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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안 겪은 아재 없고 아재 안 되는 청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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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일 개봉하는 랩 음악영화 '변산'으로 돌아온 이준익(59) 감독.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7월 4일 개봉하는 랩 음악영화 '변산'으로 돌아온 이준익(59) 감독.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목이 ‘변산’이라 다 사극인줄 알아. 근데 주인공이 래퍼? 예측이 안 되지!”
이준익(59) 감독의 말대로다. 그의 신작 ‘변산’(7월 4일 개봉)은 제목이 풍기는 인상과 달리 ‘라디오스타’(2006)의 로큰롤, ‘즐거운 인생’(2007)의 밴드음악에 이어 힙합에 도전한 음악영화. 홍대 거리의 서른두 살 무명 래퍼 학수(박정민 분)가 고향으로 돌아가 겪는 성장담에 요즘 유행하는 랩을 버무렸다.

변두리 청춘의 랩 성장영화 #'변산' 이준익 감독 인터뷰

"록은 심장박동, 랩은 더 가쁜 실핏줄의 맥박"

TV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6수째 탈락한 학수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아버지(장항선 분)가 위독하단 소식에 전북 부안군의 고향마을 변산으로 향한다. 학창시절 짝사랑의 ‘흑역사’, 아버지에 대한 원망 등 학수의 온갖 감정이 혼잣말처럼 읊조리는 랩에 담긴다. 시골풍광에 랩을 뮤직비디오처럼 녹여낸 청춘영화라니 환갑 앞둔 감독으로선 과감한 시도다. 이준익 감독은 “전작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가느냐가 감독이 가야 할 지향점”이라고 했다.

영화 '변산' 한 장면. '동주'(2016)를 함께한 배우 박정민이 이번엔 무명 래퍼 역할로 주연을 맡았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변산' 한 장면. '동주'(2016)를 함께한 배우 박정민이 이번엔 무명 래퍼 역할로 주연을 맡았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4년여 전 한번 거절했던 시나리오라고.  
“시나리오가 너무 올드했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내가 ‘사도’(2015)에서 찐하게 했는데 또 해? 그런데 주위에서 좋은 얘기라고 재차 권하기에 일단 각색을 하게 됐다. 애초 학수가 단역배우였는데 ‘럭키’(2016)랑 겹치더라. 변두리 중의 변두리 변산(지명에 변두리 변(邊)자를 쓴다)과 대비를 이루는 게 뭘까. 지금 젊은이들의 가장 핫한 무대 ‘쇼미더머니’, 힙합 아닐까. 그러면서 래퍼로 바꿨다.”
-랩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어려선 팝송 매니아였다. 그때 록이었다면, 지금은 랩인 거지.”
-랩을 통해 록 세대와 다른 지금의 젊은이들을 이해한 면도 있을까.  
“노벨문학상 받은 밥 딜런도 그렇고 예전에 록은 거의 사회파 가사였다. 요즘 랩은 개인화된 외침이다. 우리네 청춘들이 랩을 좋아하는 건 미국 힙합 흉내가 아니라 이 땅의, 자기의 삶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장이어서다. 록이 때론 정박, 때론 엇박으로 심장박동을 좇는다면 랩은 좀 더 가쁜, 실핏줄의 맥박처럼 뛴다.”

그는 “따지고 보면 ‘왕의 남자’(2005)에서 광대 장생(감우성 분)이 줄 위에서 뱉어내는 프리스타일 사설이 조선판 랩”이라며 “조선광대의 소리가 수백 년간 우리 삶에 공유돼오다가 미국에서 온 랩과 만났다”고 했다.

"박정민은 쇳덩이처럼 단단한 배우"

극중 학수의 랩은 래퍼이자 프로듀서 ‘얀키’가 작업했다. 가사는 ‘동주’(2016)의 독립운동가 송몽규 역에 이어 이준익 감독과 다시 뭉친 배우 박정민이 직접 썼다.

'변산'엔 도끼, 더콰이엇 등 실제 래퍼도 출연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변산'엔 도끼, 더콰이엇 등 실제 래퍼도 출연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동주’로 발굴한 박정민을 노래방에서 재발견했다고.
“노래는 못하는데 랩을 겁나 잘해. ‘동주’ 송몽규 역 할 때 봤던 잠재력도 어마어마했다. 쇳덩이 같이 단단한 배우다. 정민이 없었으면 이 영화 엎어야 했을 거다. 오죽하면 투자사 여러 군데서 퇴짜 맞으면서도 박정민을 고집했다.”
-랩을 걷어내면 기성세대의 충고처럼 느껴지는 대사도 많다. ‘난 아재다. 그 동안 아재스러움이 미움받기도 했지만 그걸 귀엽게 전환할 시기’라고 연출의도를 설명했는데.
“난 연대를 소중히 한다. 세대 차이를 강조하기보다 접점을 넓혀가는 게 공동체의 선이라 본다. 청춘을 겪지 않은 아재 없고 아재가 되지 않는 청춘 없잖나. 청춘이 아재를 설득하는 것보다 아재가 청춘을 이해하는 게 더 빠르다. 청춘을 거쳐봤으니까. 사실 ‘변산’은 아재들이 더 좋아할 영화다. 그런데 주인공은 학수니까 학수의 시선으로 자기 세대인 아버지를 바라보게 된다. 이 아버지가 얼마나 지질해.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로, 입장을 바꿔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 적어도 다른 사람 때문에 내 인생을 일그러뜨리지 않을 균형 감각이 생긴다.”
-어찌 보면 젊은 세대의 얘길 듣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했던 기성세대의 태도를 바꾸려는, 자기반성적인 영화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춘영화 3부작은 마케팅 효율을 위한 프레임일 뿐이다. 사실 청춘이란 틀을 짜는 것도 굉장히 폭력적일 수 있다. 아재는 왜 아재에 가두나. 그걸 열어놓고 서로 잘 ‘들어야’ 이해의 폭도 커진다.”
-잘 들으면 뭐가 달라지나.  
“실제 감독으로서 지금 내 에너지, 크리에이티브는 다 들어서 얻은 거다. 한번 사는 인생 바뀌는 것도 아니고, 영화를 열네 편 찍었는데 타고난 재능은 바닥나도 옛날에 났다.”

이준익 감독의 청춘 3부작은?

학수의 순수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친구 선미(김고은 분)와 그런 선미가 그저 떨떠름한 학수.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학수의 순수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친구 선미(김고은 분)와 그런 선미가 그저 떨떠름한 학수.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는 욕먹어도 자유분방해야"

-외면해온 스스로를 마주하게 만드는 영화다.
“자신의 과거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난 아직도 도망가는 중이다. 돌아보면 여전히 불편하고 해결하지 못한 게 너무 많다. 그걸 현실에서 해결하기엔 난 너무 비겁해. 용기가 없어. 그래서 영화 속 판타지로 유사감정을 해결하는 거다. 영화가 나한텐 피안이다.”
-사극에 뮤지컬을 접목한 ‘황산벌’(2003) ‘평양성’(2011) 등 독특한 시도를 계속해오고 있는데.  
“항상 영화가 좀 자유분방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있다. 근데 너무 자유분방하면 망한다. 그렇다고 옳고 그른 문제는 아니다. 인도영화는 뜬금없이 춤추고 노래하는데 12억 명이 좋아하잖나. 안전하게 아무것도 안 하면 욕도 안 듣겠지. 그래도 끊임없이 시도해야 새로운 문이 열린다. 그게 창작자의 의무다.”
-영화를 계속해서 만드는 동력이라면.
“난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다. 그리고 영화현장에 친구가 많다. ‘변산’의 박정민, 김고은, 수많은 스태프가 다 친구다. 나이 차이 나봤자 100살이다. 영화 속에선 1000년도 오간다. 1300년 전 황산벌에서 활약한 김유신, 김춘추 다 내 친구다. 시나리오를 쓸 땐 그 시대에서 나한테 말을 거니까.”

‘변산’의 손익분기점은 200만명 남짓. 최대한 도전하고 적게 망하는 게 목표라고 그는 귀띔했다. 준비 중인 차기작도 SF부터 시대극까지 각양각색이다. 어려선 경북 경주 한학자인 할아버지를 따라 새벽같이 일어나 붓글씨를 쓰다가도 팝송을 외곤 했다는 그다.

-예측불허의 매력이 있다. 
“두서없는 인간이다, 내가. 평생 임기응변으로 살았다. 정체될 곳이 없으니 정체되지 않은 거지. 그래서 자꾸 이상한 영화를 하고. ‘동주’하고 이 영화하고 누가 같은 감독이라 하겠나(웃음).”

영화 '변산' 크랭크업 현장에서 이준익 감독과 주연배우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변산' 크랭크업 현장에서 이준익 감독과 주연배우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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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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