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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키니쿠, 재일교포가 힘겹게 지킨 우리 불고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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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호 21면

박찬일의 음식만행(飮食萬行) 오사카 불고기 골목 순례기

오사카 스타일의 야키니쿠 중에는 꼬치구이도 있다. 꼬치에 끼웠을 뿐, 살이 도톰해 우리 전통의 너비아니와 비슷하다. [사진 박찬일]

오사카 스타일의 야키니쿠 중에는 꼬치구이도 있다. 꼬치에 끼웠을 뿐, 살이 도톰해 우리 전통의 너비아니와 비슷하다. [사진 박찬일]

일본 오사카(大阪)는 남쪽의 난바(難波)와 북쪽의 우메다(梅田)에 관광객이 몰린다. 지도에서 보면, 도시의 오른쪽에 이쿠노(生野)구가 있다. 이곳에 특이한 관광객이 몰린다. 바로 ‘불고기 투어’다. 한국인보다는 일본인 관광객이 더 많다. 오사카 시내에서도 하얀 와이셔츠 부대들이 몰려온다. 옷에 연기 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고기를 굽는다. 이곳이 재일교포가 만들어낸 야키니쿠(燒肉), 즉 불고기의 성지다. 일종의 성지순례객 겸 관광객이 몰리는 것이다.

오사카 츠루하시역 인근 ‘야키니쿠 타운’ #전후 교포가 시작, 지금 일본인 성지순례 #난민 전락한 재일교포 먹는장사로 연명 #소·돼지 내장 요리, 도시 빈민 설움 달래 #도톰한 등심·갈빗살 구이, 옛 방식 그대로 #日 안창살 내장 취급, 한국 3분의 1 가격

전철을 타고, 야키니쿠 타운이 있는 이쿠노구 츠루하시(鶴橋)역에서 내리자마자 한국인이라면 익숙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간장에 절인 고기가 불에 타서 나는 냄새다. 자욱한 연기가 역사 안까지 밀려 들어온다. 역사를 빠져나오면 호객꾼이 붙는다. 기다란 골목 하나가 통째로 야키니쿠 집으로 꽉 차 있다.

오사카 츠루하시역 앞은 불고기의 성지다. 수십 개 업소가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진 박찬일]

오사카 츠루하시역 앞은 불고기의 성지다. 수십 개 업소가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진 박찬일]

야키니쿠는 일본 전역에서 인기다. 인구 3000∼4000명의 시골에도 이 묘한 고기 구이집이 있다. 재일조선인(한국인)이 원조라는 건 공식적인 사실이다. 일본 학계에서도 인정한다. 하지만 요즘 일본인 중에서는 모르는 이들도 있다. 김치도 팔고, 각종 부위의 이름이 한국어에서 유래한 것인데도 그렇다. 워낙 즐겨 먹다 보니 ‘일본음식화’ 되어버렸다.

오사카의 불고깃집은 한국과 달리 '1인 불판'이 많다. 카운터식 배열도 흔하다. '혼고기'가 가능한 구조다. [사진 박찬일]

오사카의 불고깃집은 한국과 달리 '1인 불판'이 많다. 카운터식 배열도 흔하다. '혼고기'가 가능한 구조다. [사진 박찬일]

일본은 알다시피 1800년대 후반의 메이지유신 전까지 1000년 넘게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19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침략 야욕이 본격화하던 시점과 일치한다. 고기를 열심히 먹어서 서양인처럼 강해지는 게 당시 권력의 목표였다. 고기 섭취량이 늘었고, 전쟁을 일으켰다. 조선을 식민지화했다. 그 식민 역사의 흔적이 바로 이곳, 츠루하시에 야키니쿠 불고기로 남아 있다.

재일교포 조박(58)씨를 만났다.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사회활동가이자, 가수, 연기자다.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해서 공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영화 ‘박열’에 일본 외무대신 역으로 출연했다. 그의 안내로 야키니쿠 타운을 돌아보았다. 몇 해 전부터 야키니쿠 취재에 나선 필자의 취재를 도와주고 있다. 츠루하시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들르자 커다란 냄비에서 뭔가가 끓고 있었다.

소내장만 넣은 호루몬 우동. 이제 전설 속으로 사라지는 음식이다. [사진 박찬일]

소내장만 넣은 호루몬 우동. 이제 전설 속으로 사라지는 음식이다. [사진 박찬일]

“호루몬이야. 냄새 좋죠?”

재일교포 행사에 쓸 음식을 끓이고 있다고 했다. 불고기는 호루몬(ホルモン), 즉 내장요리다. 다 사연이 있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하자, 미군정이 들어섰다. 조선인을 조국으로 귀환시켰지만, 일부는 그대로 눌러앉았다. 48년 제주 4·3 때 제주도로부터 다수가 피신을 오기도 했다. 그렇게 오사카의 재일조선인 사회가 형성됐다.

문제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일본 국적이 없어진 것. 미군정의 조치였고, 일본도 식민지 출신이 국적을 유지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졸지에 국제 난민이 되었다. 국적이 없으니 공직이나 회사에 취직하는 게 불가능했다.

“오랫동안 재일조선인과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직업은 세 가지가 있다고 했어요. 의사, 장사, 아니면 야쿠자(조직 폭력배). 의사는 국적을 묻지 않고 자격을 따면 가능했으니까.”

주한 화교가 약사, 한의사를 많이 한 것과 같은 사유다. 그들도 오랫동안 난민 처지였다. 화교 주현미씨가 약사인 것도 그런 이치다. 재일조선인이 하는 장사 중에는 야키니쿠, 즉 불고깃집이 많았다. 먹는장사가 역시 제일 만만했다. 그런 역사로 오사카가 야키니쿠의 성지가 되어버린 셈이다.

한국의 불고기는 등심을 적당히 얇게 썰어 기름과 간장으로 양념해서 굽는 게 원형이었다. 전동 절삭기가 도입되어 등심이 아닌 다리 살 같은 질긴 부위를 아주 얇게 저밀 수 있게 되면서 식감이 바뀌었다. 거기에다가 일본이 강점 시기에 전파한 ‘왜간장’이 달짝지근한 맛의 불고기를 탄생시켰다.

소 울대 연골을 칼집 내 구운 야키니쿠. 식감이 독특하다. ‘우루데’라고 부른다. [사진 박찬일]

소 울대 연골을 칼집 내 구운 야키니쿠. 식감이 독특하다. ‘우루데’라고 부른다. [사진 박찬일]

현재 일본의 야키니쿠 집에서 오히려 옛 불고기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다. 물론 달짝지근한 간장 양념은 비슷하지만, 등심이나 갈빗살을 너무 얇지 않게 저며 화로에서 굽는 방식이 전통적인 우리 불고기와 비슷하다. 이른바 ‘너비아니’식으로 도톰하게 저며 굽는 방식을 닮았다. 한국은 격동하는 현대사를 통해 불고기 스타일도 급변했지만, 일본은 고립된 재일교포 사회에 의해 오히려 원형을 더 지켜왔다고 볼 수 있다.

재일교포 불고깃집에서는 소 애기보, 천엽 등도 회로 낸다. [사진 박찬일]

재일교포 불고깃집에서는 소 애기보, 천엽 등도 회로 낸다. [사진 박찬일]

츠루하시의 유명 정육점에 들렀다. 야키니쿠와 호루몬 전문이다. 재일교포가 이 지역에 모여 살기 시작한 일본 패망 시기(1945년)에 문을 열어 70여 년째 장사하고 있다. 사장 다케시마(54)씨의 설명이다.

“한국어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어요. 우루데(울대, 즉 성대), 뎃창(대창), 가루비(갈비), 센마이(千葉)…. 최근 내장이 비싸졌어요. 야키니쿠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어서입니다.”

오사카식 곱창 찜. 기름을 거의 제거하지 않았다. [사진 박찬일]

오사카식 곱창 찜. 기름을 거의 제거하지 않았다. [사진 박찬일]

제일 인기 있는 부위는 하라미(ハラミ)다. 우리의 안창살에 해당한다. 일본의 야키니쿠 집은 한국과 몇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첫째, 갈비가 싸다. 일종의 ‘잡부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란다. 안창살도 싸다. 한국에선 등심보다 비싸게 팔리는 부위인데 내장 취급한다. 안창살(안+창(창자)+살), 즉 내장 안에 있는 살이란 이름에 힌트가 있다. 일본에서는 안창살을 정육이 아니라 내장으로 본다. 특이한 분류다. 그래서 1인분 120g에 1000엔(약 1만원) 정도면 먹을 수 있다. 양깃머리도 싼 편이다. 한국의 3분의 1 정도 가격이다. 곱창도 특이하게 요리한다. 곱은 빼고 붙어 있는 기름을 남겨둔다. 곱은 빼지 않고 기름을 잘라내는 한국과 반대다.

호루몬찜, 즉 소내장 찜을 끓인 선술집 주인. 옛날 오사카 시민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안주다. [사진 박찬일]

호루몬찜, 즉 소내장 찜을 끓인 선술집 주인. 옛날 오사카 시민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안주다. [사진 박찬일]

호루몬(ホルモン)이란 버린 것이라는 뜻의 일본어 ‘호루모노(ほる物)’의 오사카 사투리라는 게 정설이다. 우리 몸의 호르몬과 같은 역할을 해서 정력이 세진다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소와 돼지 내장은 달리 직업을 구할 수 없는 우리 교포가 주로 다뤘다.

일본인도 물론 내장을 먹었다. ‘부라쿠민(部落民)’이라고 하여 천대받는 계급이 즐겼다. 남들이 잘 안 먹고 버리니까 당연히 값이 아주 쌌다. 여전히 옛 부라쿠 근처에는 호루몬 요릿집이 많다. 그중 하나가 호루몬 우동 집이다. 소내장으로 우동을 삶는다. 노숙자 동네로 유명한 신이마미야(新今宮) 지역의 한 국숫집을 찾았다. 사장 겸 주방장 이즈타니(69)씨가 바쁘게 소내장 육수에 국수를 말았다.

“한국인 노동자가 이 동네에 많이 살았지. 우리 가게 단골이었고. 소주 한잔에 호루몬 볶음이나 우동을 먹고 하루의 피로를 풀었지.”

그가 만드는 소내장 우동에는 곱창, 허파, 심장, 홍창 같은 내장이 가득 들었다. 한국 돈으로 약 3000원 받는다. 간장을 넣고 푹 삶은 육수에 우동을 넣는다. 일본인은 내장이 쫄깃쫄깃하면 덜 익었다고 생각한다.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는 국민성과 관련이 있다. 내장이 부들부들해서 거의 씹지 않아도 넘어간다. 씹는 맛을 즐기는 한국과 다르다.

고기 굽는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한 오사카 야키니쿠 타운. 폐 속이 불고기 연기로 가득 찼다. [사진 박찬일]

고기 굽는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한 오사카 야키니쿠 타운. 폐 속이 불고기 연기로 가득 찼다. [사진 박찬일]

다시 야키니쿠 타운으로 갔다. ‘소라(空)’라는 가게에 들렀다. 90분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회전을 빨리 시키기 위해서다. 밖에는 비가 내렸고, 고기 굽는 연기가 정체되어 골목 안은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저기압에 고기 연기가 정체되어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마치 전위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폐 속이 불고기 연기로 가득 차는 듯했다. 야키니쿠 또는 불고기. 우리가 일본과 재일교포 사회를 이해하는 한 방식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박찬일
글 잘 쓰는 요리사. ‘로칸다 몽로’ ‘광화문 국밥’ 등을 운영하며 음식 관련 글도 꾸준히 쓰고 있다. 본인은 ‘한국 식재료로 서양요리 만드는 붐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불리는 걸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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