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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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의 대극장 격인 해오름극장은 공연을 보기에 최적의 장소는 아니다. 객석이 너무 퍼져 있어 웬만해선 집중이 되지 않는다. 지난 7월 뮤지컬 '시카고'가 이곳에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춤과 노래조차 밋밋해지는 이 거대한 극장에 연극을 올린다고 했을 때, 문득 좋은 작품을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요즘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이윤택 작.연출)'은 강력한 무대 위 카리스마로 관객을 빨아들이고 있다. 대형 대들보와 대나무 숲이 인상적인 무대도 그렇지만, 연산에 대한 색다른 해석과 극중 인물의 희비극을 넘나드는 연기 모두 빛났다.

'문제적 인간 연산'은 연산군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어미를 잃고 미쳐가는 기존의 폭군 연산이 아니다. 연산은 탁상공론과 바른말을 구분할 줄 아는 명민한 왕이다. 때론 주위 사람들의 비판에 괴로워하는 심약한 인간이기도 하다.

연산이 어머니를 위해 벌이는 무당굿 장면은 이 연극의 백미다. 대나무밭은 미친듯 흔들거리고, 북 소리는 둥둥둥 귓전을 때린다. 어머니는 장녹수의 입을 빌려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을 꾸짖고, 연산은 급기야 사람들을 처참하게 죽이기 시작한다.

이 연극은 기존의 연극적 형식과 차별된다. 무대 전환이 없고, 암전도 단 한번뿐이다. 6개의 대형 대들보 사이로 배우가 자유롭게 드나들며 장면에서 장면으로 옮겨간다.

무대 한쪽에 자리한 연주단의 동서양 음악을 넘나드는 라이브 연주도 극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탤런트 신구씨가 죽은 성종으로 나와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일부 젊은 관객들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연신 웃어대는 통에 극의 분위기가 깨진 건 아쉬운 대목이다.

이 연극은 남산 이전 30주년, 국립극단 정기 공연 2백회 기념 공연이다. 연출가 이윤택은 8년 전 작품을 꺼내놓으며 "이 덩치 큰 문제적 연극이 국립극단의 레퍼토리로 살아남길 바란다"고 했다. 국립극단의 새로운 출발은 일단 합격점을 받은 것 같다. 21일까지. 02-2274-3507.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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