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돈 수렁'에 빠진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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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이라크가 미국에는 '밑 빠진 독'이다. 베트남식 게릴라전과 팔레스타인의 테러 상황을 합친 듯한 혼란 때문에 미군 주둔의 장기화는 불가피해졌다.

여기에 전기.수도.석유 복구 등 이라크 재건 비용으로 수십억달러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4천8백억달러를 넘어서는 사상 초유의 재정적자를 맞게 됐다.

◇매달 사라지는 50억달러=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매달 미군 주둔 및 이라크 과도정부 운영 비용 등으로 지출되는 액수는 50억달러(약 5조8천여억원)에 이른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밝힌 월 39억달러의 주둔 비용에 이라크 과도정부 운영비와 공무원 월급, 석유시설 유지비 등 11억달러를 합친 것이다.

USA투데이는 "50억달러는 베트남전 당시의 한달 전비에 육박하는 액수"라고 전했다.

베트남전 8년 기간에 미국은 현재 가치로 4천9백40억달러(당시 1천1백억달러)를 썼는데 이를 월별로 나누면 51.5억달러로 지금의 이라크 주둔.유지 비용과 같다는 의미다.

미 의회예산국은 이달 초 작성한 보고서에서 현재 14만여명인 이라크 주둔 미군을 6만7천~10만여명으로 줄여도 향후 1년간 1백40억달러에서 1백90억달러까지의 추가 주둔 비용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끝이 안 보이는 재건 비용=폴 브레머 이라크 최고행정관은 파괴된 전기와 수도시설을 복구하는 데 향후 4년간 매년 각각 20억.40억달러가 든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병원.정부 시설 복구비와 이라크 과도정부 공무원들의 월급으로 내년에 각각 10억.24억달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미국은 이라크 석유시설 복구비용으로 이미 7억달러를 썼지만 필립 캐롤 이라크 석유부 자문관은 "비용이 더 든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원이 안 보인다=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이라크전 직전 의회에서 "종전 이후 2~3년간 이라크 석유 수입은 5백억달러에서 1천억달러가 될 것"이라며 재건 비용을 자신했다.

그러나 이라크 저항세력이 송유관 등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에 내년에도 석유 수입은 1백40억달러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분석했다.

이라크전이 유엔의 결의 없이 미국 주도로 이뤄진 것도 전후 재건에 나선 미국을 발목잡는 요인이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걸프전 때에는 미국이 치른 전비 6백10억달러의 90%를 사우디아라비아.독일.일본 등이 부담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라크전을 놓고 미국과 극심한 대립을 보였던 유럽의 부국들이 미국의 설득에 응해 전비 분담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 때문에 지난 4월 이라크전 전비로 6백26억달러를 의회에서 승인받은 데 이어 지난 9일엔 추가 전비.재건비용 등으로 8백70억달러를 요청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 등으로 4천8백억달러라는 미국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가 예고된 상황에서 추가로 불거진 전비 문제는 부시 행정부를 압박하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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