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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19금 구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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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국민학교 고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동네 병원에 혼자 진찰받으러 갔더니 나이든 남자 의사가 병상에 눕히고는 내 상의를 턱밑까지 추켜올려 청진기를 이리저리 갖다 댔다. 외견상 그 의사는 진료행위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에 몇 날 며칠 잠을 뒤척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 한국에 성희롱이라는 개념이 들어온 다음에야 그 시절 내가 당한 게 성희롱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성희롱 여부를 판단할 때 잣대로 삼는 게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니냐”며 “성적 수치심은 결국 자칭 피해자가 마음대로 휘두르는 고무줄 잣대일 뿐”이라고 문제 삼는 이도 많다. 하지만 당시 경험에 비추어 성적 수치심이야말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나쁜 의도를 간파하는 본능적인 장치라고 믿는다. 중·고교 시절 굳이 팔뚝 안쪽 살을 주무르며 말을 걸어오던 음흉한 남자 선생님에 대한 기억 한 자락이 있는 30~50대 여자라면 이 말이 무슨 얘기인지 다들 알 것이다.

오래전 기억을 다시 떠올린 건 요즘 세상을 시끌시끌하게 만든 구지가(龜旨歌) 때문이다. 58세의 남자 문학교사가 인천의 어느 여고 교실에서 구지가의 성적(性的) 은유를 설명하다 성희롱으로 수업에서 배제됐다는 게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구지가뿐 아니라 처용가 등 성적 수위가 아슬아슬한 고전문학 작품이 많은데 이걸 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싸잡아 문제 삼으면 어떻게 수업을 할 수 있겠느냐는 개탄이 많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도 “학교 측 조치는 일방의 주장만 받아들인 교권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고 인천시교육청에도 감사를 요청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단순히 특정 단어를 언급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나라하게 묘사했기에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반발했다. 또 평소 해당 교사가 문제가 되는 발언을 일삼았다고도 주장했다.

웬만하면 피해자 편을 들고 싶지만 이번만큼은 너무 나갔다 싶다. 학생들 주장대로 달라진 요즘의 성(性)인식에 걸맞지 않게 평소 성차별적인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면 그 발언으로 민원을 제기했어야지 왜 고전문학 수업에 ‘성적 수치심’이라는 잣대를 들이댔을까. 자세한 내막은 인권위나 교육청 조사로 드러나겠지만 ‘성적 수치심’이 그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배제하는 수단으로 비칠까 우려스럽다. 가뜩이나 입증이 어려운 성희롱 피해를 당한 약자를 보호하는 수단이 돼야 하는데 말이다.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