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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시각각] 지금 일하고 있는 것 맞습니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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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호 34면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 친구는 서면 취재, 앉으면 기사, 누우면 기획입니다.” 언론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최상급 칭찬이다. 공치사인 경우도 있지만, 정말 잠자는 시간 빼고는 일만 할 것 같은 기자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기자가 누군가를 만나면 뭔가 듣는 게 있고, 어딘가에 가면 뭔가 보는 게 있으니 취재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누워서 책을 읽든, 인터넷 기사를 뒤적이든 ‘기삿거리’ 숙제를 안고 조바심을 내고 있으면 일에 묶여 있는 셈이다.

주 52시간 근로 무차별 적용에 #일하고도 “안했다” 해야 할 판

언론계에서는 40시간, 52시간, 68시간 같은 노동 시간 상한선이 사실상 무의미했다. 지난해 포항 지진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일주일에 100시간 가까이 일했다. 국정 농단 사건 특검팀 취재 기자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취재 기자들도 하루에 15시간 이상 근무했다. 이처럼 ‘기자 노동자’에게는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 빼고는 온통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무시로 닥쳐온다.

그런데 보름 뒤부터는 그러면 안 된다. 언론사 대표가 처벌받는다. ‘일주일에 52시간’을 지켜야 한다. 불가피하게 넘겼으면 그 다음 주에 초과 시간만큼 일을 덜 해야 한다. 법이 그렇다. 살인적(통계에 따르면 기자 평균 수명은 72세로 종교인보다 10년, 정치인보다 7년 적다) 노동에서 해방될 날이 코앞에 다가왔으니 모여서 만세라도 부를 법한데 그렇지가 않다. 급여 감소 걱정 때문만은 아니다. 나를 포함해 많은 기자가 “그렇게 해서 일이 되겠느냐”고 생각한다. 정책 입안자는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사람을 더 뽑으면 된다”고 한다. 얘기해 봐야 서로 입만 아프다.

기자직 비슷한 직업군이 있다. 광고 제작, 콘텐트(방송·인터넷·게임) 개발, 제품 연구, 기술 개발 등의 분야에서도 ‘워크’와 ‘라이프’의 경계가 희미하다. 로펌의 변호사도 그렇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정해진 시간에만 일하면 되는 곳은 줄고, ‘알아서 성과를 내야 하는’ 곳이 늘었다. 공부 시간이 아니라 성적이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정부 관리들은 독일·프랑스 얘기를 한다. 프랑스는 주 35시간이고, 독일은 기업들이 근무 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 프랑스에 가 보면 탈레스·에어버스·아레바 등 기술력 뛰어난 기업의 연구소에는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다. 독일 기업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근무 시간을 줄여 ‘워크 셰어링’을 했는데 늘어난 일자리는 대부분 ‘파트타임’이었다. 유럽연합(EU) 통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10년간 독일에서 풀타임 일자리는 39만 개가 늘어났고, 파트타임 일자리는 202만 개 증가했다. 독일과 한국은 사회보장 수준이 다르다. 독일 가정에는 자녀 학비 부담이 없다. 주 20시간 미만 파트타임 일로도 생계비는 번다.

이제 한국 직장인들은 무엇이 일이고, 무엇은 일이 아닌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 광고 제작자가 미술품 전시회에 가는 경우 일을 위한 것인지, 개인의 삶을 위한 것인지 누군가가 판정해야 한다. 기자가 저녁에 공무원을 만나 밥을 먹을 때 취재인지, 개인적 인맥 형성인지 구분해야 한다. 영업사원이 고객사 직원과 술을 마실 때도 꼭 필요한 일인지 따져봐야 한다. 기성세대 일꾼들이 철석같이 일이라고 믿었던 수많은 것들이 일이 아닐 수 있다. 새 법과 제도의 시각에서 보면 미련하게 일과 삶을 구별 못 하고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향상에 역행하는 인생을 산 것일 수 있다.

“이것은 과연 일인가?”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을 향해 순간순간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회사에서 그렇게 물을 것이다. 당신은 “일한 것 절대로 아니다”며 양심을 거스르는 답을 해야 할 수도 있다. 회사의 안위를 위해서. 서글프고 답답한 현실이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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