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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이 제안한 재건축 공모전 당선작 쉬쉬 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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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호 15면

당선작 ‘잠실대첩’. 대로변 땅이 공모전 대상지다. [사진 UBAC조성룡도시건축]

당선작 ‘잠실대첩’. 대로변 땅이 공모전 대상지다. [사진 UBAC조성룡도시건축]

‘공공성 VS 사유재산’

서울시, 아파트 공공성 위해 공모전 #대가로 35층서 50층까지 짓게 해줘 #조합측 “주민 사유재산권 침해” 반발 # 건축가 조성룡 두달 침묵 끝에 호소 #“조합서 계약도 하기 전 수정 요구 # 깜깜이 진행 말고 공론화 해야”

재건축을 앞둔 서울 잠실주공5단지는 요즘 이 상반된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울시가 국내 재건축 아파트 역사상 최초로 국제설계공모전을 시행하면서다. 지난해 3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역구 국회의원과 조합장을 만난 자리에서 공모전 검토 요청을 했다. ‘공공성을 확보하고, 한강변 경관 개선을 하겠다’는 목적이었다. 대신 35층으로 제한했던 아파트 높이를 일부 50층까지 지을 수 있게 해주었다. 재건축을 앞둔 강남 아파트 조합원 사이에서 ‘꿈의 50층’이라 불리는 높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에 걸쳐 올림픽로와 잠실대로쪽 일부 대지를 대상으로 국제설계공모전이 열렸다. 7팀의 건축가 그룹 중 조성룡(74) 건축가가 총괄로 있는 ‘잠실대첩’안이 3월 30일 당선됐다. 그리고 갈등이 시작됐다. 일부 조합원들이 “조 건축가의 설계안은 주민의 사유재산권과 편익을 철저히 배제했다. 공공 이익에 초점을 둔 게 문제”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공모전을 주최한 서울시는 두 달 넘게 당선작의 내용을 발표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 “당선안은 초기구상으로, 향후 정비계획 수립과정이 끝난 후 공개하겠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심사위원단이 “다른 안과 확연히 차별화된 안으로 평가됐다”고 밝힌 당선작은 세상에 공표되지 못한 채 묻히고 마는 걸까. 서울시의 아파트 공공성 실험 역시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는 걸까. 건축가 조성룡을 최근 만났다. 그는 “공모전에 참가했던 이유이자, 도시 문제 관련 남기고픈 메시지라도 떳떳하게 밝히고 싶다”며 호소했다.

서울시“정비계획 수립 끝난 후 공개할 것”

왜 당선작을 밝히지 못하고 있나.
“당선 직후 서울시는 인허가 심의가 통과되기 전까지 당선안을 공개하지 말라며 비밀유지 서약서를 받아갔다. 원안을 알리지 못하는 사이, 조합에서는 당선안을 수정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아예 50층이 포함된 준주거 지역 등의 아파트 설계에서 당선작의 내용을 배제하려 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하지 않은 것이 내가 한 것처럼 알려질 수 있겠다는 우려가 든다.”
당선자 지위의 법적 효력은 없는 건가.
“설계 지침에서 당선자는 발주처(조합)와 설계 계약을 체결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재건축 아파트 사상 처음으로 국제설계공모전을 열면서 관련 법과 규정을 면밀히 검토하지 못했다. 조합에서는 2인 이상의 설계자를 후보로 놓고 총회에서 뽑을 수 있다는 규정을 문제 삼았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일 열린 조합 총회 투표에서 내가 우선협상자의 지위를 갖게 됐다.”
당선 이후 두 달간 허송세월한 셈이다.
“그렇다. 하지만 말 그대로 우선협상이다. 현재 조합은 공공연히 ‘우선협상권이 있는 당선자와 계약체결을 하되 결렬될 경우 차순위자와 계약을 체결하도록 규정했다’며 계약 전부터 설계안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가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상향을 해주는 대신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법적 장치를 하고, 행정지도를 해야 했다.”
조성룡씨. [사진 UBAC조성룡도시건축]

조성룡씨. [사진 UBAC조성룡도시건축]

건축가 조성룡이 아파트 국제설계공모전에 당선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1983년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국제설계공모전에 당선됐다. 우리나라 아파트 건축 역사상 최초의 국제설계공모전이었다. 그리고 35년 뒤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공모전에 당선됐다. 아파트와 얽힌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게 된 건축가에게 이번 당선은 축하 받아야할 일이었다. 하지만 조성룡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지키기 위해 지금 홀로 싸우고 있다. 그는 “함께 살기 좋은 동네, 그게 공공성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길가 고층 아파트로 인한 단지 안쪽의 피해를 줄이려 애썼다. 아시아선수촌아파트에서 33년째 살고 있는 건축가는 “오래 살고 싶은 집을 짓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파트 높낮이 고려해 뒷 동 피해 최소화

일조권과 바람 문제부터 왜 고민했나.
“서울시가 샘플로 보여 안을 보면 올림픽로를 따라 50층짜리 주상복합 5동이 쭉 서 있었다. 그렇게 남쪽 길가에 고층 건물을 배치할 경우 동지 때 단지 절반이 그림자 지게 된다. 겨울철에는 최소 2시간 이상 빛이 들어야 얼음이 녹는데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50층 건물을 세 동으로 계획해 송파대로 쪽으로 배치했다. 또 건물의 높낮이를 다양하게 하고 각도를 달리해 바람이 흩어지게 했다. 고층 건물의 경우 소용돌이 바람이 생겨, 미세먼지가 빠져나가지 못할 수 있다.”
커튼월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짓는다는 불만도 있다.
“미국에서 초고층 오피스 빌딩을 지을 때 철골 구조에 유리를 붙이는 커튼월 방식을 쓰기 시작했다. 국내로 들어오면서 ‘초고층 아파트=커튼월’이 공식처럼 유행했다. ‘커튼월 룩’이라며, 커튼월처럼 보이게 그림으로 그려야 좋아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초고강도 콘크리트로 초고층 건물을 짓고 있다. 더 안전하다. 원래 현장 타설이 어려워 할 수 없었는데 이제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

심사위원단은 “1등 안은 일부 공동주택의 리모델링과 신축을 결합한 제안, 준주거 지역 내의 초고층 건물의 내부 공동주택에 대한 악영향을 줄이기 위한 배려, 가로변 저층부와 상가의 배치와 상부보행 공간의 확보 등에서 다른 안과 확연히 차별화된 안으로 평가됐다”고 총평했다. 조성룡은 기존 아파트 건물 일부를 재활용해 임대주택으로 쓸 수 있게 디자인했다. 아파트와 한강으로 이어지는 길을 디자인할 때 한성 백제의 유산인 몽촌·풍납토성의 지형을 본뜨기도 했다. 건축가는 “잠실역 주변 광장과 단지 내 4차선 도로는 서울시가 공모 지침 때부터 정해 놓은 조건”이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서울시와 당선자가 공공성을 위해 시도했던 모든 논제는 불분명하게 묻힌 상태다. 건축가 조성룡,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 국제설계공모전 당선자가 원하는 것은 한가지였다. “공모전의 기본정신은 살아야 할 것 아닌가. ‘깜깜이’ 진행 말고, 공론화를 원한다.”

잠실주공5단지

●위치: 서울 송파구 잠실동 27번지 일대 35만8077㎡
●규모: 3930세대(1978년 준공)
●재건축안
주상복합·아파트 6401가구 신축 기존 35층에서 50층까지 신축 가능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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