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이 일을 해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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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TV드라마의 일회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잊어버리는 것이 안타까워 소설을 썼습니다.』
M-TV 인기드라마 『조선왕조 5백년』의 작가 신봉승씨(55)가 동명의 실록대하소설로 제20회 대한민국 문화 예술상 연예부문-시나리오 작가 상을 수상했다.
그는 83년 1월부터 주2회씩 방영돼온 『조선왕조 5백년』의 드라마원고를 써야하는 부담 속에서도 2백자원고지 5만 8천장에 해당하는 48권 짜리 대작을 지난9월 출간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누군가가 이 일을 해내야 후진들이 덜 고생한다고 생각해 시작했습니다. 지난 5월 소설을 탈고한 뒤에는 심한 무력증이 찾아와 걸음을 걸으면 허공 위를 떠다니는 것 같고 공연히 난동을 부리고 싶기까지 했습니다.』
지난 57년 시와 문학평론으로 『현대 문학』지를 통해 데뷔했으며 61년 국방부 3백만환 현상공모에 시나리오 『두고 온 산하』가 당선되면서 방송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83년 3월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대표작 『조선왕조 5백년』은 줄곧 화제를 불러일으켜 왔으며 현재는 영조시대를 그린 『은중록』편이 높은 시청률 속에 방영되고 있지만 지난 87년에는 외부의 압력으로 방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드라마가 5공화국 정권을 빗대서 제작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지요.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 같은 압력이 방송국 측에 가해져 왔습니다.』
모든 신문과 방송이 침묵을 강요당하던 어둡고 우울한 시절 그는 드라마에 옛 선비를 등장시켜 거침없는 「직언」을 토해냈다.
『언로를 열어라』 『백성의 눈과 귀를 막고서는 정치가 되지 않는다』 『외척을 제거하라』 『재야의 말을 귀담아 들어라』는 대사는 분명 사실에 기초하고 있었으나 「옳은 소리」에 굶주렸던 시청자들은 통쾌해 했고 권력은 분노를 터뜨렸던 것이다.
그는 왕조실록과 씨름하면서 핼리혜성에 관한 이야기가 76년마다 등장하는 치밀한 역사서술과 「임금을 개 패듯이 비판한」 선비정신의 위대함을 끊임없이 확인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역사를 두려워하는 비판정신이야말로 정권이 5백년간 계속될 수 있었던 진정한 원동력이라고 그는 말한다.
드라마는 역사의 오욕과 영광을 똑같이 다뤄야한다고 굳게 믿는 그는 『시청자들은 늘 새로운 자극을 요구하지만 작가는 냉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이며 한국 역사문학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그는 고향인 강릉시 초당동에 마련한 집필저택에서 대부분의 작품을 쓰고 있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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