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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르포]'아이스하키 나라' 러시아, 축구로 붉은광장처럼 후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일인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 앞에서 축구팬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일인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 앞에서 축구팬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15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의 개막전을 현장취재했다.

15일 러시아-사우디 개막전 현장취재 #멕시코 여성팬, "우린 한국을 죽일거야" 농담 #발데라마, 시어러 축구스타 총출동 #해설데뷔 박지성, "한국, 사우디 반면교사" #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내려 루즈니키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2000루블(3만4000원)을 부른 30대 러시아인 택시기사는 영화 ‘분노의 질주’처럼 차선을 쉴새없이 바꾸며 레이싱을 펼쳤다. 옆차가 끼어드니 경적을 울리며 쫓아가더니 침을 뱉었다.

러시아 축구팬들이 15일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러시아 3색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러시아 축구팬들이 15일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러시아 3색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차창 밖 풍경은 월드컵 개막일이란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경기장 인근에 도착하니 실감이 났다. 러시아 팬들은 불곰이 그려진 ‘트리콜로르(러시아 3색기)’를 흔들며 “러~시~아!”를 외쳤다. 경기장 앞엔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블라디미르 레닌의 동상이 우뚝 세워져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팬들이 15일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전통복장을 입고 러시아 팬과 사진을 찍고 있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팬들이 15일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전통복장을 입고 러시아 팬과 사진을 찍고 있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반면 사우디 팬들은 석유재벌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 구단주인 만수르(아랍에미리트)처럼 전통복장을 입었는데 소수에 불과했다. 오히려 ‘축구광’ 멕시코 팬들이 두번째로 많았다. 멕시코 여성팬 오로라 크리스텔은 한국 기자를 보더니 “우리의 2차전 상대 아냐? 우린 너희를 죽일거야”라고 농담을 건네면서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했다.

멕시코 여성팬은 한국과 2차전에서 승리하겠다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했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멕시코 여성팬은 한국과 2차전에서 승리하겠다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했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멕시코 여성 축구팬. 모스크바=박린 기자

멕시코 여성 축구팬. 모스크바=박린 기자

스핑크스 복장을한 이집트팬은 “모하메드 살라(리버풀)가 세계 최고선수”라고 외쳤고, 온몸을 호랑이처럼 치장한 콜롬비아 팬은 쉴새없이 포효했다.

스핑크스 복장을 한 이집트팬은 모하메드 살라가 세계 최고선수라고 외쳤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스핑크스 복장을 한 이집트팬은 모하메드 살라가 세계 최고선수라고 외쳤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온몸을 호랑이처럼 치장한 콜롬비아 축구팬. 모스크바=박린 기자

온몸을 호랑이처럼 치장한 콜롬비아 축구팬. 모스크바=박린 기자

국적은 다르지만 팬들의 목에는 증명사진과 이름이 적힌 ‘팬 ID(Fan ID)’가 걸려있었다. 러시아 월드컵부터는 경기 티켓 뿐만 아니라 신분을 증명하는 AD가 있어야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다. 테러방지와 훌리건(극성팬) 출입금지를 위해 이른바 ‘관중신분증’을 도입했다. 팬들이 경기장 보안구역을 통과할 땐 모니터에 사진과 이름이 떴다.

러시아 월드컵부터는 축구광들도 팬ID가 있어야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다. 보안대를 통과할 때 모니터에 사진과 이름이 뜬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러시아 월드컵부터는 축구광들도 팬ID가 있어야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다. 보안대를 통과할 때 모니터에 사진과 이름이 뜬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경기장 미디어센터에서는 자리를 배정받지 못한 기자들로 북새통이었다. 8만석 규모의 루즈니키 경기장엔 7만8011명이 들어찼고, 기자석도 꽉찼다.

14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식에서 출연자들이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식에서 출연자들이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킥오프 30분 전 개회식이 열렸다. 러시아 비올리니스와 피아니스트가 모스크바강에 설치된 무대에서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는 영상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브라질 축구전설 호나우두와 늑대 마스코트 자비바카가 어린이와 시축했다. 공인구 텔스타18은 지난 3월 국제우주정거장으로 보내져 우주비행사들이 무중력 축구에 사용한 뒤 이달초에 지구로 돌아온 것이다.

영국 팝가수 로비 윌리엄스가 록 디제이 공연을 펼쳤는데, 가운뎃손가락을 쳐드는 모습이 화면에 잡혀 논란이 됐다. ‘21세기판 차르(러시아 황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축구를 향한 사랑은 언어와 이념을 뛰어넘어 전세계를 한팀으로 묶는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14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후반전 러시아 아르템 주바가 헤딩으로 팀 세번째 골을 넣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후반전 러시아 아르템 주바가 헤딩으로 팀 세번째 골을 넣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에서는 개최국 러시아가 5골을 몰아치며 사우디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옆자리에 앉은 사우디 기자는 2번째 실점 후 머리를 감싸쥐더니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니키타 구세프가 지난 2월25일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남자 결승 러시아 출신 올림픽팀과 독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성공시킨 후 환호하고 있다. [뉴스1]

니키타 구세프가 지난 2월25일 강원도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남자 결승 러시아 출신 올림픽팀과 독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성공시킨 후 환호하고 있다. [뉴스1]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아이스하키다. 이날 경기장에서 만난 2002년 월드컵 4강멤버 현영민(39·은퇴)은 “러시아는 겨울엔 추운나라이다보니 아이스하키를 가장 좋아한다. 축구는 제1의 스포츠는 아니다. 프로축구에서 이렇게 관중이 많이 들어찬걸 보진 못했다. 내가 뛸 땐 블라디보스토크팀도 있었고, 원정경기를 위해 비행기만 9시간을 탄적도 있다”고 말했다. 현영민은 2006년에 1년간 러시아 프로축구 제니트에서 뛰었다.

러시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이 아이스하키장에서 골을 넣으면 러시아 노래 ‘다로고이 들린노유(머나먼 길)’가 나온다. 이날 축구장에선 더 팬의 ‘올레 올레 올레’에 빗대 “오레오~레오~레오레~ 러시아~ 러시아~”가 울려퍼졌다.

14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러시아 축구팬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14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러시아 축구팬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러시아 관중들은 릴레이골이 터지자 쉴새없이 파도타기를 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 응원도구 부부젤라가 있었다면, 일부 러시아 팬들은 나무로 만든 전통숟가락 로쉬카를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러시아의 랜드마크는 테트리스로 친숙한 바실리 성당과 붉은 광장인데, 이날 루즈니키 스타디움은 붉은광장처럼 후끈 달아올랐다.

콜롬비아 축구전설 발데라마. 모스크바=박린 기자

콜롬비아 축구전설 발데라마. 모스크바=박린 기자

월드컵 개막전답게 관중석에는 축구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잉글랜드 축구전설 앨런 시어러와 저메인 제나스 등은 해설자로 나섰다. 콜롬비아 축구전설 발데라마, 라이언 긱스 웨일스 감독도 보였다.

박지성이 15일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해설 데뷔전을 치렀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박지성이 15일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해설 데뷔전을 치렀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신화를 합작한 박지성 SBS 해설위원, 안정환 MBC 해설위원,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그라운드가 아닌 중계석에 앉았다. 특히 박지성은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았는데, 공교롭게도 루즈니키 스타디움은 아픈 기억이 서린 곳이다. 박지성은 2008년 5월 이 곳에서 열린 첼시(잉글랜드)와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출전명단에서 제외됐다. 바르셀로나(스페인)와 4강에서 맹활약했던 그는 예상을 깨고 명단에서 제외돼 관중석에서 우승을 지켜봐야했다.

개막전 중계를 마치고 만난 박지성은 “경기장이 (10년 전과 달리) 많이 바뀌었다”라고 웃은 뒤 “예전과 달라져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재치있게 답했다.

14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전반전 러시아 데니스 체리세프가 사우디 수비를 뚫고 팀 두번째 골을 넣고 있다.[연합뉴스]

14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전반전 러시아 데니스 체리세프가 사우디 수비를 뚫고 팀 두번째 골을 넣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박지성 해설위원은 아시아국가 사우디가 0-5 대패를 당한 것을 두고 “사우디가 월드컵이란 부담감이 상당히 컸던 것 같고, 잦은 실수들이 나왔던 것 같다. 월드컵이란 무대에서 부담감을 얼마나 줄이느냐, 자신의 기량을 100% 보여주느냐가 가장 크게 좌지우지할거라 보여진다. (우리대표팀도) 오늘 경기를 토대로 반면교사 삼고, 어떻게 대비할지 고민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러시아 월드컵 기간 중 모스크바에서는 경기가 있는날엔 마트에서 주류판매가 금지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러시아 월드컵 기간 중 모스크바에서는 경기가 있는날엔 마트에서 주류판매가 금지다. 모스크바=박린 기자

경기 후 마트에 가서 러시아 맥주 발티카를 사려했는데, 월드컵 경기가 있는날엔 마트에서 주류 판매가 금지라고했다. 결국 무알콜 맥주 한캔을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스페인-포르투갈 경기를 보기 위해 아침 비행기로 소치로 떠나야한다.

모스크바(러시아)=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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