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업 … 어젠 사냥감 이젠 사냥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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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인도 기업들이 최근 외국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일 보도했다. 인도 기업들이 노리는 M&A 대상은 주로 중소 규모의 알짜 기업들. 분야는 소프트웨어.자동차 부품.의약품 등 다양하다.

◆해외기업 사냥꾼으로 부상=영국의 시장조사기관인 딜로직 홀딩스에 따르면 올 들어 인도 기업들은 47개의 외국기업을 인수합병했다. 금액으로는 22억 달러(약 2조원)에 달한다. 딜로직 홀딩스는 인도의 올 M&A 실적이 지난해의 37억 달러(134건)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 외국기업들의 사냥감이었던 인도 기업들이 외국 기업 사냥꾼으로 변신한데는 우선 풍부해 진 자금력이 바탕이 됐다. 정보기술(IT)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국내 자본이 축적됐고 여기에 인도 경제를 낙관한 외국 자본이 대거 몰렸다. 인도 뭄바이 증시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1월 3000억 달러를 돌파한 이후 지난달에 5900억 달러로 급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렇게 자본이 든든해진 인도 기업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외국 기업 인수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맥킨지 인도 법인의 관계자는 "인도 기업들이 인수하는 외국 기업들의 덩치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외국기업 인수가)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파 기업인들이 주도=인도 최대의 제약회사인 랜박시는 최근 이탈리아.벨기에.루마니아의 제약업체들을 잇따라 인수했다. 랜박시의 최고경영자(CEO)인 말더빈 모한 싱(33)은 미국 듀크대에서 경영학석사(MBA)을 받았다.

이처럼 현재 인도 기업의 해외 M&A를 주도하고 있는 기업인들은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한 해외 유학파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세계의 유명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덕에 다국적 기업에 대해 정통하다. 또 주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등 글로벌 경영인으로서 소양을 갖추고 있다.

이에 대해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는 최근 아시아 소사이어티에 참석해 "봄베이클럽의 시대는 이미 갔다"고 말했다. 봄베이클럽은 과거 정치권에 대한 로비 등을 통해 기업을 성장시킨 구세대 기업인들을 말한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단기간에 급성장을 해온 인도 경제가 자칫 버블의 함정에 빠질 수 있으며, 자본유출 등을 우려한 인도 정부의 시선도 해외파 기업인들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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