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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6·13지방선거 이후 여·야의 행로···'불구 상태' 빠진 자유한국당의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자기 손해 감수하고서 불공정한 구성원 벌 주려는 움직임 없어…버티면 언젠가 ‘음지가 양지 된다’는 기대감이 유일한 전략?

[정치분석] '국민은 자유한국당의 진정성 안 믿는다'

지방선거 다음날인 6월 15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의총이 열린 국회에서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방선거 다음날인 6월 15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의총이 열린 국회에서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20년 총선 지역구 의석 253석 중 자유한국당의 당선 가능한 의석 수는 33석.”

7월 7일 야권의 한 분석가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 같은 도발적인 글을 올렸다. 6·13 지방선거 전국 기초단체장 득표 결과를 2020년 21대 총선에 단순 대입했을 때 자유한국당이 얻을 수 있는 의석 예상치다. 그는 “21대 총선이 아직 2년 가까이 남은 터라 객관적인 데이터를 구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국회의원 선거구와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6·13 지방선거 구·시·군의 기초자치단체장 선거 결과를 기초로 의석 수를 산출해 봤다”고 밝혔다.

단순한 시뮬레이션이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자유한국당은 서울에서 단 2석을 얻는 것으로 나온다. 서울 25개 구청장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서초구 단 한 곳에서 승리했다. 이 결과를 총선에 대입한다면 서초갑, 서초을 두 곳에서만 자유한국당은 당선자가 나온다는 시나리오다.

부산은 1석만 건지는 것으로 나왔다. 부산 16개 기초자치단체장 선거구 중 자유한국당이 승리한 곳은 수영구와 서구 등 단 2곳. 이 또한 국회의원 선거구에 대입해 보면 자유한국당에 떨어지는 의석은 1석으로 오그라든다. 수영구는 단독 국회의원 선거구이므로 자유한국당이 이기지만, 서구는 사정이 다르다. 동구와 합쳐서 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복합 선거구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구청장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1932표를 앞서 당선됐다. 하지만 동구에서는 자유한국당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2333표 뒤져 낙선했다. 이를 놓고 따져본 2020년 부산 서구동구 국회의원 선거구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다. 그래서 부산에서 가능한 자유한국당 의석은 1석에 그치는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통계를 내 본 자유한국당 21대 국회 예상 의석은 대구 11석, 인천·대전·울산·경기 0석, 강원 1석, 충남·북 각 2석, 전·남북 0석, 경북 9석, 경남 5석 등 총 33석이다. 253개 지역구 의석의 13%를 얻는 데 그친다는 것이다.

물론 21대 총선까지는 시간과 변수가 많아 지방선거 결과가 다음 총선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계속 헛발질해서 민심을 더 잃으면 20석 미만의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게 이 분석가의 경고다. 만약 이 전망이 현실화한다면 자유한국당은 사실상 ‘폭망’이다. 호사가들의 입방아처럼 ‘TK(대구·경북) 자민련’과 같은 지역정당으로 추락하면서 보수를 대표하는 전국정당의 위상을 잃게 되는 것이다.

2020년 총선 자유한국당 지역구 의석은 33개?

6월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 직을 사퇴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6월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 직을 사퇴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최근까지의 자유한국당 동향을 보면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다. 6·13 지방선거 참패 후 한 달이 넘도록 혁신비상대책 위원장 선임조차 못했다. 친박(친박근혜)계는 혁신비상대책위(이하 비대위)를 꾸리려는 김성태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 대표의 사퇴를 압박해 왔고, 비대위원장 후보를 5명으로 압축해 선임을 밀어붙이던 비박(비박근혜)계는 선임 방식을 놓고 혼선을 빚었다. 새 리더십 창출을 논의하자던 네 차례의 의원총회는 파벌 간 싸움판으로 변질되곤 했다. 김성태 대표 권한대행이 “호가호위했던 세력들의 기고만장한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비박계 일부를 정조준하자,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은 “지방선거 후 김 권한대행이 보여준 비민주적 행태, 독단적 리더십은 당을 위기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맞받아치는 형국이다. 나중에 한 발씩 물러서면서 내홍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보수 가치 재정립이나 당 개혁 방안 논의는 아예 뒷전으로 밀려났다. 뿌리 깊은 계파 갈등과 엉성한 일처리로 날밤을 샌 게 지방선거 후 자유한국당의 현주소라고 하겠다.

여론조사는 자유한국당에 더 암담한 그늘을 드리운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7월 10~12일, 95% 신뢰수준에 표본 오차 ±3.1%포인트)에서 113석의 자유한국당은 고작 10%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의석이 6석에 불과한 정의당도 10%의 지지를 얻어 사상 처음으로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뉴스가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은 “차라리 당을 해산하고 국회의원 개개인의 ‘각자도생’의 기회를 열어 줄 때”라며 난항을 겪는 자유한국당 내분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의 분열과 추락의 끝은 어딜까?

앞서 블로그에 글을 올렸던 야권의 분석가는 지리멸렬한 상황이 이어지던 7월 4일 ‘자유한국당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극히 시니컬한 3가지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아주 단선적이고 추상적인 진단이라 자유한국당의 실제 행로는 이와 많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을 보는 내부의 시선을 가늠하고 자유한국당의 앞날을 내다보는 시야를 확장한다는 의미에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 1안: 비대위 외부인사 구성안 마련→ 전국위원회 또는 상임전국위원회에서 부결→ 비대위 구성 무산→ 책임론을 두고 계파간 내부 총질→ 김성태 원내대표 사퇴→ 복당파 중심 일부 탈당→ 관리형 비대위 구성→ 전당대회→ 현재 거론되는 유력인이 당권 장악→ 2020년 총선 폭망.

제 2안: 비대위 외부인사 구성안 마련→ 전국위원회 또는 상임전국위원회에서 가결→ 비대위 구성→ 전당대회 시기, 인적 청산을 두고 계파 간 내부 총질→ 내년 1~2월 전당대회→ 복당파 중심 당권 장악→ 당명, 정강정책 개정→ 껍데기만 덧칠한 도로 한국당→ 2020년 총선 폭망.

제 3안: 비대위 외부인사 구성안 마련→ 전국위원회 또는 상임전국위원회에서 가결→ 비대위 구성→ 비대위가 한국당 해체→ 찬·반을 놓고 내부 총질→ 11월경 해체 찬성파 일부 탈당→ 12월경 안철수·유승민 등도 바른미래당 탈당→ 한국당 해체 찬성 탈당파와 안철수·유승민 등 바른미래당 탈당파가 신당 연합체 구성→ 한국당 잔류파 대거 탈당→ 내년 2~3월 신보수우파 정당 탄생→ 2020년 총선 과반수 확보.

이 분석가는 “80~90%는 2안으로 갈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국당 내 주요 인사들은 보수우파의 미래와 대한민국 국민을 진정으로 걱정하고 반성하기보다는 말로만 반성하고 혁신을 외친다. 자신의 밥그릇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당권 장악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이 눈에 확연히 보인다.” 나아가 비대위가 꾸려진다고 해도 과거 청산에 방점을 둘 것이므로 갈수록 구주류인 친박계의 결속력은 떨어지고 복당파의 세력이 확장되게 되리라고 이 분석가는 예상했다. 그는 “당권을 잡은 복당파는 현실에 안주하면서 뭔가 변했다는 시늉을 해야 하니 당명과 정강정책 정도는 당연히 개정할 것”이라며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당내 권력 다툼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모습에 일반 국민은 자유한국당에 신물이 날 것이고, 새로운 당권파 또한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생각에 관심조차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결국 국민의 눈높이가 아닌 자신들의 눈높이

6월 19일 자유한국당 초선 의원 모임에서 한 참석 의원이 당 재건 및 개혁 등에 관한 현안이 정리된 메모를 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6월 19일 자유한국당 초선 의원 모임에서 한 참석 의원이 당 재건 및 개혁 등에 관한 현안이 정리된 메모를 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런 예감은 비단 이 분석가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강약과 경로는 다르지만 지금의 자유한국당은 희망을 주기 어렵다는 데는 많은 이가 인식을 같이한다. 입소스코리아의 이상일 본부장은 “자유한국당은 비대위가 출범하더라도 계파 갈등이 지속되면서 국민들에게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유권자들의 눈에 자유한국당은 회복 불능 정당으로 낙인이 찍혔다”면서 “완전한 수준의 해체에서 새로 시작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당의 해체를 보수 회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전상인 서울대 교수도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자유한국당의 회생은 고사하고 당의 존립마저 심히 걱정되는 분위기”라고 우려를 표했다. 전 교수는 “거대 정당이 총선, 대선, 지방선거에서 3번 연속 고배를 마신 것도 이례적이거니와 특히 지방선거 패배는 역대급 대참사였다”면서 “이대로라면 내후년 국회의원 선거 이후 대한민국은 ‘일단독재국가’가 될 개연성마저 없지 않다”고 극단의 결과까지 가정했다.

보수 진영은 원로들마저 입을 다문다. 한때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던 이문열 작가는 “지금은 제가 정치에 간섭하거나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고 공식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혁신비대위원장 최종 후보로 확정된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도 6월 말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는 “자유한국당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지리멸렬한 자유한국당 내부 기류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걸까? 자유한국당 혁신비대위 준비위에 참여한 장영수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대부분의 정치인이 있는 그대로는 보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고 월간중앙 기고문에서 지적했다. 결국 국민의 눈높이가 아닌 자신의 눈높이, 국민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에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민감한 내용이라며 익명을 요청한 여론조사기관의 관계자는 자유한국당의 체질이 쉽게 바뀌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사안의 본질이 간단명료함은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잘 안다. 지방선거 궤멸적 결과는 대선 참패 이후에도 아무런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자유한국당에 실망한 국민이 다시 표로 심판한 결과다. 책임과 반성보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정당성을 거부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 지방선거에서 다시 탄핵을 받았다. 게다가 “지금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간이 제법 흘러서 앞으로 자유한국당이 뭘 해도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이 관계자는 단정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뭔가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탄핵 이후 대선, 지방선거까지 탄핵 민심을 부정하고, 이념 싸움으로 선거를 치르면서 국민의 심판을 자초했다. 국민들이 자유한국당의 진정성에 대해 적잖은 불신을 갖고 있어 예전보다 더 힘든 처지로 보수 진영이 내몰린다.”

‘공유지의 비극’으로 내닫다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 구성은 계파 간 이견으로 극심한 난항을 겪었다.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 구성은 계파 간 이견으로 극심한 난항을 겪었다.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당내 일부 초·재선 의원은 특정 의원의 탈당을 요구하는 등 집단적 추궁에 나섰다. 특정 계파, 특정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당내 흐름도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고 비판된다. 여론조사기관의 이 관계자는 자유한국당이 ‘공동책임’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전 대표가 대통령선거, 지방선거를 이끌며 강하게 여론에 저항했다. 결국 지방선거 과정에서 민심의 역풍을 맞았다. 그 과정에서 누구 하나 제대로 거부하거나 비판한 기억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그 체재 내에서의 안주를 택했다. 선수 (選數)가 적다고 책임이 없고 있고의 차원이 아니다. 친박이라 불렸던 과거 정부 핵심 세력이 1차 책임은 져야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를 청산한 타이밍을 놓쳤다는 점에서 지금은 ‘공동책임’의 단계에 와 있다. 누가 누구의 책임을 묻는다는 식의 책임 전가로는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자유한국당 몰락의 뿌리를 행동 경제학적 관점에서 찾자면 ‘이타적 처벌’의 부재라는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 경제학자 에른스트 페르와 지몬 괴흐터가 고안한 개념인 ‘이타적 처벌’은 협동이 증가했을 때 모든 구성원이 혜택을 얻는다는 믿음 아래 자신의 이익을 기꺼이 포기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행위는 자기희생을 통해 결과적으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벌하는 효과를 낳는다고 해서 ‘이타적 처벌’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자유한국당에서 자기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불공정한 구성원을 처벌하려는 이가 얼마나 될까?

이와 관련해 서성교 바른정책연구원장은 “자유한국당은 ‘이타적 처벌’보다는 ‘공유지의 비극’에 가까운 길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은 생물학자인 개릿 하딕이 1968년 논문에서 제안한 이론이다. 농민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마을의 공유지에 경쟁적으로 많은 소를 풀어 결과적으로 황무지로 만든다는 가설이다. 서 원장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혜택을 보면 된다는 공유지의 비극 심리가 자유한국당에 만연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경로 의존성도 자유한국당을 멍들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사회심리학에서 등장하는 ‘경로 의존성’ 개념은 한번 일정한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그 경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습성을 뜻한다. 이상일 입소스코리아 본부장은 “‘이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현재에 머무는 게 더 이익’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자유한국당에 많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새 정치를 찾아 탈당했던 바른정당 의원들이 대세를 이루지 못하고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 짙어졌다. “보수 해체의 움직임이 실패로 굳어지면서 나가봐야 볼 일 없다는 식의 학습효과를 남겼다. 그래서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현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자유한국당의 현실”이라고 이 본부장은 분석했다.

과거 많은 선거에서 여야가 번갈아 가면서 승리하는 이른바 ‘시소게임’의 추억도 자유한국당의 발목을 잡는다. 자유한국당 입장에서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해볼 만한 전망은 쉽지 않은 반면, 여당의 패착으로 반사이익을 얻거나 유권자의 견제심리가 발동하리라는 기대감은 솔깃한 희망이다.

여권의 양동작전, 경제에서도 통한다면?

지방선거 후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는 친박계와 비박계 간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지방선거 후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는 친박계와 비박계 간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2016년 4월 총선 전만 해도 정치권은 보수에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기억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40%를 웃돌던 자유한국당의 오랜 콘크리트 지지층의 충격적 와해는 2016년 총선 당시 진박(眞朴)·비박(非朴) 갈등이 시발점이 됐다. 마찬가지로 더불어민주당 역시 2020년 총선에서 진문(眞文)과 비문(非文)이 공천 룰 등으로 놓고 분열한다면 여권이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에 말려들 수도 있다. 실제로 이번 지방선거 후보 공천 과정에서도 친문과 비문 후보 간 격돌 조짐을 보였다. 다음 총선은 국회의원들의 의석이 걸린 문제라 여권 내 주류, 비주류는 더 격렬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은 여권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여론의 운동장이 서서히 균형점을 향해 가리라고 보는 것이다. 버티면 언젠가 ‘음지가 양지가 된다’는 기대감이다.

과연 다음 총선은 ‘시소게임’으로 갈 것인가?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 전문위원은 이와 관련해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안보 이슈에서 보인 성과를 경제에서도 실현한다면 지지율 고공행진은 계속될 수 있다. 지금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참여정부 당시의 여당인 열린우리당보다 훨씬 더 심각한 국민적 저항과 비판, 불신을 받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게다가 영남 지역의 민심도 변화하고 있다. 부산·경남은 물론이고 대구·경북도 자유한국당을 외면하는 흐름이 나타난다는 게 정 의원의 현실진단이다.

당장 7월의 정치 여건만 해도 그렇다. 지난 상반기 때보다는 자유한국당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돌아간다. 그간 여권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던 안보 이슈도 북·미간 대화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주춤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최근 사용자 측이 불참한 가운데 확정된 최저임금 인상안은 정부여당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 각종 경제 지표의 악화는 현정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타당성에 회의감을 부추기는 악재로 작용한다.

웬일인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견고하기만 하다. 앞으로도 일정기간 경제 관련 논란들이 국정지지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7월 10일~12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이 대통령 직무 수행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이유로 주로 ▷외교 잘함(16%) ▷대북 안보정책(16%) ▷북한과의 대화 재개(16%) ▷개혁, 적폐청산(7%) ▷소통 잘함(7%) 등을 꼽았다. 긍정 평가 이유로 경제 성과를 든 응답률은 1%에 머문다.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에 경제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분명해지는 조사 결과다. 국민의 실질적 생활과 직결되는 경제 문제가 국정평가와 분리되는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도 한 변수가 된다. 입소스코리아는 ‘7월 정국 흐름 및 전망’자료에서 “남·북·미간 대화와 교류가 일상화되고 당연시될 경우 그동안 가려졌던 경제문제가 돋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8월 중순 이후 여론의 추이를 살펴야 한다”고 전망한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장담하듯 진보 진영의 우위가 10년, 20년 동안 지속된다는 근거는 없다고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언급했다. 정 위원은 “안보에서 보여준 여권의 양면적 정책 접근이 경제에서도 가능한가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안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건 자신들의 철학과 노선을 강력 추진하면서도 우려하고 반대하는 목소리에는 적극 반응하는 등 양동작전을 펼친게 주효했다. 예컨대 한반도운전자론, 남북 대화를 내세우는 한편으로 시종일관 한미동맹 강화와 사드 배치를 강조함으로써 보수층의 불안을 다독여온 게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이다. 외교 노선을 놓고 ‘자주’와 ‘동맹’으로 대립하던 참여정부의 외교라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을 꾀한 것이다. “그래서 줄곧 안보 이슈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먹히지 않은 것”이라고 정 위원은 진단했다. 마찬가지로 현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불안감은 상존한다. 소득주도 성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걸 비판하고 불안해하는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대책이 병행될 수 있는가가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현 정부가 안보 이슈와 달리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복합적이고 양면적인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고 정 위원은 보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율 고공행진도 언젠가는 조정을 받는다는 건 정치권의 일반적인 믿음에 해당한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내부에서조차 “그건 막연히 기다려보자는 건데 그걸 공당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 제기된다. 자유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그건 떨어지는 감을 받아먹겠다는 것”이라며 “상대의 실수를 매개로 재기하려 들다가는 영원히 기회가 안 올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기존의 정치 프레임에서는 6개월이나 1년이 지나면 여야의 균형이 회복되곤 했다. 지금은 자유한국당의 지지도가 폭락한지도 2년이 다 돼간다. 그 지지율의 하락 폭은 더 커져 간다. 대선에서 참패하고도 지방선거에서 더 무참하게 깨졌다. 유권자들이 지금의 자유한국당에는 견제심리를 발동해 주지 않는다는 말 아닌가.”

“막연히 기다려보자는 게 공당의 전략인가”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김성재 김대중아카데미원장은 보수가 제 기능을 하는 정치 구조가 안착하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그는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 모두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보수와 진보 양쪽이 본연의 가치에 충실한 파트너로 기능할 때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담보된다는 믿음에서다.

그가 보는 보수와 진보의 존재형식은 다음과 같다. 빈곤과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 차원에서 보는 게 보수라면 이를 사회 구조의 책임으로 돌리는 게 진보다. 그래서 문제 해결 방안을 놓고서도 보수는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진보는 구조를 바꾸려 든다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이래 보수 진영은 사람이 반성하고 바뀌어야 하는데 보수 정치인들 다수가 개인의 사욕에 탐닉한다는 인상을 줬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보수가 있었나? 이게 치명적 문제다.”

그는 보수의 과제로 시대의 변화, 세대의 교체를 직시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정립하는 노력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역대 한국의 보수는 자기를 희생해 나라를 살리는 애국(愛國)을 해왔다. 지금은 자신을 희생해 정당을 살리는 애당(愛黨)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그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당 의원들이 새 미래를 준비해 주고 물러난다는 자세를 가져야 보수가 산다”고 했다. “권력의 달콤함을 잊지 못하고 연연해하면 보수에게 희망이 없는 것이다.”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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