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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영감"이라는 병실의 참견쟁이 할머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3)

둘도 없는 친구인 스마트폰과 함께 세상 이야기를 그리며 피할 수 없는 갱년기를 이겨내고 있는 중년 주부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중년도 아직 늦지 않았음을 그림을 통해 알리고 싶다.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쉽게 그릴 수 있는 스마트폰 그림, 그 차가운 디지털 화면에서 가족·이웃의 소소한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려주는 작업을 한다. 오늘도 멋진 인생 후반전을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50대 주부의 이야기를 그림일기 형식으로 풀어본다. <편집자>

“어이 젊은 양반! 거, 어머니 이불 좀 덮어 주시구랴.”

오늘도 901호 병실의 반장(?) 할머니는 참견하고야 만다. 하지만 이곳에 눈을 씻고 봐도 젊은이는 없다. 혹시 저 아저씨를 두고 하는 말일까? 온종일 화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는 중년의 저 남자 말이다. 내가 보기엔 환갑도 넘어 보이는데…. 하긴 이곳 노인 병동에서는 나름 젊은 축에 들지도 모를 일이다.

참견쟁이 할머니는 건너편 남의 아들을 보며 딸이 있어야지 아들은 소용없다며 자신은 그 좋은 딸이 셋이나 된단다. [그림 홍미옥]

참견쟁이 할머니는 건너편 남의 아들을 보며 딸이 있어야지 아들은 소용없다며 자신은 그 좋은 딸이 셋이나 된단다. [그림 홍미옥]

친정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병원생활을 하게 된 나는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병실의 임시 큰딸(?) 노릇을 하게 됐다. 환자 대부분이 80을 넘긴 어르신이라 누군가의 손길이 끊임없이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직업 간병인을 제외하면 가족의 왕래는 그리 잦지 않다. 그래서 물이나 식사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푸념과 넋두리도 들어주곤 하다 보니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은 남의 집 속사정까지도 알게 됐다.

올해 83세인 병실의 참견쟁이 할머니

참견쟁이 할머니는 건너편 남의 아들을 보며 딸이 있어야지 아들은 소용없다며 자신은 그 좋은 딸이 셋이나 된단다. 딸들이 돈 버느라 바빠서 그렇지 안 그러면 매일매일 병실에서 살았을 거라며 건너편 중년 남자, 즉 남의 집 아들을 쳐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남자는 여전히 화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

그런 할머니가 자꾸만 출입문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할아버지! 오늘도 동사무소에 들렀다 오느라 늦었다는 할아버지를 향해 쏟아지는 할머니의 잔소리와 불평은 은근히 재미있다. 나는 퇴원을 해야 하는데 왜 날 여기 놔두느냐, 집에 가면 할 일이 태산이다, 우리 집 강아지는 안 굶어 죽고 잘 있느냐, 내가 없으니 혼자서 얼마나 편하냐는 등 마음에 없는 불평이 이어진다.

할아버지도 지지 않으려는 듯 큰소리로 화를 내곤 하지만 그 모습은 절대 화난 표정은 아니다. 할머니 때문에 노인정에 못 나가는 게 할아버지의 가장 큰 불만인 듯싶다.

언제나 그렇게 투덕투덕 말다툼을 벌이다가 이젠 가봐야겠다고 할아버지가 일어서면 당장 할머니는 못내 서운한 얼굴이다. 말로는 내일은 안 와도 된다고 나 혼자 퇴원할 테니 걱정도 하지 말라고 어깃장을 놓기도 하면서.

할아버지의 굵은 손가락을 꼭 쥐고 병실을 나서는 할머니. 80대 노부부의 뒷모습은 사뭇 귀엽기까지 하다. [그림 홍미옥]

할아버지의 굵은 손가락을 꼭 쥐고 병실을 나서는 할머니. 80대 노부부의 뒷모습은 사뭇 귀엽기까지 하다. [그림 홍미옥]

며칠 후 병원 밥은 먹을 게 못 된다며 할아버지가 끓여주는 흰죽이 먹고 싶다던 자칭타칭 반장 할머니가 퇴원하는 날이다. 새벽부터 환자복을 벗어 던지고 단장하던 할머니, 물론 먹을 게 못 된다는 병원 밥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일주일 동안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 보호자에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런데 듣다 보니 그 보따리는 자랑 보따리다. 본인은 그 시절에 딸만 내리 셋을 낳았어도 싫은 소리 한 번 들은 적이 없고 지금은 모시 바구니가 되어버린 흰머리 염색도 할아버지 담당이란다.

딸이 좋네, 어쩌네 해도 역시 영감이 최고라고 아주 열변을 토한다. 아니, 엊그제만 해도 아들들 소용없고 딸이 최고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후후.

잠시 후 그날따라 세탁소에서 갓 찾아온 듯한 모직 코트에 작은 깃털이 달린 모자로 한껏 멋을 부린 할아버지가 퇴원 수속을 마치고 들어온다. 그러자 방금까지 영감이 최고라던 할머니는 집에 널려있는 멀쩡한 가방은 어디 두고 지난 명절 굴비 상자 보자기를 가져 왔느냐, 당신만 새신랑처럼 쫙 빼입었다는 둥 또 귀여운 구박을 시작한다.

“남편이 최고야, 자식들 다 소용없어 알지?”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할아버지의 굵은 손가락을 꼭 쥐고 병실을 나서는 할머니. 80대 노부부의 뒷모습은 사뭇 귀엽기까지 하다.

“아기 엄마! 살다 보니 남편이 최고야. 자식들 다 소용없어 알지? 아들보다 딸, 딸보다 남편! 명심하라고!”

예? 여기 어디에 아기 엄마가 있단 말인가? 분명 온종일 뚱한 표정의 중년 남자와 같은 연배의 나뿐인데…. 아기 엄마라는 말에 속없이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하나 했는데, 하지만 깜빡했다. 저 할머니는 녹내장 수술을 했다는 걸.

“네, 네, 할머니. 죽 잘 끓여주는 멋진 영감, 꽃보다 영감 맞죠?”

서로의 손을 잡고 여기까지 걸어온,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 몰라도 그 길을 같이 걸어갈 노부부의 아름다운 동행 길을 작은 화면에 담아봤다. 나도 그 길을 그렇게 걸어가야지 하는 다짐도 함께.

오늘의 드로잉 팁

펜업(PENUP). [사진 삼성전자 홈페이지]

펜업(PENUP). [사진 삼성전자 홈페이지]

이번엔 유용한 앱 중에 펜업(PENUP)을 이용해 스케치해 본다. 무료이기도 하고 초보자나 숙련자에게도 사랑받는 앱이다. 먼저 기본 장착된 브러시 중에 연필을 선택해 대충 스케치해 보는 게 좋다. 가는 선부터 굵은 선까지 선택하면서.

물론 처음부터 마음에 들 리가 없으므로 지우개 기능을 선택해 한 번에 미련 없이 지우거나 아니면 선을 하나씩 차분히 지우면 된다. 지우개 가루도 남지 않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마치 학창시절 미술 시간에 교탁 위에 놓인 원기둥이나 사과를 보며 4B연필로 하얀 스케치북을 채우는 것 같은 착각이 들 것이다. 다소 지루하더라도 꼼꼼하게 브러시의 특성을 파악하는 게 좋다.

그 외의 여러 기능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에 사용하는 게 좋은데 이유는 매우 다양한 표현기법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들고 있는 작은 스마트폰에 48색 색연필과 스케치북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다음엔 기본 스케치 위에 간단 채색을 해본다.

나중엔 폰 그림의 최대장점인 ‘언제나 어디서나!’를 최대한 활용해 전철이나 카페 혹은 드라마에 빠진 배우자의 뒷모습도 그려보자. 모두 벌써 마음속에서는 명작 탄생의 꿈이 꿈틀대지 않는가?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keepan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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