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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교육부의 전교조 연가투쟁 방침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월 법외노조 결정 철회를 촉구하며 삭발하고 있는 전교조. [연합뉴스]

지난 6월 법외노조 결정 철회를 촉구하며 삭발하고 있는 전교조. [연합뉴스]

6일 열리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연가투쟁’에 대해 교육부가 사실상 묵인하기로 한 것에 대해 전교조 스스로도 “교육부와 충돌 지점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가투쟁은 평일에 교사가 연가를 내고 파업·집회 등에 참여하는 것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래 박근혜 정부까지는 강력히 규제해 왔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뒤 연가투쟁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이 달라지면서 ‘원칙이 변한 것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교조는 4일 교육부가 전날 전국 학교에 보낸 공문과 관련해 “교육부의 공문 내용이 조퇴‧연가투쟁 참석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이상, 교육부와 전교조의 입장에는 충돌 지점이 없다고 본다”고 논평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연가를 내거나 조퇴를 하는 등의 방식으로 집회에 참여하는 전교조 교사는 2000명(주최 측 추산)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2일 전교조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법외노조 철회’ 결정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교사의 노조 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전국의 조합원들이 6일 연가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연가투쟁으로 학교현장에 불편함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법외노조 적폐를 1년 2개월째 계승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용어사전연가투쟁

집단적으로 연가(年暇·연차휴가)를 사용하고 집회에 참여 투쟁한다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교사 등 공무원은 연가를 사용하기 위해 기관장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전교조 교사들이 연가투쟁으로 집단 휴가를 낼 경우, 수업 결손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교육부가 취한 조치는 지난 3일 각 시·도교육청을 통해 전국 학교에 한 장짜리 공문을 보낸 것이 전부다. 공문에는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를 위하여 관계 법령에 따라 각 시·도교육청 및 각급 학교에 교원의 복무관리를 철저히 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적혀 있다.

 여기엔 연가를 내고 집회에 참여하는 교사에 대한 징계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업을 빼먹고 집회에 참여하는 등 교사의 복무 문제는 학교장의 권한”이라며 “이런 원론적 입장을 공문을 통해 재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전 정권에선 전교조가 연가투쟁을 예고할 때마다 강력한 제재 입장을 보여 왔다. 서울의 한 사립고 교장은 “이전 정부까지는 교육부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볼모로 연가투쟁을 벌이는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한했다”며 “지금처럼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 하는 것은 사실상 모든 책임을 학교장에게 떠넘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교조는 '법외노조 취소'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여왔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교조는 '법외노조 취소'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여왔다. [연합뉴스]

 이처럼 교육부가 연가투쟁에 대한 입장을 바꾼 이유는 뭘까. 최성유 교육부 교육협력과장은 “(징계 입장 등을) 세세히 밝히지 않은 것은 교사 복무에 대한 권한은 교육감과 학교장에게 있어 교육부가 밝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그 대신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법령에 따라주길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가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 집회 성격의 변화를 예로 들었다. 최 과장은 “‘법외노조 철회’는 전교조 입장에선 충분히 주장할만한 내용이고 집회 성격이 정권 퇴진 운동 등과 같은 정치적 편향성을 띤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전 연가투쟁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수업을 빼먹고 연가투쟁에 참여한 교사가 발생할 경우에 대해서는 “추후에 검토해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는 과거 정부가 전교조 교사들이 집회 참여 목적으로 연가를 내거나 조퇴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강력 대응해온 것과 대조된다. 2015년 11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집회 때 교육부는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집회 참가 등 목적으로 조퇴·연가 신청할 경우 이를 불허하고, 허락한 교장에겐 책임을 묻겠다는 강도 높은 지침을 내렸다.

같은 해 3월에도 전교조가 ‘공무원 연금개혁’ 관련 연가투쟁을 예고하자 위와 비슷한 내용의 공문을 보내 강경 입장을 밝혔다. 특히 소속 교원들이 연가투쟁에 참여함으로써 국가공무원법 제66조 1항에서 금지하는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에 해당해 사법조치 받지 않도록 복무 관리에 신경 써 달라는 내용도 명시했다. 한 달 뒤에는 징계를 위해 집회 참가 교사들의 명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연가투쟁 교사에 대한 징계 문제가 소송전으로 빚어진 경우도 있다. 2006년 11월 전교조는 성과상여금제도 시행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고 연가투쟁 참여 교사를 징계했다. 이에 불복한 전교조 교사가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8년 법원은 “연가투쟁 집회는 법적으로 허용되는 정당한 단결권의 행사를 벗어난 행위이고, 수업권 침해를 막기 위한 교육부의 연가신청 불허 지시는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정부 정책과 법률 적용은 일관성 있게 지켜져야 한다”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원칙이 달라지면 누가 정부를 믿고 지지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연가투쟁은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교육적 측면에서도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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