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적 위치 조명-변영섭씨 연구서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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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표암 강세황>
18세기에 활약했던 문인화가 표암 강세황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가 출간돼 미술사학계의 주목을 모으고 있다. 미술사가 변영섭씨(39·여·이화여대강사)가 펴낸 이 책의 제목은 『표암 강세황 회화연구』(일지사 간).
한 인물을 테마로 그 생애와 업적을 방대한 체계 속에 실증적으로 소화해내는 작업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미술사연구풍토 속에서 자신의 박사학위논문 형식으로 내놓은 표씨의 저서는 근래에 보기 드문 연구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표암 강세황은 대대로 현직을 독차지했던 명가의 후예로 태어나 시·서·화 삼절의 예술가였다. 그는 18세기 조선화단을 지배했던 인물이며 이른바 「예원의 총수」로서 조선후기미술의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는 남종문인화의 본격적인 유행, 진경 산수화의 발전, 풍속화의 풍미, 서양화법의 유임 등 「새로운 화법의 전개와 새로운 회화관의 탄생」으로 특징지어지는 조선후기 회화사의 한 가운데 우뚝 서서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작가의 작품에 화평을 쓰는 형태로 이들 모든 조류에 깊이 관여하면서 개척자적 영향력을 미쳤었다.
변씨의 이번 저서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광범위한 자료를 동원하면서도 냉정한 실증적 자세를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점.
『한 사람의 작가중심연구는 골똘한 나머지 사실 이상으로 과대 평가되거나 의도적인 해석이 가해질 위험이 있으므로 이를 피해 객관적 분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저자 변씨의 얘기다.
표암에 대한 자료는 비교적 풍부해서 79년에 간행된 『표암 유고』와 같은 문헌자료를 비롯, 그가 그린 서화작품과 자화상·초상화·회화수업의 교과서노릇을 한 『십죽재화보』·『당시화보』 등 화보 류, 그의 주변인물들의 문집·기록들이 상당량 전하고 있다. 『결론을 미리 내놓고 거기 맞춰 아전인수격으로 자료를 활용하는 예를 자주 본다. 그것은 과학적인 학문의 방법이 아니다. 나는 가능한 한 모든 자료를 수집한 뒤 이들을 분석·분류함으로써 사실에 접근해 가는 귀납적 방법을 이번 연구의 기본 틀로 삼았다』.
변씨가 이번 저서에서 특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본문 내에 무수히 등장하는 인용문해석의 정확성이다.
한문학자 임창순씨에게 사사, 만만찮은 한문실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을 기하고 싶은 욕심에서 자료로 끌어온 인용문의 일자일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임 옹에게 보여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
『내용의 정확성과 신뢰도라는 면에서는 임창정 선생님이 논문의 절반 이상을 쓰신 셈』이라고 변씨는 말한다 .
변씨의 논문을 지도했던 안휘준 교수(서울대)는 『18세기 남종문인화의 대가이며 김홍도·신위 등의 스승이기도 했던 강세황에 대한 연구가 이번 변씨의 노작을 계기로 그간의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수준을 벗어나 본격화 될 수 있게 됐다』며 『특히 표암의 서양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시기문제, 한 벌로 짜 맞춰진 사군자개념의 형성시기에 관한 석명과 더불어 표암이 다른 화가들의 작품에 붙인 독보적인 화평들에 대한 광범한 분석 등은 매우 소중한 업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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