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시장경제 뿌리내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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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공산당이 81년 만에 자본가에게 당원 자격을 부여한 데 이어(본지 4월 19일자 2면) 총리까지 50대 기업 경영인 출신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인민군보 등 현지 언론이 21일 보도했다. 개혁.개방(도이머이)을 총지휘하는 총리로 젊고 참신하며 친기업적 인사를 내세워 경제개혁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국가원수 격인 주석도 당내 대표적인 시장경제 옹호론자로 교체될 것이 확실시된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10차 전당대회에서 고령으로 물러나는 판반카이(72) 총리 후임에 응우옌떤중(56) 수석부총리가 기용될 전망이다. 중 부총리가 총리에 오를 경우 1975년 베트남 공산정권 수립 후 첫 50대 총리가 된다. 본격적인 당 지도부의 세대교체를 예고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는 25일까지 계속되며, 차기 지도부 선출은 대회 막바지에 있을 예정이다.

중 부총리는 80년대 국영 수산회사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회사 규모를 두 배 이상 늘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베트남 경제의 미래는 시장경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렸다"고 말하곤 했다. 96~97년 당 경제위원장으로 일한 뒤 재정과 금융담당 수석부총리(97~98년)를 역임했다. 중앙은행 총재(98~99년)도 지냈다.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을 연구해 베트남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대표적 친한 인사다.

이번에 퇴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쩐득르엉(68) 주석 후임에는 응우옌민찌엣(63) 현 호찌민시 당 서기장이 유력하다. 찌엣 서기장은 당내 대표적인 시장경제 옹호론자로 평가받고 있다. 90년대 지방 성장으로 재직 당시 외자유치 성적으로 당원과 공무원들의 인사 고과를 매겼을 정도다.

그는 "베트남 경제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해외 기업의 공장 유치를 통해 선진기술을 배워야 하며, 이를 위해 모든 우대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구엔 디 니엔(71) 베트남 외교부 장관이 21일 "후진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가 됐다"며 은퇴의 뜻을 밝혔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나이 많은 지도자들의 은퇴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으나 직접 은퇴의사를 밝히기는 니엔 장관이 처음이다.

하노이에서 베트남을 연구하는 영국의 마틴 게인보로 교수는 "주석과 총리에 친기업 인사를 내세운 이유는 시장경제 체제를 확실히 뿌리내리려는 의지의 표명"이라며 "특히 총리에 50대 기업 경영인 출신을 영입한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그는 "앞으로 베트남은 기업 중심 정책을 펼 게 확실하며, 이로 인해 외국인 투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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