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해지역 선포만이 능사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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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태풍 매미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모든 관심이 특별재해지역 선포 여부에만 집중되는 현실은 답답하다. 내년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모든 피해지역을 선포대상으로 하자고 주장하는 판이다.

그래서 행정자치부 훈령을 개정하는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재해지역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은 긴요하지만 선거를 의식해 경중을 불문하는 처방은 피해야 한다.

지난해 태풍 루사가 휩쓸고 간 이후 정부는 대선을 의식해 자연재해대책법을 개정,'특별재해지역'제도를 신설해 전국 2백3개 피해 시.군.구 전부를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했다. 투입된 복구 지원 예산은 7조5천억원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강원도 일부 지역은 올해 또다시 태풍 매미가 훑고 가 큰 피해를 보았다. 재해 유발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은 채 복구의 시늉만 냈거나, 보상협의 지연으로 복구공사가 늦어져 발생한 '인재(人災)'다. 결국 특별재해지역 선포 자체는 만병통치약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제는 피해 규모에 대한 정확한 실사를 바탕으로 이재민에 대한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지고 항구적인 복구가 가능하도록 재난관리 시스템을 전면 재구축해야 할 때다.

지구 온난화로 재난의 규모가 대형화하고 있어 이런 필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차제에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는 각종 재해대책기구를 통합해 재난관리체계를 일원화하는 방안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정부와 국민은 이번과 같은 재난이 불가항력적으로 되풀이되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사전 대비를 통해 얼마든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인재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평소에 주민들의 훈련이 잘 돼 있고, 자치단체가 적절하게 대비한 제주도에서는 이번에 인명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민들 스스로가 재난관리에 힘쓰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연재해보험을 도입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미 미국에 이 제도가 있고 일본에서도 이와 유사한 공제제도가 있다. 요란한 재해 복구 지원보다는 종합적인 재난관리 인프라 구축이 긴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