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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철도 파업 제압 … 국민들 “개혁 실험 계속하라” 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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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이 27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 궁에서 철도 개혁안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은 엘리자베스 본 교통 장관, 오른쪽은 벤자맹 그리보 정부 대변인. [AFP=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가운데)이 27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 궁에서 철도 개혁안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은 엘리자베스 본 교통 장관, 오른쪽은 벤자맹 그리보 정부 대변인. [AFP=연합뉴스]

프랑스 최대 노동단체인 민주노동총연맹(CFDT) 등 국영철도(SNCF) 소속 주요 노동조합이 4월 초부터 일주일에 이틀씩 벌여온 파업을 27일(현지시간) 마감했다. 파업을 시작할 당시 철도 노동자의 33.9%가 참여했지만 이날은 8.4%로 줄어들었다.

2020년 채용부터 종신고용 폐지 #철도 개편안 의회서 압도적 찬성 #카풀앱 사용 늘며 여론 등돌려 #좌파 노조 두 곳 빼고 파업 종료

철도 노조 중 좌파 성향이 강한 노동총연맹(CGT) 등 두 개 노조는 파업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파업 동력은 거의 사라졌다. 이미 지난 14일까지 SNCF 개편안이 상·하 양원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의결됐다. 이에 따라 2020년 이후 뽑는 신입사원부터 종신고용 혜택이 없어진다. SNCF 직원들이 다른 직종 근로자보다 10년이나 빠른 52세에 조기 퇴직해도 연금을 받아왔던 혜택도 폐지된다. 직원 가족에게 제공되던 무료승차권도 사라진다.

하루 평균 450만 명이 이용하는 프랑스 철도는 물류와 산업의 중추다. 그만큼 철도 노조의 힘은 막강했다. 역대 정부가 개혁하려 할 때마다 강경 파업으로 맞서 좌절시켜왔다. 1995년 자크 시라크 정부와 2010년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도 노조의 파업에 두 손을 들었다.

난공불락 같던 철도 노조가 꺾인 데에는 우선 마크롱 대통령의 일관된 의지가 작용했다. 취임 초기부터 SNCF 개혁을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파업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AFP 통신은 “마크롱 대통령이 노조 반발을 뚫고 SNCF 개혁을 성사시킨 것은 1984년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광부 노조와의 최후 대결에서 승리한 것에 비견할 만하다”고 보도했다.

마크롱 정부는 SNCF의 부채 470억 유로(약 60조원) 중 350억 유로를 정부가 떠안는 방식으로 중도 성향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는 유연성을 보였다. 강성 좌파 노조와 분리하는 전략을 쓴 것이다. 여당이 의회의 안정적인 다수파여서 개혁을 뒷받침한 것도 성공 요인이다.

철도노조의 극렬 파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마크롱은 취임 이후 유권자들의 불만을 사왔다.

취임 1년만에 “마크롱의 정책은 주로 부유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응답이 74%까지 치솟았다. 나폴레옹을 연상시키는 그의 통치 스타일에 55%가 지지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내놨다.

그럼에도 철도 개혁을 지지하는 여론은 파업 초기 51%에서 최근 65%까지 상승했다. 정치컨설턴트 스테판 로제는 “유럽 다른 나라들이 개혁할 때 프랑스는 노조 등의 저항에 막혀 왔다”며 “프랑스 사람들은 마크롱이 실험을 계속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 못한 요인이 있다. 바로 ‘디지털화’다. 정보기술(IT) 혁명이 생활 곳곳에서 진행되면서 열차는 이제 더 이상 프랑스 국민들의 필수 교통수단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프랑스 국민은 통근 차량 함께 타기 앱 등으로 파업에 대처할 수 있게 됐다. 도시 간 버스 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데다 열차 대신 저가 항공을 이용해도 비용 차이가 거의 없다. 자가운전을 하는 이들도 많고, 인터넷 환경이 워낙 발달해 비상 상황이면 자택 근무를 해도 되는 시대가 됐다. 더욱이 SNCF의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파업 중 운행되는 열차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받게 된 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노조의 파업이 호응을 얻지 못한 또 다른 원인은 마크롱의 개혁이 현재 SNCF 종사자들에게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더 스펙테이터는 보도했다. 이번 개혁안은 2020년 이후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것일 뿐 현 직원들은 종신 고용 등 과거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린다. 대다수 국민보다 월등히 유리한 근로 조건을 가진 이들이 실제 손해도 없는데 대규모 파업을 벌이자 국민이 외면한 것이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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