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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월드컵 개막전에 신태용호 답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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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 개막전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에 5번째 골을 터뜨린 직후 개최국 러시아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에 5번째 골을 터뜨린 직후 개최국 러시아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은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에게 ‘교본’과 같은 경기였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처럼 압도적인 골 결정력을 지닌 해결사가 없거나 또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조직력을 갖추지 못한 나라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경쟁하는 방법을 성공사례와 실패사례로 명확히 구분해 보여줬다. 러시아와 사우디 아라비아가 맞붙은 개막전에서 러시아가 전반 2골, 후반 3골을 몰아친 끝에 5-0 대승을 거뒀다.

러시아의 데니스 체리셰프(빨간색 유니폼)가 사우디 아라비아전에서 전반 막판 수비수 두 명을 따돌린 뒤 추가골을 터뜨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의 데니스 체리셰프(빨간색 유니폼)가 사우디 아라비아전에서 전반 막판 수비수 두 명을 따돌린 뒤 추가골을 터뜨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엇비슷한 두 팀, 그러나 경험이 달랐다

경기력이 대동소이해 지리한 수비축구를 구사할 것으로 평가받은 두 팀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 결정적인 원인은 경험의 차이였다. 전반 12분에 러시아의 첫 골이 나온 이후 양 팀 분위기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사우디 아라비아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게 한 눈에 보였다. 득점이든 실점이든 개의치 않고 최대한 빨리 평정심을 회복해야하는데,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사우디 선수들에겐 쉽지 않아보였다.

평정심은 오는 18일 스웨덴과의 맞대결을 앞둔 한국 축구대표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화두다. 혹여 먼저 실점하더라도 흔들리면 안 된다. 언젠가 한 번 찾아올 수 있는 결정적인 찬스를 기다리면서 차분히 대응해야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만약 우리가 선제골을 성공시킬 경우엔 월드컵 본선 경험이 부족한 스웨덴이 조급해하며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도 예상할 수 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신감은 큰 경기일수록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러시아 장신 공격수 아르툠 주바(왼쪽)가 사우디 아라비아전에서 팀 동료 골로빈의 크로스를 머리로 받아넣어 추가골을 터뜨리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장신 공격수 아르툠 주바(왼쪽)가 사우디 아라비아전에서 팀 동료 골로빈의 크로스를 머리로 받아넣어 추가골을 터뜨리고 있다. [AP=연합뉴스]

◇김신욱을 살리는 힘, 짧고 빠른 크로스

교체 투입된 러시아 장신 공격수 아르툠 주바의 활약은 ‘김신욱 활용법’을 놓고 고심하는 신태용 감독에게 좋은 본보기가 됐다. 신장 1m96cm인 주바는 체격부터 플레이스타일까지 김신욱과 여러모로 닮았다.

러시아 선수들은 주바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활용법을 정확히 짚어냈다. 후반 26분 주바의 머리로 만들어 낸 세 번째 골이 대표적이다. 오른쪽 측면을 파고든 알렉산드르 골로빈이 위험지역 근처로 진출한 뒤 간결하게 올려준 볼을 주바가 정확한 헤딩으로 마무리했다.

해답은 ‘짧고 빠른 크로스’에 있었다. 김신욱이 압도적인 체격조건을 활용해 상대 수비수를 벗겨내고 좋은 자리를 확보하더라도, 해당 위치를 지킬 수 있는 시간은 불과 1~2초 정도다. 김신욱의 머리를 겨냥한 크로스가 짧을 수록, 볼이 날아오는 속도가 빠를 수록 슈팅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측면에서 공격을 풀어가는 선수들이 가급적 위험지역 안쪽까지 파고들어 김신욱과의 거리를 좁힐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러시아는 전반 막판과 후반 막판에 세 골을 몰아쳐 5-0 대승을 이끌어냈다. 후반 추가 시간에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러시아의 5번째 골을 터뜨리는 골로빈. [AP=연합뉴스]

러시아는 전반 막판과 후반 막판에 세 골을 몰아쳐 5-0 대승을 이끌어냈다. 후반 추가 시간에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러시아의 5번째 골을 터뜨리는 골로빈. [AP=연합뉴스]

◇찰나의 집중력에 세 골이 더해졌다

러시아는 전반에만 두 골을 터뜨리며 일찌감치 승기를 잡았다. 만약 전반이 1-0으로 마무리 됐더라면 경기 흐름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완패한 사우디 입장에서 자꾸만 곱씹을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러시아는 1-0으로 불안한 리드를 지켜가던 전반 43분 체리셰프의 추가골로 스코어를 벌렸다. 후반에는 추가시간에만 두 골을 보탰다. 축구계에서 ‘득점 골든타임’으로 불리는 전ㆍ후반 막판 15분 싸움에서 러시아가 세 골을 몰아친 게 5-0 대승의 발판이 됐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또한 ‘득점 골든타임’에 커다란 약점을 보이고 있다. 신태용호는 올해 들어 치른 A매치 9경기에서 3승2무4패를 기록했는데, 네 번의 패배에서 허용한 10골 중 7골이 전반 30~45분과 후반 30~45분에 몰렸다. 해당 구간에서 우리 선수들의 체력 또는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방증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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