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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감사 중간 결산 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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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6년 만에 부활된 국정 감사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터져 나오는 등 국민들로부터 크게 주목받고 있어요. 전국 도처에서 비리·부정사건이 터지고…. 「5공 비리」는 전국적 현상이란 느낌을 주고 있어요. 이런걸 보면 국정감사는 역시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동안 감사 없이 독주해온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독 기능을 국회가 그런 대로 해내고 있고 그 때문에 감사 과정의 부분적인 말썽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 거죠.
-2백99명 중 감사 경험이 있는 의원은 10명도 안 돼 자질과 능력에 있어 우려가 제기됐습니다만 당초의 우러를 상당히 씻은 느낌입니다.
-민정당도 5공 비리가 노출된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더군요. 어차피 터져 나올 일이고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전 시대의 비리니까요. 6공화국이 일해나가는데 짐이 되고 있는 5공 비리를 앞으로 단호히 처리 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죠.
-야당에서는 물론 이번 감사가 잘 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의원들을 독려하고 있지요.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상황실을 만들어 놓고 진두지휘에 나서자 김대중 평민당 총재도 즉시 매일 대책회의를 열고 일일점검에 나섰어요.
-국정 감사란 게 원래는 지난 1년 간의 정책·예산집행 내용을 점검해서 다음해 예산심의나 입법활동에 참고한다는 국회의 보조적 기능입니다만 16년 만에 감사가 부활돼 5공 비리 청산문제까지 대두되다 보니 자연히 실무 감사보다는 정치 감사로 흐르고 또 그게 과거유산의 청산이란 과제를 안고있는 이 시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보는 게 여론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지요.
-20일의 감사 기간 중 꼭 절반이 지났습니다만 현재까지 중간점검을 해봐도 성과가 컸습니다. 삼청교육대의 50명 사망 사건은 충격적이었어요. 더군다나 그 중에 8명이 집단구타로 죽는 등 사고로 15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삼청 교육의 참상 폭로들이 사실임을 입증했어요.

<일문일답 추궁 주효>
-지난 82년 한라산에서 헬기추락으로 특전 부 대원 51명이 사망한 원인도 당시 발표처럼 훈련이 아니라 대통령 경호 중이었다는 사실도 폭로됐지요.
-합천의 전두환씨 부모 묘역에 군비를 지원한 사실, 새 세대 심장재단이 서울시에서 시유지를 불하받아 팔아버린 사실도 드러났지요.
-수입쇠고기 3백95t이 썩어서 파묻어 버린 사건은 오는 17일 농수산위원·조사단이 현지 조사키로 돼있지요.
-문공위선 교원 사찰과 문공부 보도 지침이 문서로 드러나 버렸어요.
-문공위의 교원 사찰 등은 답변을 회피하자 즉석에서 문서 검증해서 근거서류를 의원들이 찾아낸 겁니다. 현장 감사의 이점이라고 할까요.
-일문일답 식 추궁으로 방송 광고공사 공익 자금의 정치적 유용을 시인케 한 것도 성과입니다.
-언론통폐합의 내막이 새삼 파헤쳐지면서 검열관의 군인들과 언론인들의 「태평회」란 모임이 있었고 현역 언론인이 언론통폐합 과정에 개입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취소 발언 여운 남겨>
-현역 언론인이 동업 언론사를 찢어발기고 동료 언론인의 숙정에 가담했다는 소문의 진상은 철저히 파헤쳐져야 합니다.
-이 사건은 무슨 연유에선지 5공 특위 비리에서는 빠졌던 사건이죠.
-소위 관련됐다는 혐의를 받고있는 언론사에선 국회의 태평회 발언이 있은 후 이에 대한 강력한 해명을 요구했다는 후문입니다.
-이 질문을 했던 박석무 의원 (평민) 은 취소 발언까지 하게돼 내부로부터 반발을 사고있는데 오는 22일 증언 청취 때를 벼르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 문제로 증언하게 돼있는 이상재·허문도씨 등이 사전에 입을 맞춘 감이 없지 않습니다. 태평회와 관련해 이씨 등은 현역 언론인이 개입한 것으로 얘기했었는데 최근에는 현역 언론인은 없었다는 식으로 말이 바뀌고 있답니다.
-대법원은 김근태씨 재정 신청을 1년9개월 동안 방치해오다 감사식전인 9월말 1차 심리를 하게 된 것도 그렇고 법사위 감사를 앞두고 법무부가 재소자에게 신문 열람을 허용하겠다고 한 것 등은 감사 대비용이란 인상입니다. 감사의 부수적 성과라고 봐야겠지요.
-국정 감사가 후반전을 넘어가면 지금까지의 폭로 중심에서 증인을 상대로 한 신문에 중심이 될 전망입니다.
-14일 현재 각 위원회의 출석 요구를 받고있는 인원은 내무위가 29명, 행정 위 21명 등 연인원 1백27명에 이릅니다.
-5공 시절 말 깨나 하던 인사들은 거의 포함됐지요.
-증인 중엔 ▲ 이순자씨 등 이른바 연희동 로열패밀리 ▲ 장세동 전 안기부장, 안현태 전 경호실장, 허삼수 전 청와대 사정수석, 허문도 전 통일원장관, 이상재 전 민정당 사무차장, 이원홍 전 문공 장관, 서동권 전 검찰총장, 김용휴 전 총무처장관 등 5공의 실력자들 ▲ 김만제, 정인용 전 재무장관, 사공일 재무장관, 최창낙 전 한은총재 등 경제 각료들과 은행장 다수 ▲ 조중훈, 양정모, 윤석민씨 등 재계인사들이 망라돼있고 ▲ 이후낙씨 등 3공화국 인물도 포함돼 있지요.
-증인들은 거의가 5공 비리와 관계돼있어 이들의 입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파헤쳐질지가 관건입니다.
-행정 위에 출석한 이규동씨의 경우 정부여당과의 협의 없이 연희동에서 전씨 일가의 협의 연락만으로 나온 인상입니다. 이날 아침 김길홍 의원 (민정) 은 현장에서 이씨가 나온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청와대에 연락해주는 모습을 보였으니까요.
-문공위에서 이순자씨가 1차 출석을 거부해 동행 명령장 발부를 앞둔 상태인데 새 세대 육영회 회장직에서 사퇴했으니 정치적 절충이 있겠지요.
-국회 소환 증인 중에 이순자씨를 제외하면 안나온다고 버티는 사람은 없어요. 염보현 전 서울시장은 옥중에서 서면으로라도 성실히 답변하겠다고 했지요.
-증인 채택을 둘러싼 막후 로비도 대단해요. 8명에게 소환장까지 발부했는데 6명은 취소했지요. 일부 수감자가 제외된 것은 그렇다 치고 김철호 전 명성회장은 평민당에서 한상연 전 범양 사장은 민주당 쪽에서 로비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있어요.
-민정당의 L의원은 5공화국 시절 경제 비리와 관련된 주요 증인인데 자진 출석 권유니 하면서 흐지부지 됐어요.
-각 상위별로 보면 다선 의원들은 이상하게 흐물흐물한 반면 초·재선 급 신진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도 특기할만한 사실입니다.

<예상답변에도 대비>
-보사위의 이철용 의원 (평민)은 모두 현장 조사 중심으로 한강 상류 공장폐수 방류 사진을 10여장 찍어왔고 부산 사회복지시설 효정원에도 직접 가서 의사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등 조사를 바탕으로 추궁해 관계 관들이 쩔쩔맸어요.
-교체 위의 김정길 의원 (민주)은 지방 출장에 보좌관을 자비로 4명씩 데려와 일요일에도 하루종일 감사 준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예상답변, 그에 대한 반론까지 준비하는 등 치밀하게 대비하더군요.
-건설 위의 김법환 의원 (민주)도 한라산 헬기 추락사건을 터뜨렸지만 아르바이트생을 동원해 자료를 수집하고 치밀한 자료준비로 폭로 전문가로 꼽히지요.
-행정 위의 이동근 의원 (평민)은 아예 관련 문서를 복사해서 제시해 서울시가 꼼짝없이 시인하기도 했는데 정보 수집에 상당한 돈을 들였다는 소문이예요.
-국방위에서 활약한 권노갑·이재근 의원 (이상 평민)은 안기부·보안사 질문을 위해 전 대학가의 학생회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더군요.
-노동 위의 이상수·이해찬 (이상 평민)·노무현 의원 (민주) 트리오는 셋이 번갈아 일문일답 식으로 추궁해 들어가 노동부는 아주 고문을 당하는 심정이라는 얘깁니다.
-문공위의 박석무 (평민)·강삼재 (민주)·이철 의원 (무소속) 역시 삼총사로 도망갈 여지가 없도록 추궁을 하는 것으로 악명 (?) 높습니다.
-재야출신 의원들도 있고 의원 보좌관 중엔 운동권 출신 세력이 상당수 돼 학생·해직교원·기자·재야문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각 위원회나 의원별로 많은 성과를 올린 것도 사실이지만 틈틈이 수준이하의 언행도 눈에 띄었습니다.
-농림수산위의 경우 의원들 전체가 대체로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민정당의 S의원은 지난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감사 때 서울시 부시장과 시장이 사장을 향해 반말 투의 고성으로 "나와서 답변해" "시정하겠어, 못하겠어"를 연발해보는 사람조차 민망하더군요.
-내무위의 학자출신 P의원 (민정) 의 경우는 본인은 농담을 하려고 한 모양인데 회의 도중 "밥 먹고 합시다" 는 말을 연발하는가 하면 "지사도 먹고살아야지" "국정 감사 반에 구멍만 있으면 쑤시는군" 이라는 등 분위기에 맞지 않는 발언을 자주 해 동료 의원들조차 눈총을 주더군요.
-국방위의 K의원 (공화) 은 가는 곳마다 좌충우돌 해 김용채 총무도 말리다못해 손을 들고 김종필 총재가 직접 경고장을 주었다는 소문입니다.
-재무위의 H의원 (평민) 은 4선에 나이도 지긋한데 "곤조통○○○를 모르느냐"는 등 회의 때마다 트집잡기 발언을 했어요.
-웃기는 질문도 많았지요. 행정 위의 Y의원 (공화)은 서울시경 감사 때 "경찰관과 순경의 차이가 뭐냐"며 정색을 하고 물어봐 경찰 간부들이 웃음을 참지 못했어요.
-위원회별로 따지면 뭐니뭐니해도 부실기업 문제를 따진다던 재무위가 제일 부실 위원회였습니다.

<엉뚱한 시비에 눈살>
-심지어 자료에 엄연히 GNP 「잠정치」와 「확정치」가 명시되어있는데도 왜 수치가 다르냐고 달려들어 엉뚱한 시비를 일으키기도 했어요.
-정보통으로 알려진 한 야당 의원은 한참 캐묻다간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서면으로 답변하시오" 라고 해 「히트 앤드 웨이트」 작전을 쓴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서면으로 답변하라는 것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 알아서 하라는 뜻이지요.
-동자 위의 경우는 "고 단위 「쥐약」을 먹은 게 아니냐" 는 소문이 돌아 의원들끼리 쌈박질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14일 한전 감사 때는 박정기 전 한전 사장과 이명박 현대건설 회장 등 증인 2명이 나왔는데 "내일 합시다"며 집으로 돌려보냈고 황낙주 위원장이 "보고 도중 질문은 하지 말자" 고 주문까지 하더군요.
-상공 위의 경우도 수감기관인 업체로부터 몇몇 의원이 5백만 원과 월1천만∼2천만 원의 순익을 내는 대리점 TO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아 의원들끼리 얼굴을 붉히며 한바탕 논란을 벌이는 해프닝까지 있었습니다.
-감사하는 쪽도 문제지만 당하는 쏙도 문제가 있어요.
-그 때문인지 민정당 쪽에선 이번 감사에 소신 없이 처신한 기관장은 문책하겠다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지방관 서장들이 야당 의원들한테 간지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처신하는 게 몹시 떫은 표정이고 "이래서야 어떻게 국정을 이끌어 가겠느냐" 는 걱정까지 드는 모양입니다.
-민정당의 불만은 그것만이 아니예요. 심지어 자료조차도 민정당 의원한테는 오지 않아 전화를 걸어 다그쳐야 가져온 곳도 있었다는 겁니다.
-야당 의원을 했던 여당의 한의원은 "이래 가지고서야 여당 못해먹겠다" 고까지 했답니다.
-여권 내에선 국방위에서 군 복무 중 사망자 통계 등을 아무 설명도 없이 덜렁 내놓아 쓸데없는 문제를 야기 시키는 등 지레 겁먹고 안 내놓아도 될 자료까지 내놓는다고 불평이 자자해요.
-수감기관의 과잉영접도 깊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조익래 경남지사는 내무부 지방 감사반을 전남 광양까지 찾아와 모셔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 지사의 경우는 부산 감사 때 의원들의 버스에 동승하려다가 선거이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던 민주당 의원들이 "문을 열어주지 말라" 고 해 밖에서 두어 번 버스 문을 두드리다 타지 못하는 촌극도 빚어졌습니다.
-국방부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오히려 위압적 자세로 이상한 분위기를 조성했지요.
정보사령부에 대한 감사에서 정보사령관은 오홍근 사건에 대해 "우리 정보 사는 그 사건을 공작의 차원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가 만약 공작적 차원에서 일을 했다면…" 이라고 하자 유학성 위원장이 얼른 나서 딴 얘기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의도적인 동문서답>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오늘만 지나면 끝이다" 하는 일시 모면 식의 태도도 있었는데 대부분 기관장들의 수감 태도는 "시간아 빨리 가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기관장들이 의원들의 질문 내용이 무엇인지 뻔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동문서답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심지어 충북도청 감사 때는 청남대 문제에 대한 답변을 하고있던 군수에게 뒷자리에 앉은 부지사가 "모른다고 해라"라고 하는 소리가 다른 사람들 귀에까지 들리기도 했습니다.
-반면 공무원들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의원들의 터무니없는 자료제출 요구로 가장 난감해 했는데 어떤 의원은 5개 도민 전원의 「주민등록등본사본」을 요구했는가 하면 「80년 이후 장관의 결재서류전부」 「창고 하나 분량의 LNG 저장소 설계도면」을 요구한 의원도 있습니다.
-야당의원들까지 "다른 목적에 쓰려는 것 아니냐" 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는데 국방위의 한의원은 「군납 관련 공무원의 신상명세서」까지 요구했어요.
-여하튼 이번 감사가 16년 만에 하는 것이다 보니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한 기관에 대한 여러 상위의 중복감사인데 경남도는 11개 상위가 차례로 닥쳐 아예 감사에 면역이 된 것 같더군요.
-특히 의원들의 과잉의욕으로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다보니 수박 겉 핥기 식의 감사가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노동 위 지방 감사는 1백8시간 동안 64개 기관에 대해 감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경과위의 경우는 대전 조달청 지청까지 감사하게됐는데 지청장이 서기관급이어서 보충 답변을 할 때는 주사까지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번 감사가 16년 만에 처음 하는 감사가 되다보니 의욕이 넘치기도 하고 수준 미달도 적잖았어요. 그러나 의원들이나 행정부 모두 이번이 선례가 된다고 보고 서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입디다. 앞으로 남은 기간 모자라는 점을 보완해 좋은 선례를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정리=이연홍·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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