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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누드펜션 운영 나체주의 동호회장 무죄…法 "숙박업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8월 한 방송 프로그램에 방영된 충북 제천의 누드 펜션. [MBC '리얼스토리 눈' 방영분 캡쳐]

지난해 8월 한 방송 프로그램에 방영된 충북 제천의 누드 펜션. [MBC '리얼스토리 눈' 방영분 캡쳐]

여러 남녀가 알몸으로 배드민턴·물놀이·일광욕식사 등 생활을 하는 '누드펜션'을 운영했더라도 영리 목적으로 영업한 것이 아니라면 형사처벌을 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충북 제천에서 '누드펜션'을 운영해 온 김모(51)씨는 '자연주의' '나체주의'를 추구하는 동호회 회장이다. 아내 소유의 2층짜리 펜션에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3차례 정도 동호회 회원들과 정기·비정기 모임을 가졌다. 펜션 안에서 뿐 아니라 펜션 앞마당에서도 알몸으로 바베큐 파티·배드민턴·일광욕·캠프파이어 등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폐쇄된 '자연주의 펜션' 블로그에 올라왔던 사진. [사진 블로그]

지금은 폐쇄된 '자연주의 펜션' 블로그에 올라왔던 사진. [사진 블로그]

마을 주민들은 "농촌 정서에 맞지 않다"며 이들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걸고, 진입로를 막고 시위하는 등 격렬하게 반발해 왔다. 하지만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김씨의 사유지 내에서 한 활동이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김씨에게 공연음란죄를 적용해보려고 했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성적수치심을 유발하는 음란한 행위'라 보기 어려웠다. 펜션은 마을 주민들이 사는 곳과는 100m 이상 떨어진 산 중턱에 있었다. 일부러 산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 아래에서 보이진 않는다.

마을 주민들이 누드 펜션 운영에 강하게 반발했다. 트렉터로 오르는 길을 막거나(위 사진) 길에 항의의 문구를 써놓기도 했다(아래 사진). 지금은 펜션 운영을 더이상 하지 않고, 펜션 주인은 건물을 팔아 처분했다.[중앙포토]

마을 주민들이 누드 펜션 운영에 강하게 반발했다. 트렉터로 오르는 길을 막거나(위 사진) 길에 항의의 문구를 써놓기도 했다(아래 사진). 지금은 펜션 운영을 더이상 하지 않고, 펜션 주인은 건물을 팔아 처분했다.[중앙포토]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가 "동호회 회원이 되는 데 특별한 장벽이 없고 회비만 내면 시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누드펜션은 미신고 숙박업소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으며 상황이 달라졌다. 김씨는 회원들로부터 가입비 10만원과 연회비 24만원 등을 걷었고, 펜션에서 모임을 가질 때 침구·취사시설·생필품 등을 제공했다.

제천시는 이같은 해석을 토대로 김씨의 펜션에 대해 폐쇄명령을 내렸다. 김씨는 더이상의 펜션 영업을 중단하고 건물을 매각해 처분했다.

하지만 재판이 남았다. 김씨는 '신고 없이 숙박업소를 운영한 혐의(공중위생관리법 위반)'와 '숙박업소를 운영하며 음란행위를 알선·제공한 혐의(풍속영업규제법 위반)'로 기소됐다.

문 닫은 '누드펜션' 그 후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선 김씨는 "영리 목적으로 영업한 것이 아니다"면서 "설령 숙박업이라 하더라도 이는 음란행위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한 일이 '숙박업'인가는 재판의 중요한 쟁점이었다. 숙박업이 아니라면 애초에 공중위생관리법과 풍속영업규제법의 적용대상이 될 수가 없다.

지난달 21일, 법원은 "숙박업이 아니다"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청주지방법원 제천지원 형사2단독 하성우 판사는 "김씨가 경제적 이익을 취득할 목적, 즉 영리 목적으로 숙박업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공중위생관리법·풍속영업규제법 대상자가 아니라 죄가 될 수 없는 것이어서 펜션에서 한 일들이 음란행위인지 여부는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하 판사는 회비 계좌 내역 등을 토대로 회비가 김씨의 경제적 이익으로 귀속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김씨가 회비로 들어온 돈 일부를 자신의 개인 계좌로 옮긴 내역이 있긴 했지만 회비 잔고가 부족할 경우 김씨가 개인 자금으로 우선 쓰고 나중에 돌려받는 식이었다. 회비는 홈페이지 관리, 펜션 유지·보수, 파라솔과 생필품 구입, 청소기 구입 등에 쓰였다. 하 판사는 "연회비 납부와 피고인의 펜션에서의 숙박 허락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김씨가 경제적인 이익을 취득하였거나 취득하고자 하였던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봤다.

검찰은 이같은 판단에 불복해 지난달 27일 항소했다. 김씨의 무죄는 확정되지 않았고 청주지법에서 2심이 진행된다.

자연주의 펜션 블로그. 지금은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사진 블로그]

자연주의 펜션 블로그. 지금은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사진 블로그]

김씨가 만든 나체주의 동호회는 연간 회원이 20~40명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펜션에서 모임을 갖는 모습이 방영되기도 했다. 김씨는 당시 "과감하게 옷을 벗어던지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자연주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체주의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미국·프랑스 등에서는 누드 비치·누드 클럽 등이 성행하고 있다.

'나체주의'란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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