를 한바 없다』는 등 계속 부인하는 자세를 취하자 야당의원들이 『의원들 상대로 설교를 하는 거냐』 『증언태도가 건방지다』며 마구 질타, 삽시간에 분위기가 흐트러졌다.
김씨는 박용만 위원장까지 나서서 『도대체 답변하는 태도가 그게 무어냐』고 심하게 힐책하자 『나도 한시대의 역사적 책임을 가지고 일했다』며 『회의를 진행하는 위원장까지 이러는 분위기 속에서는 증언을 못하겠다』고 증언대에서 하단.
총무처는 이날 감사가 80년 공직자 숙정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을 예상, 80년 당시의 시대적 상황·숙정 절차 및 과정 6공화국정부의 해직자 대책 등 비교적 소상한 내용을 담은 백서형식의 32페이지 짜리 「80공직자해직조치에 관한 보고서」를 따로 만들어 의원들에게 배포하는 등 치밀한 준비.
이날 감사는 주로 ▲당시 숙정을 주도한 사람은 누구이고 ▲어떤 과정과 절차에 의해 숙정이 이뤄졌으며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에 초점이 모아졌다.
야당의원들은 당시의 공직자 숙정이 「70일간의 대학살」 「숙정이란 이름으로 단행된 공직자사회의 쿠데타」등 극한적 용어를 구사해가며 추궁했고 김용갑 총무처장관은 주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들어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정부가 해결책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며 공격의 화살을 피했다.
이날 감사의 하이라이트는 증인들의 증언내용. 증인으로 출석 요구된 사람은 김용휴 당시총무처장관, 김만기 당시 국보위사정분과위원장, 허삼수 당시 사정분과위 간사, 이득룡 당시농협회장(이상 숙정 단행 관련자), 정일수 당시통일원국장, 조승일 당시 건설부 토지계획국장, 허의두 당시 수협부장(이상 해직공직자) 이었으나 허삼수씨는 칭병하고 출두하지 않았다.
이득룡씨는 의원들의 1문 1답식 심문에서 『주어진 시간에 명단제출을 해야됐기 때문에 일괄사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일괄사표를 시인했고 『본인들에게 해명기회는 의원면직형식 이었기 때문에 주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조승일씨는 『당시 건설부국장으로 홍조근정훈장을 받은바 있고 국방대학원에서 교육 중 해직됐다』며 『숙정을 지휘한 사람은 허삼수씨로 알고 있다』고 증언.
정일수씨는 『당시 통일원 차관으로부터 숙정 통고를 받고 미칠 지경이었다』고 회상하고 『명예회복이 중요하니 해직자들을 당시 제자리로 복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김만기씨를 『전체 해직공무원 이름으로 고발하겠다』 밝혔다.
허의두씨는 『당시 숙정이 기관별로 숫자가 할당돼 수협의 경우 숫자를 채우기 위해 제비뽑기 식으로 해직자를 결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허씨는 『해직자에 대한 취업 제한이 87년까지 실제로 있었다』며 『동료들 중 당시 소청을 제기했다가 모처에 불려가 조사 받은 사람도 있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예시.

<내무부>

<파란 연속 날치기산회>
이틀째 김근태씨 고문사건을 다룬 내무부감사는 김씨와 윤재호 치안본부 형사1과장과의 대질심문 문제를 놓고 4시간 30여분동안 표류하다가 윤씨 등 담당경찰관들의 위증죄 고발여부로 한바탕 소란을 겪은 뒤 막판에는 정동성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산회를 선포하는 등 파란의 연속.
당초 대질심문을 벌일 작정이었으나 여당의 끈질긴 반대로 분리심문으로 진행된 이날 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선 김수현·백남은·허만조씨 등 당시의 사건담당 경찰관들은 한결같이『고문을 안 했다』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로 일관한 반면 홍성우·김상철 변호사 등은 『김씨를 면회했을 때 1·5cm 가량의 상처를 직접 보았다』고 완전히 상반된 증언.
첫 증인인 김수현 경감은 2시간 내에 걸친 심문에서 『고문사실이 한번도 없다』고 부인한 뒤 김씨가 검찰로 송치될 당시 부축 없이 걸어다닐 만큼 건강한 상태였으며 김씨가 고문기구로 표현한 「칠성대」에 대해서는 『김씨에게 고소당한 뒤 그가 펴낸 「남영동」이란 책을 보고 알았다』고 증언.
김 경감은 『수사관은 법률상 가혹행위를 못하게 돼 있다. 간첩도 고문이 아닌 회유방법을 이용한다. 하지도 않은 고문행위를 시인하란 말인가』고 반문하는 등 계속 부인.
백남은 경정(당시 경감)은 『가족들이 면회요청을 했느냐』는 물음에 『기억이 없다』고 했고 허만조 경사 역시 『김씨 조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고 행적 등 외부에서의 증거수집을 했다』고.
그러나 이어 증언에 나선 홍성우 변호사는 여러 자료까지 들고나와 『전기고문에 못 이겨 바닥에 문질러 피가 나서 말라붙은 딱지자국이 선명치는 않았지만 확인할 수는 있었다』고 증언.
홍 변호사는 『가족들로부터 고문얘기를 듣고 10월 14일 면회를 신청했으나 12번이나 허용되지 않다가 85년 12월 9일 13번째에서야 서울구치소에서 만날 수 있었다』며 『아마 고문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다』고 주장.
김상철 변호사는 김씨의 건강상태에 대해 『완전 탈진상태로 눈의 초점이 흐려 있었으며 부축을 받아야 간신히 걸음을 옮길 수 있는 상태였다』며 『당시 김씨의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방금 건져낸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고 표현.
김 변호사는 『상처를 직접 확실히 보았다』며 양쪽 팔꿈치에 긁힌 듯 울긋불긋한 점이 있었고 두 발 뒤꿈치에는 엄지손가락 굵기의 동그란 선홍색 상처가 양 발가락 위에는 좌우에 각10개 이상의 주사바늘자국이 분포돼 있었다』며 『김씨에게 물어보니 발뒤꿈치 상처는 전기고문 때 벨트로 묶여있는 상태에서 뒤틀려 갈라진 것이며, 침흔은 전기고문 때 플러스 마이너스 극을 꽂은 흔적이라고 설명했다』고 증언.
두 변호사의 증언직후 조세형 의원(평민)은 윤재호 총경의 출석을 요구, 증언대에 세운 뒤 1문 1답을 전개해 윤 총경이 증언시간 등에 관해 명백한 거짓말을 했음을 가려내고 위증죄로 고발 발의했고 이어 최낙도 의원(평민)이 『김수현 증인 등 3명도 똑같이 거짓말만 했다』며 위증죄로 고발.
윤 총경에 대한 고발 접수, 방망이를 친 정동성 위원장은 밤11시59분쯤 갑자기 『예정된 의사일정을 마쳤으므로 내무부에 대한 국정감사를 종결한다』며 의사봉을 3타하고는 퇴장하자 이때 발언 중이던 신순범 의원(평민) 등은 일제히 일어나 「날치기」라며 흥분.

<서울시>

<"지원금 53억 차이 난다">
20일 교체위 감사에서는 개인택시면허와 관련된 비리들이 집중 추궁 됐는데 이교성 의원(평민)은 『개인면허발급 우선 순위를 받을 수 있는 서울시장 표창이 장당 2백만∼3백만 원씩에 팔리고 있다』고 폭로.
김용래 시장은 『표창부정은 조사하지 않았다』고 우물쭈물하다 이원택 교통국장을 통해 『88명이 허위기재로 취소됐고 7명은 표창자체가 잘못 돼 취소 또는 구속됐다』고 답변.
백찬기 의원(민주)은 이때 「허위 표창장」을 내보이며 『이런게 브로커를 통해 1백만∼1천만 원씩에 거래되고 있는데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따졌고 김 시장은 또 『87년 9월 자체조사결과 1백 93명이 32명의 브로커 및 택시회사와 짜고 운전경력을 위조, 개인면허를 받은게 밝혀졌으나 담당공무원 관련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하다 김정길 의원(민주)이 『1백93명이나 되는 사람이 공무원과 짜지 않고 어떻게 면허를 받을 수 있느냐』고 몰아치자 『감사반을 구성해 조사하겠다』고 약속.
또 김정길 의원은 『택시수범업체 선정권이 서울시장에게 이관된 후 86년 8개에서 87년 1백 34개, 88년 1백 96개로 급증하고 86년과 88년 개인택시면허가 각각 1천5백19명, 7백59명으로 전년대비 5·5배, 4·5배씩 늘어난 것은 선거 득표책이 아니냐』고 묻고 『서울시는 교통신호등과 관련해 서울시경에 78억 원을 지원했다고 하고 서울시경은 25억 7천 7백만 원을 받았다는데 차액 53억 원의 행방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성남지방 노동사무소>

<의원 수색에 제출촌극>
노동위는 20일 지난 6월 고려피혁 성남공장에서 발견된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성남경찰서 대공과 민영근 경장 등 8명의 증인을 불러 작성 및 배포경위 등을 추궁.
이해찬 의원(평민)이 1문 1답 식으로 따져나가도 민 경장이 『기억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로 일관, 이상수 의원(평민)은 『성실한 답변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감사를 계속하겠다』고 엄포.
민 경장은 증언 40여분 만에야 『블랙리스트는 대부분 경찰의 컴퓨터자료로 만든 것』이라고 실토.
이에 앞서 이해찬 의원은 『86∼88년 노동동향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으나 사무소 측이 『86, 87년 분은 폐기하고 88년 분만 보관하고 있다』고 답변해 이 의원이 정회를 요구한 뒤 30여분 동안 각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직접 「수색」하자 뒤늦게 모두 제출하는 촌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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