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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방탄소년단의 힘 … 한류, 이젠 K패션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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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논설위원이 간다 - 남정호의 '세계화 2.0'

지난해 9월 K스타일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컨셉트 코리아' 패션쇼가 끝나자 자신들의 옷을 선보인 한국 디자이너 박윤희(왼쪽)와 이청청(오른쪽)이 모델 메이 머스크(가운데)와 함께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69세의 메이는 영화 '아이언맨'의 모델인 천재 과학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친어머니다. 이청청 제공

지난해 9월 K스타일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컨셉트 코리아' 패션쇼가 끝나자 자신들의 옷을 선보인 한국 디자이너 박윤희(왼쪽)와 이청청(오른쪽)이 모델 메이 머스크(가운데)와 함께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69세의 메이는 영화 '아이언맨'의 모델인 천재 과학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친어머니다. 이청청 제공

 도도한 한류(韓流)의 흐름 속에서 이미 세계를 강타한 K드라마·K팝·K뷰티에 이어 K패션이 뜨고 있다. 지난해 6월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1년 전 이용량과 1년 후의 예상치를 비교 조사한 결과, 9개의 한류 항목 중 패션·뷰티의 예상증가율이 가장 높은 3.8%포인트로 나타나 공동 2위인 TV 드라마(3.6%포인트)와 도서(3.6%포인트)를 넘어섰다. 어느 장르보다 패션·뷰티 부문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런 K패션 약진의 비결은 무엇인가. 먼저 한류 스타들의 인기에 힘입은 바 크다. 이 못지않게 K패션을 세계화하려는 끊임 없는 노력도 큰 몫을 했다.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는 K패션의 현장을 짚어봤다.

지난해 9월 K스타일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컨셉트 코리아' 패션쇼 에서 69세의 모델 메이 머스크가 한국 디자이너 이청청의 옷을 선보이고 있다. 제공: 라이(디자이너 이청청)

지난해 9월 K스타일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컨셉트 코리아' 패션쇼 에서 69세의 모델 메이 머스크가 한국 디자이너 이청청의 옷을 선보이고 있다. 제공: 라이(디자이너 이청청)

지난해 9월 8일 미국 뉴욕 맨해튼 서쪽 스카이라잇 클락슨 스퀘어 이벤트홀. 몽환적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흰머리를 양쪽으로 바짝 쳐올린 패션모델이 런웨이에 나타났다. '불완전한(imperfect)'이라고 쓴 흰 티셔츠에 흰 재킷을 걸친 그가 경쾌하게 런웨이를 걸어나가자 관객들 사이에선 가벼운 탄성이 터졌다. 화려한 조명 속에서 세련된 옷을 매끄럽게 소화해 낸 백발의 모델 메이 머스크가 69세인 까닭이다. 특별함은 나이 뿐만이 아니었다.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천재 과학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바로 그의 친아들이다. 이런 이유로 그의 등장은 미국 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 패션쇼 이후 그는 많은 행사에서 러브콜을 받았으며 TV 대담프로에도 여러 번 출연했다.

 하지만 한국인에겐 이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이 무대가 한국 디자이너의 작품을 소개하는 패션쇼 '컨셉트 코리아(Concept Korea)'였기 때문이다. 메이가 입은 옷들은 한국 디자이너 이청청의 '라이(Lie)'와 박윤희의 '그리디어스(Greedilous)'였다.
 K패션의 인기는 뉴욕 등 해외 패션의 중심지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다. 무슨 옷이든 걸치기만 해도 화제가 된다는 스타들이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세계적 팝스타 비욘세는 박윤희가 디자인한 화려한 잠바와 원피스를 입어 국내에서 화제가 됐다.

2017년 10월 한국 디자이너 박윤희의 '그리디어스(Greedilous)' 원피스를 입고 외출하는 세계적 가수 비욘세. 박윤희 제공

2017년 10월 한국 디자이너 박윤희의 '그리디어스(Greedilous)' 원피스를 입고 외출하는 세계적 가수 비욘세. 박윤희 제공

톡톡 튀는 스트리트패션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계한희의 옷은 또 다른 팝스타인 리한나가, 박종우의 ‘99퍼센트이즈’는 저스틴 비버와 레이디 가가가 입었다. 최근 두각을 나타낸 디자이너 고태용은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매니지먼트 회사인 IMG와 계약했다.
 유통업체도 움직이고 있다. 미국 대형 백화점 체인인 노드스톰은 지난해 여러 지점에서 K패션 전문점을 열기도 했다. 온라인도 난리다. K패션, K스타일로 검색하면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의상과 비슷한 옷을 파는 온라인 상점이 쏟아진다.
 한국 출신 아이돌 그룹의 부상으로 동남아에서 K패션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꽤 됐다. 하지만 구미, 특히 미국에서 K패션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얼마 전부터다. 미국 소비자들이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싸이의 '강남 스타일' 덕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화려한 의상이 돋보인 '강남 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인기를 끌면서 일벌레라는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변했다는 것이다.

5월 2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 참석한 방탄소년단(BTS). 이들이 입는 옷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BTS는 패션 아이콘으로도 떠올랐다. 빌보드 제공

5월 2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 참석한 방탄소년단(BTS). 이들이 입는 옷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BTS는 패션 아이콘으로도 떠올랐다. 빌보드 제공

게다가 2~3년 전부터 공전의 인기를 끌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K패션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다. 반짝인기로 끝난 싸이와는 달리 BTS는 연이은 히트곡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들의 스타일을 팬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BTS의 몇몇 멤버들이 즐겨 입는 하바나 셔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스타 마케팅 전략으로 K스타일 세계화에 큰 역할을 해 온 한영아 한글로벌어소시에이츠 대표. 한글로벌어소시에이츠 제공

스타 마케팅 전략으로 K스타일 세계화에 큰 역할을 해 온 한영아 한글로벌어소시에이츠 대표. 한글로벌어소시에이츠 제공

 한편 오래전부터 K패션의 세계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한영아 한글로벌어소시에이츠 대표다. 한 대표는 오랜 뉴욕에서의 활동 경험과 인맥을 토대로 스타 마케팅을 통해 K패션이 각광 받도록 애써왔다.
 메이 머스크와 같은 나이 많은 모델이 뜨고 있으니 한류 패션쇼에 등장시키자는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이뿐 아니라 한 대표는 2014년 12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K패션 프로젝트' 행사를 '스타일링의 귀재'로 불리는 패트리샤 필드가 맡도록 했다.

2014년 12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K 패션 프로젝트' 행사에서 기획을 맡은 패트리샤 필드가 인사하고 있다. 필드는 미 인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의상을 맡았던 세계적인 스타일리스트다. 한국패션협회 제공

2014년 12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K 패션 프로젝트' 행사에서 기획을 맡은 패트리샤 필드가 인사하고 있다. 필드는 미 인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의상을 맡았던 세계적인 스타일리스트다. 한국패션협회 제공

필드는 미 인기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의상과 스타일을 맡았던 뉴욕 패션계의 전설이다. 한 대표는 "막 뜨기 시작한 K패션이 본격적으로 날아오르려면 글로벌 스타 마케팅과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이 무엇보다 효과적"이라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요즘 구미 언론에도 자주 등장하는 K패션, K스타일이란 뭔가. 한 대표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길거리 패션 코드를 여러 장르로 재해석한 뒤 재미있고 세련된 감성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 여러 디자이너에 의해 조금씩 수정, 발전돼 큰 물줄기를 이루는 것이 K패션이라는 뜻이다. 예컨대 지난해 겨울처럼 롱 패딩이 유행하면 한국 디자이너들은 이를 자신의 개성에 맞게 변형시켜 세계 시장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가능한 것은 전적으로 '카피 천국'으로 불리는 동대문 패션 타운이 있기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TV에 나온 스타의 옷과 똑같은 제품이 3일이면 매장에 깔리는 게 이곳이다. 이런 놀라운 능력 덕에 갓 뜨기 시작한 스타일이 삽시간에 유행할 수 있으며 이것이 전 세계의 눈길을 사로잡는 K패션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K스타일의 메카인 서울 동대문 패션타운.  남정호 기자

K스타일의 메카인 서울 동대문 패션타운. 남정호 기자

서울 동대문 일대를 둘러보면 K패션을 창조해내는 한국 특유의 힘찬 맥박을 느낄 수 있다. 지난 17일 K 스타일의 메카 동대문 패션타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길 건너편으로 두타·밀리오레·헬로우apm 등 대형 패션몰이 줄지어 서 있다. 두타 빌딩 안으로 들어서니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중국인, 동남아인 가족과 서양인 커플이 눈을 반짝이며 싸고도 질 좋은 옷가지를 찾기 위해 돌아다닌다.

 '두타 몰에서 구매하고 두타 면세점에서 최대 20% 할인 받자'는 안내문이 한글과 함께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4개 국어로 써있다. 남정호 기자

'두타 몰에서 구매하고 두타 면세점에서 최대 20% 할인 받자'는 안내문이 한글과 함께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4개 국어로 써있다. 남정호 기자

 스피커에서는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중국어·일본어 안내 방송이 계속 흘러나온다. '두타 몰에서 구매하고 두타 면세점에서 최대 20% 할인받자'는 안내문 역시 4개 국어로 쓰여 있다. 인천 국제공항에 온 기분이다.
 빌딩 지하 2층 남성복 코너에 가니 방탄소년단이 크게 유행시켰다는 하바나 셔츠가 거의 모든 상점에 걸려 있다.

2018년 6월 서울 동대문 패션 쇼핑몰 두타빌딩 지하 2층의 남성복 매장. 남정호 기자

2018년 6월 서울 동대문 패션 쇼핑몰 두타빌딩 지하 2층의 남성복 매장. 남정호 기자

이런 구조 때문에 한국 패션업계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 패션업계를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서울패션위크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현주 서울패션위크 PD는 "관람객뿐 아니라 한국 패션에 관심을 갖고 참석한 해외 바이어도 2015년 300여명에서 올해 540명으로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2018년 3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열린 '헤라 서울패션위크'에는 3년 만에 2배가 된 32만 명의 관객들이 몰렸다.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2018년 3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열린 '헤라 서울패션위크'에는 3년 만에 2배가 된 32만 명의 관객들이 몰렸다.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바야흐로 도약기에 접어든 K 패션을 한 단계 끌어올릴 방법은 무엇일까. 한영아 대표는 세계적인 관심거리가 된 남북문제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판문점에서 북한 모델이 남쪽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입고 나오는 남북 합동 패션쇼를 열면 큰 관심을 끌 것"이라며 "기회가 되면 이런 행사를 추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