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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덜 해롭다는 아이코스, 오래 피울수록 건강 지표 후퇴?

중앙일보

입력

서울 시내의 한 거리에서 시민들이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 [뉴스1]

서울 시내의 한 거리에서 시민들이 아이코스 등 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다. [뉴스1]

'일반 담배를 대체할 혁신적 대체재' '몸에 덜 해로운 담배'
궐련형 전자담배인 아이코스를 알리는 제조사 필립모리스의 홍보 문구들이다. 필립모리스는 태우지 않고 찌는 방식의 아이코스를 쓰면 유해 물질 배출이 90% 이상 감소한다고 강조해왔다. 18일에는 흡연자 984명의 심혈관질환ㆍ암ㆍ호흡기질환 등 8가지 건강 지표들을 6개월간 분석한 임상시험 결과를 내놨다. 아이코스로 갈아탄 사람은 금연한 사람과 비슷하게 건강 지표가 변화했고, 일반 흡연자와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6개월 임상시험 결과, 3개월 시험보다 안 좋아"

하지만 이러한 담배 업체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내 담배 전문가인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26일 이번 임상시험 결과가 예전에 이뤄진 3개월 단위 시험보다 되려 후퇴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필립모리스가 국제 학술지 '니코틴&토바코 리서치'에 게재한 임상 시험 보고서(흡연자 160명 대상)와 비교했을 때 8개 지표 중 6개의 수치 개선 비율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이는 궐련형 전자담배를 오래 쓸수록 몸에 덜 해롭다는 업체 측 주장과 상반되는 내용이다.

18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아이코스 최신 임상연구 결과 발표회 모습. 아이코스 제조사 필립모리스는 아이코스 흡연자의 건강 지표가 금연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변화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18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아이코스 최신 임상연구 결과 발표회 모습. 아이코스 제조사 필립모리스는 아이코스 흡연자의 건강 지표가 금연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변화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예를 들어 심혈관질환 위험을 나타내는 콜레스테롤(HDL-C) 지표는 당시 4.5mg 감소했지만 이번에는 3.1mg만 줄었다. 같은 위험을 보여주는 slCAM1 지표도 지난해엔 8.8% 감소로 나왔지만 올해는 2.86%였다. 또한 호흡기질환 위험을 보여주는 지표(FEV1 %pred)도 3개월 연구는 1.91% 줄었지만 이번엔 1.28% 감소하는 데 그쳤다. 몸에 덜 해롭다면 시간이 갈수록 감소량이 더 커져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갔다는 의미다. 다만 이번 연구에 포함된 혈중 일산화탄소 결합 헤모글로빈 수치(COHb)와 폐암 발암 물질(Total NNAL)은 지난해 연구에선 분석하지 않았다.

조홍준 교수는 "필립모리스 측 연구가 통계상으로는 의미가 있더라도 실제 사람에게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선 의문이다"면서 "흡연량이 확 줄더라도 담배를 계속 피우는 한 심혈관질환 위험은 거의 줄지 않는다. 흡연자들이 아이코스로 갈아타도 각종 질병이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필립모리스가 지난해와 올해 각각 공개한 아이코스 임상시험 분석 결과 비교. 3개월 시험에 따른 건강 지표 변화폭이 6개월 시험보다 더 크다. [자료 필립모리스]

필립모리스가 지난해와 올해 각각 공개한 아이코스 임상시험 분석 결과 비교. 3개월 시험에 따른 건강 지표 변화폭이 6개월 시험보다 더 크다. [자료 필립모리스]

다양한 아이코스 제품들. [뉴스1]

다양한 아이코스 제품들. [뉴스1]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은...

지난 연구에서 아이코스 사용에 따른 긍정적 변화가 뚜렷하지 않았던 지표들은 이번 분석에서 대부분 제외됐다. 당시 분석 지표 18개에 포함됐던 hs-CRP·피브리노겐(심혈관질환)이 빠진 게 대표적이다. 또한 필립모리스 연구에 사용된 지표들이 불완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유진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 지표 8개 중 4개는 실험실에서나 쓰지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선 거의 쓰지 않는 수치다. 콜레스테롤 지표는 운동ㆍ음주 등 변수가 많아 담배 유해성을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고, 체내 염증을 알리는 백혈구 수치도 인체 유해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약간 감소한 것만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결론지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결국 중간 단계의 각종 지표보다는 사망률, 주요 질병 발생률 같은 최종 결과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코스를 피우는 남성 흡연자. [중앙포토]

아이코스를 피우는 남성 흡연자. [중앙포토]

필립모리스 측은 이러한 문제 제기가 모두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필립모리스 관계자는 "지난해 연구에선 아이코스 사용 비율을 100%로 했지만 이번 연구에선 일반 담배와 같이 피우는 '듀얼 유저'를 고려해서 70% 정도로 조정했다. 이 때문에 수치 변화에 차이가 좀 있을 것"이라면서 "분석 대상 지표도 연구 기간 동안 신체 변화를 잘 보여줄 수 있는 항목들로 고른 것이다.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아야 하는 만큼 유리한 것만 빼서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적 담배 전문가인 스탠턴 글랜츠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립대(UCSF) 교수도 아이코스 임상시험 결과를 비판했다. 글랜츠 교수는 지난 20일 자신의 연구용 홈페이지에 "필립모리스는 더 많은 세부 정보를 내놓지 않은 데다 어떠한 변화가 통계적으로 분명한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좋지 않은 결과를 피하기 위해 좋은 수치만 골라 쓰는 '체리피킹'에 가까운 연구"라고 지적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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