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과 북ㆍ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면서 한반도와 주변 국제질서의 판이 흔들리고 있다. 아직 판 자체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한반도 냉전의 해빙 조짐이 보인다. 그러면서 65년 동안 북한만 바라봤던 국방부와 군 당국은 새로운 안보 환경에 맞는 변화를 요구받게 됐다.
남북 정상이 4ㆍ27 판문점 선언에서 ‘모든 공간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단’하고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하기로’ 약속하면서 군의 전력증강 사업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직후 “240여 개의 주요 무기 도입사업을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소문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야심 차게 준비한 국방개혁 2.0의 발표가 이달 27일께로 미뤄지면서 이런 우려는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래서 국방부, 합참, 각 군의 당국자를 만나 군의 전력증강 사업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물어봤다.
①철매-II PIP 사업은 중단되나 … (△)
‘철매-II’는 신형 지대공 미사일 도입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개발된 미사일이 천궁이다.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의 영문 약자인 ‘M-SAM’이라고 부른다. ‘철매-II PIP’은 천궁의 성능개량 사업이다. 항공기를 요격하는 천궁에 탄도미사일 요격 기능을 더하는 것이다.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의 핵심 무기체계인 천궁은 올해부터 10개 미만의 포대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복병을 만났다. 지난 5월 23일 방위사업 추진위원회에서 송 장관이 천궁 성능개량형 양산사업에 대해 “계획대로 생산하는 게 타당하냐”며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그러면서 생산량을 줄이기로 결론이 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5월 천궁 예산 요구안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는데, 그 내용을 보니 올해 1700억원, 내년 1400억원으로 당초 계획 그대였다.
송 장관은 지난 12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생산량 축소는 아니다”라며 “전반기와 후반기로 분리해서 가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2년(전반기)까지 (양산 물량의 절반이) 우선 가고, (후반기에는) 새로운 것(무기체계)이 나오면 옮겨 탈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무기체계가 개발되면 후반기 양산 물량은 취소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송 장관이 말한 ‘새로운 것’은 미국산 요격 미사일인 SM-3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방부는 지난해 SM-3 도입의 필요성을 검토했다. SM-3는 이지스 구축함에서 발사한다. 송 장관은 해군참모총장 시절 이지스 구축함을 도입했다.
하지만 복수의 군 소식통은 ‘새로운 것’은 SM-3가 아니라 L-SAM이라고 확인했다. L-SAM은 내년부터 본격 개발에 들어가는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이다. 천궁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 적의 탄도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는 무기체계다. ‘한국형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ㆍTHAAD)’라고도 불린다.
한 소식통은 “L-SAM은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개발 중인데, 개발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고 말했다. 지난달 14~15일 한국군사과학기술학회 창립 20주년 종합학술대회에서 L-SAM의 발사관으로 보이는 형상과 L-SAM 레이더 모형이 공개됐다.
또 다른 소식통은 “천궁은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만 막을 수 있는데, L-SAM은 주변국의 탄도미사일까지 요격할 수 있다”며 “후반기 양산 물량을 생산할 때면 북한의 위협이 작아지는 대신 주변국의 위협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럴 때를 대비하자는 게 장관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상황에 따라 계획이 바뀔 수 있다. 생산량 축소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방산업계는 국방부의 ‘고무줄 양산계획’에 아주 난감해한다는 후문이다.
②3축 체계 구축 사업 어그러지나 … (X)
송 장관의 천궁 성능개량형 재검토 발언을 계기로 3축 체계 구축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군 안팎에서 들린다. 3축 체계는 킬체인(Kill Chainㆍ전쟁이 임박할 때 북한의 미사일ㆍ방사포를 선제공격),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대량응징보복(KMPRㆍ북한의 지휘부를 타격)을 말한다. 북한의 핵ㆍ미사일에 맞서기 위해 2020년대까지 47개 무기체계(57개 사업)에 57조4795억원을 투입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그런데 북한이 앞으로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면 57조원이 넘는 3축 체계 사업비는 매몰 비용(이미 지출하여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이 된다.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방위사업청은 ‘2019년 방위력 개선분야 예산요구안 현황’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하면서 ‘3축 체계’라는 표현은 일절 쓰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당국자는 3축 체계의 축소는 기우(杞憂)라는 입장이다. 정부 소식통은 “3축 체계 관련 예산은 지난해보다 두 자릿수의 증가율로 편성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주요 무기 사업들은 3축 체계 관련 예산으로 추진된다”며 “3축 체계 관련 예산을 줄이면 이런 사업들을 모두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3축 체계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조기 전환을 위해 오히려 더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장관은 지난달 28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에게 “늦어도 2022년까지 전작권을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변수는 있다. 예산이 잡히지 않은 검토 단계의 무기체계 사업은 폐기 또는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참수부대가 쓸 특수작전용 침투헬기 예산은 대폭 깎였다.
③국방예산 줄어드나 … (X)
남북관계가 평화 국면으로 들어 들면 가장 먼저 줄일 수 있는 예산으로 국방예산이 꼽힌다. 그래서 2019년도 예산안에서 국방비가 대폭 깎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기재부에 46조8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국방예산 요구안을 제출했다. 올해(43조1581억원)보다 8.4% 오른 액수다. 물론 이 예산요구안은 기재부와 국회에서 조정된다.
정부 소식통은 “기재부는 ‘6% 이상은 어렵다’고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여러 번 강조했기 때문에 국회에 제출할 국방예산안은 올해보다 최소 7%대 후반 증액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11일 국방개혁 토론회에서 “남북관계가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불특정하고 다양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선 국방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시 일부 참석자들이 “남북한 간 긴장이 완화됐기 때문에 국방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국방비를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올해 국방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2.38% 수준인데, 앞으로 현 정부 내 이 비중을 3%로 높일 것”이라며 “‘GDP 대비 3% 국방비’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비공개로 열린 국방개혁 2.0 토론회에서도 ‘군비 증강’ 추세는 다시 확인됐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남북 상황은 변화를 알 수 없다. 국방부가 너무 앞서가지 말라”며 “국방 개혁이 무조건 예산을 깎는 것이 아니다. 발전적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정부 소식통은 “북한의 위협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주변국의 위협에 맞설 필요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장거리 미사일인 현무의 보유 숫자를 대폭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내년도 국방 예산 요구안 중 방위력 개선사업비는 15조4082억원이다. 올해(13조5203억원)보다 14% 늘었다. 방위력 개선사업비는 전력증강에만 투입되는 예산이다. 내년도 전체 국방 예산안 가운데 32%가량이다. 국방부는 이 비율을 34%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철재,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