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보며 "어머니 나왔다" 울 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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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7인의 탈주 범은 경·검·군의 떠들썩한 대추격전을 비웃기라도 하듯 9일 서울 안암동서 여유 있게 하루를 머물고 사라 진지 하루만에 또다시 서울 행당동 가정집에 침입, 목욕까지 해 가며 25시간을 머물다 유유히 행방을 감췄다.
탈주 범 주법 지강헌 등 7명이 숨었던 박진수씨(54)의 집은 성동 경찰서에서 한양대 쪽으로 도로에서 50여m쯤 떨어진 주택가로, 범인들이 달아난 뒤 가족들은 공포에 떨며 자신들이 인질로 잡혀 있던 악몽의 비시간을 얘기했다.
◇침입=범인들이 처음 나타난 것은 11일 새벽 5시, 박씨의 부인 김정숙씨(48·화장품외판원)가 아들 성일 군의 새벽밥을 짓기 위해 일어나 환기를 위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범인들은 김씨가 문을 여는 순간과 거의 동시에 도착한 듯 망설임 없이 권총을 든 지강헌이 총구를 겨누고 앞장선 채 김씨를 떼밀며 집안으로 들어가 낮은 목소리로『가족 모두를 깨 우라』고 위협한 뒤 마루에서 자고 있던 주인 박씨와 건넌방에서 잠자던 딸 석영 양 등 가족을 안방으로 모두 몰아넣었다.
범인들은 장 농을 뒤져 넥타이로 가족들의 손발을 모두 묶은 뒤『돈이 있느냐』고 물어 김씨가『4만원밖에 가진 게 없다』고 대답하자『놔둬라, 통장이 있으면 보여 달라』고 해 돈이 입금되지 않은 통장을 보여주자 웃으며 집어 던졌다.
◇가족위협=이들은 부인 김씨의 손발을 풀어주며『밥을 듬뿍 지으라』고 말하고 일당 중 1명이 부엌으로 따라나가 감시했으며 교대로 화장실에 들어가 오랫동안 머리를 감고 세수와 면도를 했다.
범인들은 오전 9시쯤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뒤 2∼3명은 안방에서 가족들을 감시하고 나머지는 건넌방에 가 교대로 잠을 잤다.
◇비웃은 추격전=11일 낮 동안 범인들은 안방에 있던 전축을 틀어 음악을 듣기도 했으며 뉴스시간마다 TV를 지켜보며『네 얼굴이 실물보다 잘 나왔다』는 등 농담까지 주고받는 여유를 보였다. 11일 밤 과천에서의 탈주용의 범 4명 출현 보도가 나가자『미친놈들』이라며 비웃었다. 범인 중 강영일은 11일 밤 TV에 자신의 어머니가 나와 자수를 권유하는 방송을 하자『엄마가 나 때문에 고생을 한다』며 감동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씨가 이들에게 자수를 권하자 지강헌은『지금 들어가면 환갑이 넘어서야 나온다』며 자수할 뜻이 없음을 비치기도 했다.
◇신고=박씨 집 가족들은 범인들이 달아난 15분쯤 뒤 우유 배달원 김성규씨가 문을 두들기자 느슨하게 묶인 재갈을 풀고『사람 살려』라고 소리쳐 구출됐으며 배달원 김씨가 30m쯤 떨어진 럭키슈퍼로 달려가 경찰에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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