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북제재 해제보다 비핵화 실천이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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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6·12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보름이 넘었지만 비핵화 프로세스가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에 이어 미군 유해 송환 절차에 들어간 건 의미가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비핵화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 이런 마당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0일 3차 방중 당시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대북제재의 조기 해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화의 진전에 맞춰 미국이 단계적 보상을 해야 한다”며 이같이 요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논리일 뿐이다. 한·미는 북·미 정상회담 직후 자진해서 연합군사훈련을 보류하는 성의를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핵무기·미사일 반출과 핵시설 사찰 논의 개시 등 본질적인 숙제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정작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군이 비무장지대 10㎞ 이내 전방부대의 막사 신축을 전면 보류한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최전방 부대가 후방에 배치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매몰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군의 전력이 불변인데 우리 군만 일방적으로 힘을 빼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다시 오기 힘든 한반도 평화의 기회는 반드시 살려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 동결이 선언 수준에 그친 상황에서 협상의 핵심 무기인 제재의 고삐를 푸는 건 성급하다. 정부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만이 제재 해제의 열쇠임을 북한에 분명히 깨우쳐줘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도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두 번이나 약속한 결과 한·미 연합훈련이 보류되는 성과를 올렸지 않았는가. 이제는 김 위원장 차례다. 비핵화 조치를 실천해 상호 신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제재 해제의 길이 자연스레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